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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통해 자기혐오의 굴레를 벗어나다, <소녀>

날개가 하나뿐인 비익조, 이제는 둘이 되어 위태롭게 날아오르다.

여성도 아이도 아닌, 소녀는 그 비정형의 존재감 때문에 남성들에게 성적 판타지의 주요 테마가 되어왔다. <소녀>의 여중생 요코와 중년의 경찰관 도모카와의 사랑은 그래서 도발적이지만 익숙하고, 용인될 수 없지만 이해될 수 있다. 어린 시절 목을 매고 자살한 아빠, 아빠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를 끌어들였던 엄마, 엄마와 외간 남자의 정사를 목격한 뒤 인간과 동물을 불문하고 섹스하는 광경만 보면 발작을 일으키는 오빠.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소녀 요코를 불안정한 자기혐오적 존재가 되게 한다. 그녀는 도모카와를 만나 이 모든 것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꿈꾼다.

소녀 요코가 섹스에 탐닉할 때, 거기에서는 사랑보다는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장의사인 할아버지를 따라 시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화장(化粧)하던 요코는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 그녀에게 화장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부정하기 위한 것 혹은 거짓된 삶이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화장을 지워내는 것은 도모카와이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입술과 눈썹에서 벗겨낸 화장으로 써준, 눈썹(眉)이라는 글자에서 묘한 안식을 찾고 그를 통해 삶에 대한 애정을 회복한다.

이 영화에서 요코의 몸은 섹스, 죽음, 예술과 사랑이 결합된 관음의 대상인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좇으며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주체로 그려진다. 장의사이자 문신가인 할아버지는 요코의 몸을 통해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고자 한다. 그는 20여년 전 비익조(比翼鳥)를 도모카와의 등에 새겨주었었다. 비익조는 날개가 하나뿐이어서 암수컷이 항상 함께 날아다니는, 중국 신화 속에 나오는 새다. 요코는 할아버지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모카와와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비익조의 암컷을 자신의 등에 새긴다. 요코는 도모카와와의 사랑을 통해, 스스로 암컷 비익조가 됨으로써 자기혐오의 굴레를 벗어난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땀에 젖은 요코와 도모카와의 등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비익조 한쌍을 통해 이들의 암울한 사랑이 날갯짓하여 가고 있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보여준다.

극중의 도모카와 역을 한 중견 배우이며 <소녀>로 감독 데뷔를 한 오쿠다 에이지는 16년 전 렌조 미키히코의 동명소설을 읽고 구마시로 다쓰미 감독과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5년 구마시로 감독이 타계하는 바람에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맡게 되었다. 영화와 미술을 넘나들며 재능을 보인 감독의 역량이, 다소 선정적인 주제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그림 같은 화면 속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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