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MTV가 영화에 끼친 영향 - 속도와 편집, 그리고 소리의 조화
2001-07-21

“공감각 충전 200%, 시청각의 열반을 만끽해!”

예술은, 문화는 잡종일 때 더욱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더욱더 체질이 강해진다. 한때 TV라는 경쟁자에게 위협을 느끼기도 했지만, 100여년간 대중예술의 중심을 지켜온 영화의 경우도 그렇다. 1895년 ‘발명’된 영화는 소설, 연극, 미술, 음악 등 선발주자에게서 자양분을 얻으며 성장해왔다. ‘종합예술’답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영화’라는 매체의 일부분으로 삼은 것이다. 영화의 왕성한 식욕과 소화력은, 자본주의의 그것과 꼭 닮았다. 하지만 그런 영화 자신도, 독립적인 매체나 장르도 아닌 케이블 채널 하나에 불과한 MTV에게 그토록 휘둘림을 당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현란’하고 ‘빠른’ 신세대 영상문법

이제는 MTV 스타일의 영상이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MTV가 영화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속도와 편집, 그리고 소리의 조화다. 뮤직비디오는 어떤 형식도 가능하다. 가사를 영상으로 옮길 수도 있고, 독자적인 이미지를 창조할 수도 있고, 비디오아트 스타일의 전위적인 영상도 가능하다. 곡과 아무 상관없이 엉뚱한 영상을 만드는 짓도 물론 가능하다. 하나의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 노래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 ‘현란’하고 ‘빠른’ 뮤직비디오는 MTV 세대의 영상감각을 뒤흔들어놓았고, 새로운 문법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영화와 광고의 아류 같기도 하지만, 영화보다 재미있고 광고보다 화려한 새로운 영상. 그 흐름은 영화로 바로 흡수되었다.

초창기에는 영화감독 존 랜디스가 마이클 잭슨의 걸작 뮤직비디오 <스릴러>를 감독하는 등 영화적 기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MTV 스타일의 영화는 CF감독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5초에서 30초 동안의 짧은 시간 안에 분명한 이미지를 심어야 하는 CF감독 출신인 토니 스코트는 <탑건>에서 뮤직비디오처럼 노래와 빠른 편집으로 끊어지는 감각적인 영상을 구사했다. 그의 형인 리들리 스콧 역시 CF감독 출신이었지만, 상업적인 동생과 달리 작가주의적으로 승부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여준 빛과 그림자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영상, 세기말적인 암울한 풍경은 MTV 세대가 선호하는 ‘표현주의적’ 영상의 전형이 되었다. CF감독 출신들이 다져놓은 감각적인 영상기법은 일군의 뮤직비디오감독 출신들에게 이어졌다. <하이랜더> <닉크>의 러셀 멀케이, <헬스 키친>의 필 조아누, <시에스타> <공포의 묘지>의 메리 램버트 등은 80년대에 뮤직비디오를 만들다가 영화에 입문한 감독들이다. <하이랜더> <시에스타>는 각각 MTV의 영상 스타일이 어떻게 영화로 이입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는 이야기의 전개방식, <하이랜더>는 눈을 어지럽히는 감각적인 영상, <시에스타>는 해체된 이야기를 시각적 이미지로 전달하는 방식이 뛰어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영상’을 만드는 데는 대체로 테크닉을 발휘했지만, ‘이야기’에는 지리멸렬이었다. 그 결과 지금은 다들 싸구려 액션이나 에로영화 등을 만드는 B급 감독으로 전락했으며, 뮤직비디오 출신은 일반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약하다는 선입관을 심어주었다.

<더록>, 숨가쁜 몰입도구의 완성

하지만 그건 선구자의 일반적인 경로일 수도 있다. 그들의 초기작에서는 독창적인 구성과 영상이 발견된다. 하지만 제작자나 관객은 그들의 영화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못했다. <하이랜더>나 <시에스타>는 소수의 관객이 좋아하는 컬트로 남았다. 메리 램버트나 러셀 멀케이는 기존의 영화 스타일과 충돌하다가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평범한 감독으로 몰락했다. 할리우드는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의 창조적인 영상을 원했지만, 실험영화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데이비드 핀처에게 거는 기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데이비드 핀처의 <에이리언3>는 중세의 음울함과 운동감이 극도로 과장된 영상이 인상적인 영화였지만, 역시 이야기는 늘어진다. 자칫하면 데이비드 핀처 역시 자멸한 선배들의 뒤를 밟을 뻔했지만, 뚝심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쎄븐>은 수많은 메이저영화사에서 너무 우울하고 비관적이라며 제작을 거부한 작품이다. 데이비드 핀처는 <쎄븐>과 <파이트 클럽>에서 자신의 세계관과 영상 스타일을 독자적으로 결합시키며, 창조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다. <파이트 클럽>은 90년대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가장 독창적인 영화의 하나로 꼽힐 만한 작품이다.

