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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1] - 수상 결과
오정연 2005-10-05

베니스영화제 폐막, 황금사자상은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

제6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수상 결과

황금사자상 <브로크백 마운틴>(리안 감독)

은사자상(감독상) 필립 가렐 감독(<레 자망 레귤리에>)

심사위원대상 <메리>(아벨 페라라 감독)

각본상 조지 클루니, 그랜트 헤슬로브(<굿 나이트 앤드 굿 럭>)

남우주연상 데이비드 스트라태언(<굿 나이트 앤드 굿 럭>)

여우주연상 지오바나 메조기오르노(<마음속의 야수>)

특별사자상 이자벨 위페르(<가브리엘>)

신인배우상 메노시 세자르(<남쪽을 향하여>)

기술공헌상 윌리엄 루브찬스키(<레 자망 레귤리에> 촬영감독)

오리존티상 <더 퍼스트 온 더 문>(알렉세이 페도르첸코 감독)

오리존티 다큐멘터리상 <천국의 동쪽>(레흐 코왈스키 감독)

단편 최우수작품상 <간이역>(린 치엔-핑)

단편 특별언급 <라일라 아펠>(레온 프루도프스키 감독)

평생공로상 스테파니아 산드레리

명예 황금사자상 미야자키 하야오

축제는 끝났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예상할 수 있었던 방식으로. 지난 9월10일 현지시각 오후 7시30분에 시작된 제6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폐막식을 지켜보던 기자들은, 각각의 수상 결과가 전해질 때마다 탄식과 환호로 반응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개인적인 취향과 기호에 의한 즉각적인 반응이었을 뿐 이성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권위를 내세우는 영화제라 할지라도,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롭게 빛나는 영화를 만나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리고 올해의 베니스에는 기적이 깃들지 않았다. 그러나 비교적 안정적인 라인업과 무난한 진행으로 최근 몇년에 비할 때 흠잡을 구석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올해의 베니스가 수상작을 둘러싸고 내린 결과는, 합리적이고 무난했다.

리안과 테리 길리엄, 필립 가렐과 마뇰 드 올리베이라, 기타노 다케시와 박찬욱 등 동양과 서양, 묵직한 명장과 발랄한 중견감독,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화려하게 진행됐던 경쟁부문의 라인업은 영화제가 3분의 2 지점을 경과하면서, 예정된 수순처럼 서서히 무너졌다. 물론 전반부에도 기타노 다케시와 테리 길리엄 등 평단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쟁작은 있었다. 하지만 관객은 환호하며 극장을 찾았고,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기자회견장은 미묘한 논쟁으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가르파스툼> <운명론자> 등의 무난하거나 이해불가한 작품들이 포진한 영화제의 막판 일정은 사뭇 지루했던 것이 사실. 이러한 상황은, 아벨 페라라의 논란 많은 신작 <메리>가 심사위원특별상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주요 부문 수상작들이 전반부에 상영된 영화라는 점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조지 클루니, 미국영화 희망의 증거

<굿 나이트 앤드 굿 럭>

초반부터 황금사자를 향한 호쾌한 레이스를 유지한 주자는 조지 클루니의 <굿 나이트 앤드 굿 럭>이었다. 막판까지 폐막식을 중개하는 TV 카메라는 스타이고 감독인 클루니의 얼굴을 연신 좇았고, 그런 그가 황금사자를 거머쥔다 해도 어색하지는 않을 듯했다. 그러나 매카시의 광기에 종지부를 찍은 미국의 언론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세계 최고령의 영화제를 만족시키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영화적으로는 너무 평범하고, 정치적으로는 지나치게 명백했다. 무엇보다 조지 클루니가 작가가 아닌 스타라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확연하다(심지어 기자회견 자리에서 클루니는, 자신이 영화 그 자체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그의 품은 황금사자를 맡기기엔 뭔가 어울리지 않게 번드르르했다. <굿 나이트 앤드 굿 럭>에 돌아간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은, 영화제 전체를 달궈준 영화에 베니스가 선사하는 이성적인 선물이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과 충성하지 않는 것을 헷갈려선 안 된다.” “고발 그 자체가 증거는 아니다.” “미국의 역사는, 소심한 이들의 것이 아니다.” 에드워드 머로가 자신의 생방송 정치쇼에서 민주주의와 언론의 의무, 시민의 정치적 권리에 대해 천명했던 숱한 발언은 아직도 수많은 언론연구가와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성전처럼 여기는 명문. 더군다나 그의 모든 말은, 오늘날의 미국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과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미국 안에서는 금기시되어왔던 소재를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다룬 <굿 나이트 앤드 굿 럭>의 각본가인 조지 클루니와 그랜트 헤슬로프는 적절한 보상을 받았다. 낯설고도 익숙한 외모로 꼬장꼬장한 언론인 머로의 초상을 충실하게 재현한 데이비드 스트라태언 역시 마찬가지다.

