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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전인권 죽이기
김현정 2005-07-08

전인권을 매우 좋아해본 적은 없다.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마틸다와 레옹”이라는 비유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라고도 생각했다. 전인권은 레옹에 비해 너무 짧고 너무 굵다. 레옹이 천하대장군이라면 전인권은 돌하르방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전인권과 관련된 기사를 클릭할 때마다 거대한 이미지가 먼저 떴고, 몇초 기다리는 사이, 기사도 읽기 전에 반감이 생기곤 했다(우리 회사 인터넷 속도는 상당히 느리다). 착시일까. 날마다 포털 사이트 뉴스 페이지에 들락거리지만 그렇게 사이즈가 크고 극단적인 클로즈업 이미지는 몇번 보지 못한 듯하다. 전신 사진도 있고 포토숍도 있는데 하필 머리 크다는 약점을 물고늘어지는데다 모공까지 선명한 사진뿐이라니! 몇년 전 전인권을 인터뷰하러 가는 후배를 둘러싸고 “그런 무섭게 생긴 아저씨한테 우리 ♡♡를 보내도 되는 걸까”라며 근거없이 동정을 표했던 집단의 일원으로서 할말이 없긴 하지만, 캐서린 제타 존스와 결혼한 마이클 더글러스를 두고, 천하에 뻔뻔하기 그지없는 색마 더하기 중증 왕자병까지 겹친 노인네라고 욕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나이나 외모가 사랑할 자격의 기준이 되는가. 이런 유머가 생각난다. 못생긴 여자와 잘생긴 남자 혹은 그 반대인 커플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고. “쟤네 진짜 사랑하나봐.”

어떤 사람들은 전인권이 홀로 착각에 빠져 이은주를 스토킹했다고 말한다. 자신도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며 진정성 듬뿍 담긴 분노를 터뜨리는 여인들이 공감할 법한 스토리고, 사실 흔하고 흔한 일이어서 고개를 끄덕이게도 된다. “은주를 사랑했다”는 문장을 최초로 썼던 인터넷 뉴스 기자는 인터뷰 정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후속 기사에 결코 지금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고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전인권을 변호한다. 그 글 또한 진정성이 듬뿍 배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은주가 전인권을 사랑했는가, 아니면 스토커 전인권 때문에 끓는 속을 참고 살았는가가 아닌 듯하다. 전인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이은주 측근의 주장이 있기 전부터, 그의 발언은 사실 따위에 상관하지 않는 ‘사건’이 되었고, 그는 빚 대신 꽃다운 처녀를 데려온 고리대금업자 취급을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 “사랑했다”는 단어가 이토록 쓰레기처럼 이발 저발 채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모든 잘못은 전인권이 저질렀다. 그는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언론에 실린 단 한마디가 마름질과 재봉질을 거쳐 어처구니없는 사연으로 환골탈태하리라는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바보다. 참고 참고 또 참지 왜 말했을까. 들끓고 있는 언론은 전인권이 고인과 그녀의 가족을 배려할 줄 모른다고 단죄하지만, 그 언론이 언제부터 이미 죽은 사람의 심정씩이나 생각해주었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이은주가 친구와 가족에게 남긴 유서를 입수해 밑줄까지 그어대며 가족사와 그 집안 가계부를 들추던 이들이 바로 지금의 마음 따뜻한 언론이다. 너 또한 언론계에 속해 있지 않냐고 한다면 또다시 할말이 없지만, 죄없는 자만이 돌팔매질할 수 있다면, 세상에 돌맞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

당연한 이치인데도 영화기자가 되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 있다. 아름다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반드시 아름답진 않더라, 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사람을 그 노래와 떨어뜨려놓고 바라보진 못한다. 단 한번 가보았던 콘서트에서 검은 옷을 입은 전인권은 빛을 품은 어둠 같았다. 총명하기도 한 한국 언론 덕분에 지난주에야 전인권이 흉측하게 생긴 노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감사의 리플이라도 달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