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투덜양] 그때그때 다른 이야기, <연애의 목적>

투덜양, 짝사랑 상대자와 스토킹 피해자의 진실에 대해 고민하다

<연애의 목적>

지난호에서 투덜군도 지적했지만 <연애의 목적>이 연애의 탈을 쓴 스토커 영화가 아니냐는 이야기는 내 주변에서도 간간이 나온다. 이런 반응이 대부분 여자가 아니라 스토킹, 성희롱 같은 범죄에서 주로 가해자 역할로 등장하는 남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게 일면 고무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딱히 동의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은 스토킹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었어”라는 말은 아니다.

스토킹, 성희롱 이런 범죄는 일도 양단으로 유죄 여부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애매하고 까다로운 문제다. 이를테면 최근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법원의 판결로 논란을 일으킨 회식 자리의 술 따르기 강권 사건을 보자. 만약 내가 이 자리의 여선생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교장 옆에 앉아서 따르라고 하지 않아도 계속 술을 따르면서 “선생님 원샷 원샷”을 외쳤을 것이다. “노친네 빨리 집에 보내고 우리끼리 놀자”는 취지로 말이다. 한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가 얼굴 예쁜 여자가 난자도 잘 팔린다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를 했던 현장에 만약 있었더라면 “선생님 정자는 어디 팔 데가 없겠는데요”라고 한 술 더 뜨는 성희롱으로 그의 돼먹지 못함을 사적인 방식으로 응징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 있다고 해서 그녀들의 문제제기를 ‘오버’라고 볼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그 순간에 그 또는 그녀가 어떻게 느꼈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짜 술 따르기 싫은데 술 따르라고 강권하면 그건 명백히 폭력이고, 난자 운운한 이야기가 듣는 이에게 모욕감을 주면 그 역시 폭력이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철저히 피해 당사자 중심으로 논의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삽입을 하느냐 안 하느냐, 사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 따위의 저질 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애의 목적>은 이런 미묘하고 혼란스러운 문제를 뒤집어보게 한다. 수학여행에서의 폭력적인 섹스, 유림의 집요하고 노골적인 껄떡거림은 우리가 성교육 시간에 무수히 들었던 경계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홍은 묵묵히 있다가 또 받아들이고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그를 ‘성폭행’으로 고발한다. 그리고 1년 뒤에는 “나도 너 좋아했어”라고 유림에게 말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지를 때 제대로 못 지르고 나중에야 자기가 곤란해지니까 뒷통수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홍의 모든 반응에 그녀의 진심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란 투명하게 1대1의 관계가 아니다. 두 사람의 같은 대화, 같은 사건도 그것이 상황과 환경이라는 컨텍스트 위에 놓이면 다르게 읽히고 보일 수 있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동’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감정과 느낌이다. 스토킹이나 성희롱에 대해서 백번 주의하고 조심하는 건 필요하지만 ‘그녀’의 침묵을 ‘스토킹당했네’,‘성희롱당했네’라는 식의 외부자의 시선으로 간단하게 해석해버리는 것도 폭력이라면 폭력 아닐까.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