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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과 예술 사이
2001-02-08

<춘몽>을 찍고 음화제조법 위반으로 기소되다

봄날의 꿈이라는 뜻의 <춘몽>(1965)의 대강의 줄거리. 치과병원에 치료를 받는 동안 젊은 여자 환자(박수정)는 입술 안으로 의사(박암)의 손이 드나들수록 점점 성적 흥분을 느낀다. 여기서부터 여자는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데, 그 꿈속에서 여자는 스스로 변태성욕자가 되어 피가학적(마조히즘) 역할로 쾌락에 빠지고 의사는 가학적(사디즘)인 인물이 되어 밧줄에 묶인 여자를 무자비하게 채찍질한다. 이런 과정의 어느 한 장면, 텅 빈 백화점에서 두 사람이 쫓고 쫓기는 쾌락적 놀이를 하는 도중 여자의 기다란 가운 뒷자락이 발에 밟혀 찌익 찢어지고, 전라가 된 여자는 저편 계단 밑으로 사라진다.

바로 이 장면이 검사가 추궁하는 대목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그 장면의 광고용 스틸사진을 꺼내들고 그는 위세당당하게 나를 코너에 몰아세우려 했다. 과열한 키스 장면조차 검열에 걸리던 시절이라 이 나체 장면은 어림도 없는 일이어서 나는 제작자를 설득해 검열 전에 삭제해버렸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일본것이었는데 제작자가 일본에서 이 영화(일본제목 <대낮의 꿈>)를 보고 와서 감독을 물색하던 중 나를 불렀다. 우선 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나서 도저히 이런 성적 유희 같은 것은 자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의 연출스타일하고도 맞지 않는다고 사양했다. 또 검열에도 위험하다고 했더니 제작자의 간청은, 유 감독이 순예술파 감독이고 근엄한 성격이기에 검열관은 관대히 봐줄 것이라는 것이다. 여배우 박수정도 유 감독이면 완전 나체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감독의 연출료도 파격적으로 대우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당시 한 작품의 연출료는 제작기간 동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생활이 궁핍했던 나는 그만 수락했다.

일본영화는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작품의 스타일과 톤으로 실험영화적인 표현양식을 염두에 둔 표현주의적인 방법을 택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치과에서 입 속으로 드릴이 들어가는 컷 다음에 철공소의 드릴이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불꽃 튀기며 돌아가고, 쇠톱이 철판을 자르고, 입술을 의사의 손이 휘저을 때는 성적 환상처럼 풍선들이 하늘로 두둥실 오르고…. 이처럼 몽타주하며 상징성과 율동미를 살렸다. 백화점 세트는 기둥이나 벽은 수직이 아닌 경사로 지었고, 우산들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풍경에다 마네킹들도 살아 있는 여인들로 나열해 극 진행에 따라 웃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게 했다. 꿈속의 세계를 리얼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평상적으로 리얼하게 했더라면 단순 포르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극장용 장편영화로서 이런 실험영화는 처음이었기에 당시 관객의 호기심을 산 바 있어 망신을 면할 수 있었다.

담당검사는 와 관련된 반공법 위반혐의는 더 추궁할 자신이 없었던지 음화제조법으로 나를 꼭 처벌하려는 고집을 꺾지 않으려는 강인한 자세였다. 그러나 나는 진술한 바와 같이 검열 전에 삭제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검사가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하기에 영화평론가들을 소환해서 확인하라고 권고했더니 과연 그들은 한결같이 나체 장면을 못 보았다고 말을 모았다.

검사가 다시 그렇다면 스튜디오 안에는 몇 사람의 촬영종사자가 있었냐고 묻기에 대충 20여명가량이었다고 했더니 검사는 테이블을 쾅 치더니 바로 그것이 음란한 광경이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장면은 나체의 뒷모습이었고 치부는 피부색과 같은 스타킹 조각으로 가리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했더니 재판정에 증인으로 불려온 여배우 박수정은 뜻밖에도 가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증언대에서 증언서약을 하고 성경책 위에 손을 얹은 그 여배우는 정직했지만 나에게는 타격을 주는 증언이었다.

그리하여 선고공판에서는 반공법 위반혐의는 무죄이고 음화제조법에서는 3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흥미있는 재판이었는지 여러 신문사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나는 유죄판결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다시 즉각 상고(소?)했고, 결과는 ‘선고유예’로 끝났다. 다시 또 상고하라는 기자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1년 반 동안이나 시달려온 탓인지 재판소 건물만 보아도 신물이 날 지경이어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유현목/ 영화감독. 1925년생. <오발탄><막차로 온 손님들> 등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