데이비드 핀처가 메이저 시스템과의 경계선에서 작가주의적 영화를 만들어낸다면, 알렉스 프로야스는 B급 장르영화의 작가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데뷔작은 브랜든 리의 유작이 된 <크로우>. 죽음과 어둠이 짙게 깔린 <크로우>는 그러나, 알렉스 프로야스 개인에게는 아쉬운 미완성품이었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진가는 <다크 시티>에서 빛난다. 모든 것이 조작된 세계. 시간과 공간, 기억 어느 하나도 믿을 수 없는 세계에서 찾아내는 유일한 진실. 알렉스 프로야스는 극단적으로 어두운 이야기를 독일 표현주의와 일본 애니메이션, 하드보일드를 뒤섞으며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직 보지는 못했던 ‘다크 월드’를 만들어낸다. 데이비드 핀처와 알렉스 프로야스의 영화는 ‘MTV적’'이라는 정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들의 영화는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플롯을 전개시키는 방식, 인물을 움직이는 방식, 관객의 감정을 끌어내는 방식이 모두 제각각이다. 메리 램버트나 러셀 멀케이가 전통적인 드라마투르기와 충돌하며 좌초한 것에 비해, 이들은 나름의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데이비드 핀처와 알렉스 프로야스에 이르면 ‘MTV적’이란 단지 영향이 아니라, 말투와 작은 몸짓까지 배어든 습관이 된다.

MTV식 영상이 절정에 달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뮤직비디오감독이 아닌, CF감독 출신 마이클 베이 때문이었다. 마이클 베이의 <더록>은 90년대 액션영화의 틀을 바꿔놓았다고 평가된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액션은 육체 반응속도의 한계점에 다다르고, 절정의 순간에 완급을 조절하며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게 신파고, 뻔한 감동의 강요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넘어갈 만한 노련한 수법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어깨를 들썩이는 것처럼, <더록>을 보면 따라서 호흡이 가빠진다. MTV의 영상은 공감각적이다. 음악을 단지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영상을 뒷받침하는 것이 음악이 아니다. 어느 하나를 떼어놓으면 절대로 완전할 수 없는 그 무엇. MTV의 영상은 ‘몰입’의 도구다. 마이클 베이가 닦은 MTV식 블록버스터의 길을 따른 것은 뮤직비디오감독 출신의 도미닉 세나다. <칼리포니아>로 불안한 출발을 했던 도미닉 세나는 <더록>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인솔 아래 <식스티 세컨즈>를 만들며 평범한 블록버스터 감독이 된다. MTV 스타일의 영상은 이제 ‘감각적인 영상’ 정도로 보편화된 것이다. 그것은 역으로 하이프 윌리엄스의 <벨리>에서도 증명된다. <벨리>는 시간을 길게 잡아 늘린 뮤직비디오다. 영화의 흐름을 놓쳐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소리를 죽여놓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정도다. 뮤직비디오는 이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어가 되었다.

21세기, 뮤직비디오감독이 사는 법

21세기의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에게는 두 가지 길이 열려있다. 하나는 <더셀>의 타셈 싱처럼 극단적이고 도발적인 영상으로 승부하는 것. 유명 화가의 그림을 베끼든, 일본 애니메이션을 베끼든 하여튼 무언가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 끝나지 않는 모험을 떠나는 것. 어쩌면 그것은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이 처음에 시도했던 방식의 회귀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스파이크 존즈의 <존 말코비치 되기>다. 실제 인물 존 말코비치를 등장시키고, 판타지와 동화를 극단적인 현실에 투사하면서 <존 말코비치 되기>는 풍성한 화법을 구사한다. 스파이크 존즈의 이미지는 이야기가 끌어가는, 논리적인 상상력이 지배하는 영상이다. 타셈 싱의 방식이 유려하면서도 막힌 느낌이 드는 것에 비해, 스파이크 존즈의 어법은 뮤직비디오를 넘어선 새로운 스타일이란 기분을 준다.

요즘 영화, 뮤직비디오, CF를 오가며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늘고 있는 것처럼 MTV 스타일의 영상은 아주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 중에서도 뮤지션의 작가적 야심이 쉽게 개입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는 가장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장르로 존재한다. 인디펜던트영화가 할리우드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어 왔듯이, 뮤직비디오 역시 끊임없이 영화에게 신선한 피를 수혈해줄 것이다.

김봉석 기자 lotus@hani.co.kr

▶ MTV 20주년

▶ MTV의 프로그램들

▶ 대단했던 순간 베스트 20

▶ MTV 네트웍스 인터내셔널 부사장 리사 해킷 인터뷰

▶ MTV 코리아 김순철 대표

▶ MTV가 영화에 끼친 영향 - 속도와 편집, 그리고 소리의 조화

▶ 뮤직비디오에서 출발한 영화감독들 대표작

▶ 케이블TV 시대를 사는 MTV의 전략

▶ 인상적인 뮤직 비디오 네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