조지 클루니는 끝까지 매너를 잃지 않고 주어진 상에 만족하며 즐거움을 선사했다. 시상대에 오른 그는, “이 자리에 서게 되어 기쁘다. 나는 이탈리아어를 잘 못하니까 이 뒤에는 영어로 말하겠다”며 준비된 이탈리아어로 좌중을 기쁘게 했다. 여기에 그는 “이 상을 아프가니스탄 혹은 불행한 도시 뉴올리언스에서 우리에게 진실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기자들에게 바친다”는 소감을 덧붙였다. “문제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발언과 함께. 실제 TV 앵커로 일했던 아버지로부터 자신만만한 자유주의자의 패기를 물려받은 이 사내는 너무 완벽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이 영화의 제작비인 800만달러에 버금가는 출연료를 챙길 수 있고, 힘들여 찍은 영화로 이 휴양도시를 찾지 않더라도 리도의 해변에 별장 정도는 가볍게 지을 만한 재력을 가진 인물. 눈과 마음과 머리를 동시에 뿌듯하게 만드는 클루니는, 할리우드와 미국이 여전히 영화적이고 정치적이라는 희망을 보이는 증거 중 하나였다.

리안의 부활, <브로크백 마운틴>

<브로크백 마운틴>

그리고 아시아 출신의 기묘한 거장 리안 감독. <결혼 피로연> <센스, 센서빌리티>로 베를린에서 금곰상을 손에 넣는 등 아주 오래전부터 촉망받는 작가였으며, 직전에 완성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헐크>로 참담한 평가를 받으며 한 차례 추락을 경험한 그였다. 올해 베니스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게이 카우보이들이 평생을 이어가는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라는, 본인의 장기를 최대한 살릴 만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돌아온 그에게 황금사자를 안겨줌으로써, 최고의 재기전을 완성했다. 배우와 스탭들을 이끌고 토론토영화제까지 날아갔다가 호텔 입구에서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뒤 다시 베니스로 돌아왔다는 리안 역시 못내 감격을 억누르지 못했다.

경쟁부문을 통틀어 가장 슬픈 영화로 기록될 만한 <브로크백 마운틴>의 애잔함은, 두 주인공인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홀)와 에니스 델 마르(히스 레저)가 세월 속에 망가지는 동안 변함없는 품새로 세월을 견디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풍광에서 비롯된다. 1960년대 초. 계절이 바뀌는 동안 산속에서 양을 방목하는 카우보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잭과 제이크는 운명적인 이끌림을 경험한다. 오직 수백 마리의 양들만이 그들을 지켜볼 뿐인 고립된 곳에서 달콤한 사랑을 나눈 이들은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 헤어진다. 가슴을 찢는 아픔을 애써 삼키며 무심하게 이별한 두 사람은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난 뒤에도 20여년에 걸쳐 1, 2년에 한번씩 만나면서 평생에 걸친 사랑을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두 젊은이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철저하게 쇠락해간다. 두 사람의 첫 번째 재회부터 둘의 관계를 알게 된 에니스의 아내는 몇년이 흐른 뒤 남편에게 작별을 고하고, 카우보이 여왕과 결혼한 잭은 처가의 등쌀과 현실적인 사업,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 속에서 기괴하게 변해간다.

리안 감독이 그 어떤 이방인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오늘날의 미국과 서구를 통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유물론적인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두 남자 사이에 흐르는 성적 긴장감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가장 육감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고, 둘의 사랑 역시 더없이 육체적이다. “원작이 말하는 보편적이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옮기고 싶었다는 감독은, 모든 예술적 클리셰를 거부한 채 이를 실천한다. 존재를 관통할 만큼 애절한 연애를 경험한 두 사람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모습은 가장 실제적이고, 가슴 아픈 증거(상황)를 통해 보여진다. 동성애를 둘러싼 사회의 편견과 장애는 단지 말 한마디나 불분명한 감정에 그치지 않고, 늘 현실적으로 치명적이다. 편견을 포함한 모든 감정, 제도를 포함한 부조리한 사회 전체는, 아주 찬찬히 살펴보면 그처럼 눈에 보이는 명백한 실체가 모여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가 감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브로크백 마운틴의 무심한 자연을 담을 때뿐이다. 실제로 기자회견장에서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홀은 캐릭터와 상황을 분석하고 제시하는 리안 감독의 꼼꼼한 안목을 말했다.

