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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행간을 메운 소설, <외출>
김혜리 2005-09-16

지금까지 영화의 원작이 아닌 ‘영화소설’이라 하면, 영화스틸로 삽화를 대신하고 장면들을 곧이곧대로 받아쓰기한 조악한 책이 대부분이었다. 동명영화 시나리오를 골격으로 삼아 태어난 김형경의 장편 <외출>은 중견 문인이 쓰고, 한국 순수문학의 둥지로 여겨지는 출판사에서 펴낸 영화소설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허진호 감독도 집필을 결심한 김형경 작가를 촬영현장에서 만났을 때 “대단한 용기이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김형경의 <외출>은 불륜의 피해자에서 당사자로 옮아가는 인수와 서영의 내면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하면서 유난히 과묵한 허진호의 영화가 비워둔 ‘행간’을 세세히 메운다. 이를테면 서영이 도로변에 주저앉아 울먹이는 장면에 소설은 이렇게 주석을 단다. “그 자세가 더 나쁘다는 것을 서영은 웅크리고 앉은 다음에야 알았다. 그 자세는 오래도록, 깊이 울게 되기 좋은 자세였다.” 키스없이 섹스로 직진한 영화의 흐름이 느닷없다고 느끼는 관객이라면,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친밀해지는 과정을 서서히 그리는 소설의 호흡이 한결 편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 <외출>은 한 발짝 뒤에서 영화를 다소곳이 뒤따르지만은 않는다. 소설은 인수와 서영이 응급실에서 마주치는 장면을 인수의 시점으로, 다시 서영의 시점으로 두번 기록하는 것으로 출발해 내내 둘의 심리를 공평히 오간다. 인수의 아내 수진이 임신을 원했다는 사실, 취한 인수가 서영의 방에 쓰러진 밤 “냉장고에 물 있습니다”라고 남긴 서영의 메모가 극적으로 중대한 기능을 하는 점도 소설만의 내용이다. 조명감독이라는 인수의 직업과 그의 품성 사이의 관계를 정성껏 구체화한 점도 미덕이다. 소설 <외출>은 일본판도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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