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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에 관한 수다 [1]
사진 이혜정 정리 김수경 2005-06-14

만리재에 사는 30대 남녀기자 4명의 <연애의 목적>에 관한 달콤쌉싸름한 수다

연애에도 목적이 있는 거야? 그런 거야?

좌담자☞ 이성욱(<씨네21> 기자), 김소희(<한겨레21> 기자), 이종도(<씨네21> 기자), 김은형(<한겨레> 기자) (왼쪽부터)

만리동 한겨레 건물의 한지붕 아래 지내는 30대의 네 기자. 그들이 어느 늦은 오후 홍익대 카페에 모여 얕은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연애의 목적>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행간에는 필연적으로 그들의 연애관과 경험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분방한 언변의 두 여성기자가 두 남성기자를 압도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좌담 중 이성욱 기자의 “언니들이 일단 본심을 드러내면 더 무서운 것 같아. 한국이란 조건에서 생긴 현실이기도 한 것 같다”는 말처럼. 그들이 읽어낸 <연애의 목적>의 ‘연애의 목적’을 엿들어보자.

* 이 글은 <연애의 목적>에 대한 스포일러성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남자, 유림은 ‘선수’?

김소희 | 청춘 깜찍물로 포장했지만 메시지는 좀 무거워. 이 영화의 첫 번째 교훈은 조직 안에서는 연애하지 마라. 내 편 들어줄 사람 하나도 없다. (웃음)

이성욱 | 유림은 기본적으로 선수인 것 같긴 해. 경험도 좀 있고. 완벽한 선수는 아닌 게 밀어붙이는 자신감과 찬스가 왔을 때 잽싸게 발전시키는 모습은 선수인데 칭얼대고 조르는 스타일을 보면 완벽하지는 않아.

김소희 | 그런 게 단기속성 코스에서는 충분히 먹히지. 말하자면 홍하고 자고 싶다는 측면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어.

이종도 | 한국형 선수라고 생각해. 근사한 작업 멘트를 날리고 호텔과 공연장을 데려고 가기보다는 술집과 여관을 전전하잖아.

김은형 | 하지만 유림이 정말 매너 좋게만 다가왔다면 홍은 안 넘어갔을지도 몰라. 지난번에 한재림 감독과 대담하다보니 강혜정이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고. 유림이 아주 정돈된 작업만 했다면 오히려 실패했을지도 몰라. 찌질하고 매달리는 게 인간적인 매력인 거지.

이종도 | 그거 모성애를 자극하는 거야. 갑자기 나는 젊었을 때 상대적으로 너무 올바르게 살았다는 후회가 막 밀려든다.

김소희 | 실제로도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그런 타입은 꽤 있어. 케어해주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하는 사람. 나쁜 짓을 했는데 나쁜 놈은 아닌 게 되는.

이성욱 | 이제 유림이 한국형 선수라는 건 모두 인정하는 건가? 난 선수가 아니어서 전반부의 홍 캐릭터는 당최 모르겠더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 여자, 홍의 본심은?

김은형 | 홍은 캐릭터보다는 정황으로 파악해야 하는 게 아닐까.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인데 만약 누구라도 그런 상처가 있고 사회에 다시 나가려는데 위축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면 마지막에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도 납득이 돼. 다시 세상에서 엉클어지고 싶지 않은 거지. 교생이라는 입지에서 쉽게 나서기도 어렵고. 나라도 그 상황에서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홍은 인물이지만 유림은 남성 중심의 한국사회 자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김소희 | 그렇지, 툭하면 은폐하고 동업자끼리 봐주는.

김은형 |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비교하면서 유하 감독 왈 “엄정화는 두집 살림을 통해 자기 스스로의 출구, 타협안을 만들어내는데 홍은 여자가 위에 있는 남자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려서 같이 밑바닥에서 연애를 시작한다는 면에서 그것보다 한발 앞서간 것 같다”고 하더라. 이데올로기적일 수도 있지만 한발 더 나아간 것 같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엄정화는 멋지지만 비현실적이잖아.

