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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쾌감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다, <스팀보이>
김도훈 2005-08-02

16년 만에 돌아온 오토모 가쓰히로의 두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19세기 중반,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가속화시킨 빅토리아 시대. 맨체스터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소년 레이는 발명가문 ‘스팀가(家)’의 일원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기계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그는 연구를 위해 미국에 머무르고 있던 할아버지의 소포를 받는다. 소포 속에는 스팀볼이라 불리는 무한 증기 에너지원이 들어 있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연구를 후원하는 미국의 오하라 재단은 스팀볼의 행방을 찾아 레이의 뒤를 쫓는다. 그들에게 납치된 레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만나지만 두 사람은 과학에 대한 의견 차이로 극심한 대립을 보이고 있었고, 오하라 재단은 런던 만국박람회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으며 모종의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세상을 파괴할 만한 위력을 지닌 거대한 스팀성(城)이 런던의 땅밑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오토모 가쓰히로는 새로운 에너지가 들끓는 산업혁명기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비전을 지닌 삼부자의 갈등을 드라마 속에 담아낸다. 할아버지는 준비되지 않은 대중에게 과학의 두려운 힘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이상주의자고, 아버지는 과학의 힘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 믿는 과학주의자이며, 주인공 레이는 갈등의 시대에서 성장해가는 보통 사람들을 대변한다. 이처럼 단순하게 구성된 영화 속 갈등구조는 영화를 보게 될 모든 연령을 위해 친절하게 낮춰져 있다. 혹자는 9·11의 함의를 굳이 읽어내려 할 테지만, <스팀보이>는 “초등학교 3∼5학년 남학생들이 많이 봐줬으면 한다. 소년들에게는 프라모델 같은 영화일 것이다”라는 오토모의 말처럼,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쾌감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순수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 특히 당대 최고의 아니메 비주얼리스트가 10년 동안 만들어낸 세계는 (아이들에게는 과하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만큼) 압도적이다. 오토모가 사물을 묘사하는 페티시즘적 집요함은 이제 하이퍼 리얼리즘을 넘어, 일종의 영화적 신기루처럼 보일 지경이다.

<스팀보이>에서 <아키라>가 가져다준 섬뜩한 시대정신을 되짚는 것은 힘들다. H. G. 웰스, 쥘 베른적 상상력에 일본 아니메 기술을 접붙인 마술로서 오랜 아니메 팬들의 탄식을 잠재우기란 조금 미진한 느낌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려한 액션신과 박력있는 스티븐 자브론스키의 스코어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바람을 불어넣는 순간, 스위스 시계처럼 세공된 <스팀보이>는 잠시나마 <아키라>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스팀보이’처럼 프레임 속을 자유롭게 활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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