어쨌거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1992년의 <숏컷> 이후 13년 만에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이 된 미국영화로 기록됐다. 신뢰감을 주는 아시아 출신 감독의 작품으로 보편적인 주제와 깊이있는 시선을 지닌 이 영화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원동력 삼아 진행된 올해의 베니스영화제가 취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속빈 강정이었던 아시아영화들

특별 사자상을 수상한 이자벨 위페르

수상 이후 기자회견에서 리안은, 베니스에서 이런 결과를 거둔 것이, 아시아 작가에게는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기간 베니스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허우샤오시엔 등에게 손을 들어준, 명실상부한 아시아영화의 발굴장이었다. 그러나 올해의 아시아영화는 자신의 뿌리를 깊이 인지한 사려 깊은 거장이, 낯선 문화를 소재로 쾌거를 이루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에 그쳐야 했다. 요란스럽게 깜짝 초청된 기타노 다케시의 <다케시들의 것>은 자의식 과잉의 태작이라는 평가를 면치 못했고, 기대를 모았던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는 감독의 명백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영화 그 자체로는 <올드보이>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홍콩 예술영화의 기둥이었던 관금붕의 <장한가>는 “비주얼은 아름답지만, 내용은 텅 비어 있는” 영화라는 평가 속에 조용히 잊혀졌다.

베니스의 남모를 자부심이 되어야 했던 자국영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세편의 경쟁부문 이탈리아영화 중 가장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크리스티나 코멘치니 감독의 <마음속의 야수>에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것은 영화제쪽의 고민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상은 한정되어 있고,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은 국제영화제가 챙겨야 할 정치적 입장 표명과 포석은 다양한 법이다.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였던 <가브리엘>의 이자벨 위페르가 지난 20년간 단 두번만 존재했던 특별사자상을 받아야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리안 감독 인터뷰

“이방인은 더 선명한 시선을 가질 수 있다”

리안 감독

-영화 속 인물들이 굉장히 풍부하고 깊이가 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단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서사시의 구성을 가진 원작의 특징이었다. 주인공의 인생 속 다양한 단면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공백을 메워야 했다. 2, 3년의 간극을 두고 진행되는 짧은 신을 통해 그것을 보여줘야 했다. 20대에서 40대까지 소화한 두 젊은 배우들은 설득력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시간의 흐름을 계속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의상, 메이크업, 헤어 등에 신경을 썼지만 그런 미세한 변화 대부분은 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성애자의 사랑 이야기와 이성애자의 그것은 어떻게 다른가. 60년대를 배경으로 카우보이의 동성애를 다룬다는 것이 미국 안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했을 것 같다.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이든, 동성애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는 좀더 힘겹고, 많은 장애가 있음에도 빠져든다는 점에서 더 로맨틱할 뿐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의 어두운 측면에 매혹되는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정말 솔직하게, 더도 덜도 아닌 진짜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었다. 정치적인 문제는 별 고민이 아니었다. 사랑 이야기는 모든 문화를 관통하고 모든 문화에서 통한다고 믿는다.

-이방인으로서 이처럼 미국적인 감성을 기초로 하는 영화, 미국을 직시하는 영화를, 훌륭하게 만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때로는 외국인이 모든 것을 좀더 선명하고 즉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텍스트를 그 자체로 대할 수 있다. 가장 큰 적은 일찌감치 장르로 ‘개발’된 서부영화였다. 현실적인 사실성을 중시하는 나에게, 영화적인 관습이 방해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신이 중화권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대해 만든 영화들 모두, 그 배경이 매우 자세하고 정확하다.

=대개의 경우 나는 잘 모르는 것을 영화로 만들면서 무엇인지를 알아나간다. 일단 가장 먼저 보편적인 주제, 모두가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포착한 다음 아주 겸손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거다. 이를 위해 언제나 주변 모든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연민하며, 인격을 부여한다. 사람들은 내가 서구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그 정확성에 대해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정말 어려운 건 사람들이 영화 등을 통해 가지게 된 서구에 대한 개념이다. 나는 그 개념에 맞서 싸워왔다.

-예전에 <와호장룡>이 칸 경쟁부문에서 상영되지 못한 것이 서운하지는 않았나.

=<와호장룡>은 좀더 상업적인 비경쟁 부문에 어울리는 영화였다. 이 영화도 비경쟁 부문이 어떻겠냐는 말을 했는데, 사람들은 이 영화가 그렇게 상업적이지 않다고 하더라. (웃음) 한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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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지원 김은정/ 로마 통신원·사진제공 GA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