김소희 | 두집 살림은 사실 권장할 만한 건 아냐.

김은형 | 그렇지만 나는 부러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어.

이성욱 | 유림이 “내 여자친구는 다른 남자랑 자는 거, 섹스하는 거 싫어한다”고 하니까, 홍이 “여자친구를 잘 모르시네요”라고 하잖아. 이건 홍의 초반 모습과 좀 다른데, 언니들이 일단 본심을 드러내면 더 무서운 것 같아. 한국이란 조건에서 생긴 현실이기도 한 것 같고.

이종도 | 유림이 칭얼대고 찌질거리는 게 여성의 지위변화에 대한 전술 변화가 아닐까 싶어. 예전 70∼80년대 한국영화에서는 남자들이 주도적이고 강권적이었지만 최근 영화에서는 그저 빈틈을 노리고 대응하고 구걸하는 방식으로 변한 것 같아.

이성욱 | 한편으로 홍은 자신과 다른 유림의 스타일에 끌리는 건가? 그래서 현실에서도 바람둥이한테 안 바람둥이들이 넘어가는 거야?

김소희 | 뭐 그건 그냥 자는 거니까. 제도적인 파트너십도 아니고.

김은형 | 다시 말하지만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보다는 이 영화의 홍이 훨씬 더 현실적인 캐릭터야.

이종도 | 현실적인 캐릭터인데 왜 의사는 마다하는 거야?

김소희 | 의사는 섹스도 별로, 고기도 혼자 먹고, 사회적 지위는 있지만 홍의 정서적인 면을 케어해주지 않잖아. 저울질은 했겠지만 의사를 버린 건 스스로에게 정서적으로 충실한 선택이었어.

이성욱 | 의사가 왜 홍을 선택했는지도 사실은 이해가 안 가. 그들의 잠자리를 들여다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홍이 우리가 모르는 어떤 탁월한 게 있지 않다면.

김소희 | 의사는 홍을 다루기 좋은 애로 생각한 거지.

그와 그녀의 연애의 목적?

김은형 | 홍이 의사가 아닌 유림을 대체재로 선택한 느낌은 없어. 연애의 열정이란 게 원래 가장 쥐고 싶은 것도 파괴시키는 에너지가 있잖아. 그 결과 아닐까. 따라서 연애의 목적은 없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주는 거지.

김소희 | 그건 나도 동의해. 의사를 차버린 것도 유림을 성폭력범으로 고발한 것도 자기 보호 본능 아닐까. 결국 연애의 목적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이성욱 | 홍이 그렇게 결단한 것은 일종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또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겠지.

이종도 | 나도 유림이 이해가 되는 게 6년 동안 사귀었으면 다른 돌파구도 필요할 테니까. 10대든 30대든 그건 똑같아. 연애의 목적이 아니라 사실 연애의 원인이지. 홍에게 또 다른 파트너가 있다는 질투의 조건이 연애를 성립시키는 자극이지 않을까. 영화에서 유림이 다른 남자를 너무 질투하지 않아서 외려 현실감이 떨어지더라.

김소희 | 벤츠 타고 의사인데 질투해봐야 게임이 안 되니까 그런 것 아냐? (웃음)

이성욱 | 일단 자기에게도 여자친구가 있고, 홍이 급격히 자신에게 쏠리고 있다는 확신도 있으니까 질투할 필요가 없었겠지.

이종도 | 그래도 최소한 내가 의사를 눌렀다는 승리감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이성욱 | 홍의 집에 들어갔을 때 의기양양해하잖아.

김은형 | 게다가 다음달에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치를 떨잖아. 이 영화는 남성과 여성 캐릭터를 분리해 연애의 패턴을 엮는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모든 연애는 단순한 열정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 연애의 목적 중 하나인 결혼조차도 일종의 자기보호, 자기안위 같은 본능이니까. 개인적으로도 항상 목적없이 연애해서 나중에 후회했어. 우씨.

