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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탄자니아의 비극 다룬 다큐멘터리 <다윈의 악몽>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악몽

<다윈의 악몽>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3국이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다윈의 악몽>(Le Cauchemar de Darwin)이 파리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3월2일 프랑스 개봉 2달 만에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과학영화가 아니다.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는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 최대의 열대 호수가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어종으로 ‘인류의 발상지’라고까지 불리던 이곳은 이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세계화의 지배논리가 빚은 폐해의 상징적 무대가 되어버렸다. 1960년대 탄자니아의 빅토리아 호수에는 과학적 실험이라는 명목하에 나일강의 농어가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호수의 먹이사슬이 파괴된다. 빅토리아 호수에 원래 살던 어종은 농어라는 거대하고 광포한 파괴자에 의해 멸종되고 이제 호수에 남은 물고기는 파괴자인 나일강 농어뿐이다. 호수의 생태가 파괴된 이후 지역 원주민들의 삶도 파괴되었다. 다양하고 균형잡힌 어종을 가진 호수에서 낚시와 농어업으로 평화롭게 살던 원주민들은 이제 자본의 착취, 기아와 전쟁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살이 많고 크기가 큰 농어가 호수의 생태계를 장악하자 주변에는 농어의 살코기를 가공하는 대규모의 공장이 들어서고, 이 공장에서 가공 생산된 농어는 서유럽과 일본으로 고가에 수출된다. 하지만 호수 주변에서 전부터 살아오던 원주민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경제논리에서 소외당한 채 죽어가고 있다. 전통적 자연경제가 무너지자 무력한 원주민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리로 내몰려 매춘과 구걸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농어 가공공장에서 가공포장을 마친 생선을 서유럽과 일본 등지로 수출하기 위해 항공 수송을 하는데, 대부분의 항공기는 구소련에서 아프리카에 전쟁무기를 싣고 오는 수송선들이다. 원주민들에겐 전쟁무기를, 서구인들에게는 맛좋은 농어 살코기를 실어나르는 것이다. 농어 가공공장에서 버려진 썩은 생선머리와 뼈는 햇볕에 말려 공업용 기름에 튀겨져서 원주민들의 주식으로 재활용된다. 거리의 아이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잊기 위해 공장에서 버린 플라스틱 포장용기를 녹여 흡입한다. 파리의 대형 슈퍼마켓에 가면 가공포장된 농어 살코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파리지앵들은 아무 생각없이 이 생선살을 맛있게 먹어왔다.

프랑스계 오스트리아 감독 위베르 소페(Hubert Sauper)가 연출한 <다윈의 악몽>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이 아프리카 대륙을 어떻게 황폐화시켰는지를, 아프리카 대륙의 일상화된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적자생존의 법칙이 낳은 끔찍한 현실과 극심한 빈부격차 현상을 빅토리아 호수의 생태질서 파괴라는 메타포로 통렬히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가 회자되면서 최근 프랑스 전역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한 제3세계를 대상으로 자행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다윈의 악몽>은 지난 3월에 열린 제19회 스위스 프리부르국제영화제에서 김동원 감독의 <송환>과 더불어 다큐멘터리상을 공동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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