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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스런 호러다큐멘터리, <목두기 비디오>
오정연 2005-07-12

혼령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끈질긴 추적, 을 고스란히 재현하려는 영화 제작진의 고군분투로 완성된 맛깔스런 호러다큐멘터리.

여관방 몰래카메라의 한 장면. 뿌연 실루엣으로 보이는 남녀의 뒤편으로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연히 이 몰카를 손에 넣게 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는 혼령이 되어 여관방을 맴도는 남자의 사연을 파헤친다. 남녀의 대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힌트 삼아 여관의 위치를 추적하고, 여관 건물 주인의 인터뷰를 진행하던 제작진은, 20여년 전 부산에서 발생한 장남의 일가족 살해사건과 몰카 속 혼령이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는다. 폐가가 된 당시의 사건현장을 탐색하고, 살해된 막내딸의 친구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 무속인, 음향전문가, 아동심리학자 등 십여명의 관계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들은 서서히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간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화자의 입담에 따라 그 재미가 천지차이로 달라지는 경험,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직접 겪은 생생한 일화가 지지부진한 일상으로 둔갑할 수도 있고, 사돈의 팔촌이 전한 뻔한 소문이 흥미진진한 모험담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만들어진 독립영화 <목두기 비디오>가 자랑하는 동급최강의 입담은, 철저하게 카피한 TV 르포 프로그램의 화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52분의 러닝타임 내내 조금씩 정체를 드러내는 의외의 사실들은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계속해서 새로운 국면이 꼬리를 무는 탓에 일단 보기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반부에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여관의 위치를 추적하는 단서 등 몇몇 부분이 유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것보다는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켜 새로운 미스터리로 관객의 관심이 옮아가도록 하는 편이 낫다”는 윤준형 감독의 판단은 제대로 적중한 셈이다.

<목두기 비디오>는 2003년 9월 주요 포탈사이트 VOD관에서 개봉할 당시 ‘여관방 몰카에 잡힌 혼령의 정체’라는 자극적인 홍보 문구로 네티즌의 얄팍한 호기심을 사정없이 자극한 결과, 7천명이 넘는 유료관객을 끌어모았다. 진위여부를 둘러싼 웃지 못할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날것을 흉내낸 그 화면들이, 귀를 찢을 듯한 사운드나 잔인한 장면 하나없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특별한 공포는 제작진의 능청스런 거짓말에 분개한 관객이라도 인정할 만한 미덕이다. 공포를 유발하는 비슷한 코드들이 사뭇 심드렁하게 느껴지는 요즘. 야릇한 홍보전략 없이 관객을 만나게 될 <목두기 비디오>의 진정한 승부처는 가장된 진실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색다른 화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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