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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배우에 대한 세 가지 단상
2000-02-29

잔 모로

1, 베를린영화제 평생공로상을 받은 여배우들의 인터뷰는 늘 감동적이다. 개인적으로 그닥 호감이 안 가는 카트린 드뇌브(98년)는 역시 인터뷰도 별 감흥이 없었지만, 마치 대항해시대의 탐험가처럼 영적 성적 예술적 정치적 세계를 용감무쌍하게 탐험해온 셜리 매클레인(99년)이나 예전엔 유럽예술영화의 연인이었고 지금은 그 대모인 잔 모로(2000년)의 인터뷰를 보노라면 대배우란 하나의 박물관이구나 싶다. 그들의 내면엔, 여러 시대의 공기와 명감독들의 상상력과 수많은 가상의 개인사들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배우가 대가가 되는 건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대가가 된 사람에게는 ‘길을 아는’ 사람만의 체취가 있다.

2. 배우의 가치는 스타의 가치와 다르다. 배우의 가치가 작품에서 나온다면, 스타의 가치는 산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비치>의 제작비 4500만달러 가운데 2천만달러가 디카프리오의 개런티였다. 그건 할리우드에서 심심찮게 있는 일이다. 그래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일급 스타들을 제작에 참여시키고 흥행지분을 떼어줌으로써 제작비 부담을 덜곤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스타 배우 한 사람의 개런티가 그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다른 배우 및 스탭들 인건비의 총계보다 많은 일이 종종 있다. 이건 분명 인간적으로 공평치는 않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계산법으로는 틀리지는 않다. 한 잡지 인터뷰에서 조디 포스터의 명쾌한 해답이다. “톰 크루즈에게 편당 2천만달러를 지불함으로써, 그 영화를 미국 3천개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다면, 배우에게 거기에 알맞은 대접을 해줘야 한다.”

3,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가 로버트 드 니로다.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나 <미션>에서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스콜세지 작품들에서 늘 최고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는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다. 그런데 이 명배우는 작품을 가리지 않는 편이어서, <왝 더 독>이나 <로닌> 같은 영화에서 그를 만나면 공연히 양심적 지식인의 훼절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그는 올해만 해도 5편에 출연한다. 돈은 이미 충분할터인데, 늘 카메라 앞에 있어야 배우로서 살아 있다고 느끼는 일종의 편집증적 직업의식일까. 그가 조지 클루니에게 뭔가 배울 게 있을지도 모른다. <배트맨과 로빈>을 찍고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 조지 클루니는 회계사에게 “내 상태가 지금 어떤가” 물었고 “이제 일 안 해도 먹고 살 만하다”고 하자 “이제 하고 싶은 영화만 하겠다” 결심하고 선택한 게 코엔 형제의 신작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