김소희 | 이 영화가 학교가 가장 억압적인 조직이라는 점에 착안한 부분은 좋아.

김은형 | 일종의 대비효과를 노린 거지.

이성욱 | 하필 직업을 선생님으로 해서 선생님도 여관을 전전하고 섹스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건 의미심장해.

이종도 | 비밀데이트 장소가 학교 소각장 같은 데잖아. 경험이 풍부한 선수라면 그렇게는 안 만나지.

김소희 | 로케이션 따로 잡고 하기 귀찮아서 편히 찍다보니 그런 거 아냐. (웃음)

김은형 | 사실 그래봐야 사람들이 수군대는 건 그야말로 가벼운 안줏거리에 지나지 않아. 금방 까먹기도 하고.

이종도 | 그런 수군거림이 관계의 균열이 돼 깨지는 커플도 많아.

김소희 | <연애의 목적>이 그저 20대 새끈한 남녀를 다룬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

이종도 | 불만인 게 이 영화에서는 20대가 사랑을 하는데 너무 30대처럼 사랑을 해. 유림은 돈을 모아서 호텔을 간다거나 놀랄 만한 선물도 주지 않아. 미리 팬티도 갈아입고 샤워도 하고, 여관비나 콘돔도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 그는 늙고 지쳐서 여관 술집 빼고는 어디도 가지를 않아.

이성욱 | 홍하고 결혼한 뒤 30대쯤 되면 그런 자세가 뒤늦게 나오지 않을까.

모두 | 그러게, 거꾸로 그럴지도 몰라.

그 5초는 강간이었다?

이성욱 | 유림이 처음 홍에게 대시했던 것은 섹스 때문이지?

김은형 | 그렇지. 처음에는 너랑 자고 싶다. 단지 그거지.

이종도 | 섹스와 사랑이 동시에 진행되는 건 아니었을까. 같이 데리고 있는 교생인데, 한번 자고 말 상대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매번 봐야 하잖아.

이성욱 | 유림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심지어 강간까지 가는데.

이종도 | 그런데 그게 강간이야?

이성욱 | 5초 대목은 분명히 강간이지. 30%는 권력, 40%는 완력, 30% 정도는 성적 매력에 의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강간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소희 | 5초만 넣을게. 그건 명백한 강간이잖아.

이종도 | 나는 강간이 아니라고 봤어. 소리를 지르거나 해서 모면할 수 있지 않을까.

김은형 | 반항이 부족했다는 거지. 우하하.

이종도 | 충분히 물리치거나 항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전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유림의 오판도 있긴 하지만. 5초 그러면서 아주 징징대잖아. 그래서 강간이 아니라고 봤어.

김소희 | 그 5초가 없었으면 유림이 멋있는 사람, 쿨가이로만 그려지는 위험성이 생길 수도 있어. 때로는 귀엽고 원하는 바대로 이야기하는 속성들로 그려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5초 강간신 덕분에 일상적으로 멋있기만 하지 않고 이러저러한 지저분함을 가진 캐릭터로 보이지 않을까.

이성욱 | 이 장면이 가질 해석의 위험을 알면서도 이런 게 현실이니까 감독과 작가가 위험부담을 안고 간 것 같아. 이런 점에서는 <연애의 목적>은 좋은 영화인 거지.

이종도 | 나는 5초신에서 강간의 느낌보다는 ‘유림은 선수는 아니구나’ 싶었어. 틈을 찾아서 뭔가를 얻어내는 전술이 유효한데다가 거기서 굳이 그러지 않아도 홍이 유림의 구애에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촌스럽고 추잡하게 얻어낼 이유가 있나? 얘가 아직 어리구나 싶더라고.

김소희 | 그제야 불완전한 캐릭터가 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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