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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이고 시각적인 일기, <빛나는 거짓>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빛나는 거짓>만큼이나 불친절하고 낯선 스타일의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디지털장편영화제작지원 및 배급지원에 힘입어 단관개봉이나마 비로소 극장에서 빛을 보게 된 <빛나는 거짓>은, 안 된 이야기지만 만인을 위한 영화는 결코 아닐뿐더러 그렇다고 해서 일부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낼 법한 그런 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의 연출자인 채기는 개개의 숏 하나하나에 부여된 엄격함과 독자성이 두드러졌던 실험적인 단편 <애절한 운동>과 <빛 속의 휴식>, 좀더 추상적인 시각적 실험을 시도해본 <목록> 연작 등으로 그간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아왔던 인물이다.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 <빛나는 거짓>은 스스로가 그간의 단편작업을 통해 보여주었던 영화적 실험을 좀더 긴 호흡으로 담아내고 확장시키려는 시도이다.

채기의 단편 <애절한 운동>에는 자칫 곤혹스러운 감상경험을 안겨줄 수도 있는 <빛나는 거짓>의 세계로 ‘입문’하기 위해 염두에 두면 좋을 법한 인용문이 나오는데, 바로 “일기의 이점은 그 무의미성에 있다. 그것이 바로 일기의 성향이며 그 법칙이다”라는 모리스 블랑쇼의 말이다. 이 영화가 무의미성 그 자체를 이점으로 삼은 사적이고 시각적인 일기라는 것을 미리 알고서 그 영화적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면, 우리는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세 인물들 각각의 모호한 여정을 보여주는 세개의 에피소드를 차례로 보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짧은 첫 번째 에피소드는 우주관리공사에 근무하는 한 남자의 일상을 그 남자의 얼굴만큼이나 무심하기 짝이 없는 화면들에 담아 보여준다. 거울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뒤적이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등의 무의미하고 평범한 행위들이 나른하면서도 고즈넉한 롱테이크 촬영으로 포착된다. 여기서 우주관리공사에 근무하는 남자 역을 맡은 배우는 그 자신이 실험영화감독이기도 한 이난인데, 그는 역사적으로 상이한 시간대를 모호하게 뒤섞은 기묘한 단편 <기억의 환> 등을 연출한 바 있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에서는 건축 관련 잡지사에 갓 취직해 일하게 된 남자, 그리고 혼자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한 여자가 차례로 등장한다.

분절과 생략이 두드러졌던 <애절한 운동>이나 <빛 속의 휴식>에 비하자면 훨씬 친절하고 알기 쉬운 구조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빛나는 거짓>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역시 부질없는 일이다. 이 영화엔 비록 사소하나마 사건이라 할 만한 것들이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건들은 결코 계열화되거나 관련되어지지 않는다. 달리 말해서 <빛나는 거짓>은 복합사건이 없는 독립사건들의 집합체이며 각각의 사건들은 숏들의 연쇄를 통해 의미화되는 대신 대개는 하나의 숏 안에서 잠깐 동안 솟아났다가 곧바로 사라지고 만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11월30일 오후 5시33분’, ‘12월1일 오전 7시56분’, ‘12월2일 오전 8시54분’식으로 (지나칠 정도로) 정확한 시각을 일러주는 자막이 등장할 때도, 그것은 그저 임의적인 것일 따름이며 우리로 하여금 그 자막 자체의 무의미성을 재확인하도록 만들 뿐이다. 또 밤거리를 걷던 주인공 곁에 한 남자가 나타나 뜬금없이 “우리는 486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살아남은 겁니다. 힘내세요!”라고 말할 때, 주인공만큼이나 우리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흡사 영화적 세부들을 온전히 음미하는 대신 섣불리 의미화하려고 시도하는 관객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감독이 일부러 삽입한 짓궂은 장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건들을 담은 평면적이고 건조한 이미지들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장면들에는 모호하나마 특정한 감정들이, 즉 외부로 솟아나지 못한 열정, 침착함 속에 숨은 당혹감, 말없는 가운데 느껴지는 실망 등이 담겨 있으며 이러한 감정의 기호들을 지각하게 만드는 것은 일견 범상해 보이는 이미지의 소소한 세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나는 거짓>이 완전히 성공적인 실험이라고 말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감정표현이 차단된 연기, 사실적이라기보다는 평범하고 무신경한 대사처리 등은 거의 금욕적이라고 해도 좋을 채기의 영화적 스타일을 구성하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종종 그것들은 지각되는 것 자체에 집중하라는 감독의 전언을 수긍하게 만드는 대신 보는 이에게 그저 무력감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만은 예외라고 보는 게 정당할 것이다. 이때만은 정말로 순수한 로드무비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이유를 들자면 롱테이크로 촬영된 고정숏이 지배적이었던 앞선 두개의 에피소드보다 다소간 유연해진 촬영, 우리가 화면을 통해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는 따스한 대기의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의 두 인물에 비해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제스처를 보여주는 배우 옥지영(<고양이를 부탁해> <가능한 변화들>)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애절한 운동>에 인용된 블랑쇼의 말을 조금 바꿔서 우리는 여행의 이점 또한 바로 그 무의미성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드무비는 여행의 그러한 이점을 활용할 때 가장 매력적이 되는 장르라는 걸 인정한다면, <빛나는 거짓>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순수한 로드무비에 가깝다는 데 동의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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