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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이란 건설적인 것, <과거가 없는 남자>
홍성남(평론가) 2005-10-11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을 두고 프랑스의 작가 장 지로두는 ‘짐 없는 여행객’이라 불렀다. 이 어구를 제목으로 삼은 또 다른 프랑스 작가 장 아누이의 희곡은 이제 짐작할 수 있듯이 망각의 강을 헤엄쳐야 하는 인물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그 인물 가스통이 꽤 흥미로운 캐릭터인 것은 그로서는 잃어버린 과거를 차라리 복원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한다. 이래저래 되찾아진 기억은 그가 예전에 악행만을 일삼던 ‘괴물’이었음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멀리 나아가지 말고 딱 이 정도의 기본 전제에서만 본다면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는 가스통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물, 즉 기억을 잃기 전의 삶이 그리 평탄치 않았던 인물에 대한 영화다. 그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카우리스마키는 멀리는 <마음의 행로>(머빈 르로이, 1942)로부터 가까이는 <메멘토>(크리스토퍼 놀란, 2000)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 무척이나 애를 쓰는 기억상실 상태의 영화 속 주인공들을 재차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기억상실의 상태를 말 그대로 ‘상실’로 느끼기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체화하게 된 인물, 그래서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돌아가려 하기보다는 과거란 짐을 벗고 새로 발견한 세계 속에 발을 딛게 되어 거기에 정착하려는 여행자를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점을 강조하기라도 하듯이 영화는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주인공 ‘남자’(마르쿠 펠톨라)를 죽음으로부터 소생시킨다. 기차를 타고서 헬싱키에 도착한 다음 강도의 습격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그는 이미 사망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카우리스마키의 대담한 유희정신은 온몸을 붕대로 감은 그를 마치 미라가 갑자기 일어나듯 ‘우스꽝스럽게’ 되살려놓는다. 이어서 그는 어느 빈민가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남자’가 필연적으로 와야만 할 곳인 듯한 그곳에서 그는 군소리 않고 새 삶을 시작한다. 거기서 그는 기거할 곳을 찾고 일을 구하며, 구세군에서 일하는 이르마(카니 우티넨)에게서 사랑을 얻는다.

언젠가 (흔히 ‘기억의 시네아스트’로 일컬어지는) 알랭 레네는 망각이란 건설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과거가 없는 남자>는 바로 그런 잠언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나중에 밝혀지는 바에 따르면 ‘남자’는 도박에 미쳐서 아내한테는 무관심했던, 실격의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그는 그 침침한 과거를 자신의 인생에서 완전히 내다버린다. 마을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면서 그는 삶의 에너지라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 아울러 그는 구세군 악단에 그들이 습관적으로 연주하곤 하는 것들보다 흥겨운 음악(로큰롤, 블루스, R&B)이 있음을 알려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수의 마을 사람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주입해주는 데 톡톡히 한몫한다. 그의 이런 갱생은 이혼한 부인의 애인이 던지는 ‘당신은 내가 듣던 것보다는 좋은 사람인 것 같군요’라는 말로 완전한 승인을 받기에 이른다.

영화는 ‘남자’의 이런 재생이 어쩌면 그가 그것을 위해 꼭 발을 디뎠어야 했던 공간에 제대로 당도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무도 소리치지 않고 또 아무도 웃지 않는다는 것이 연기의 두 가지 규칙이라고 말하는 감독의 영화인 만큼 이번에도 인물들은 얼굴을 통한 표현이란 것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언뜻 생각하기와는 달리 이것은 낡고 더러운 컨테이너에서 살고 구세군에서 나눠주는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가난한 인물들의 내외면적인 황량함의 반영은 아니다.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짓고 있는 뿌루퉁한 표정 그뒤에는 여지없이 선한 마음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몸이 성치 못한 낯선 ‘남자’를 보살펴주고(니미넨 부부), 그의 거처에 둔 주크박스를 고쳐주기도 한다(전기기사). 사람들의 돈이나 뜯으려 궁리하는 악질처럼 보이는 경비원도 알고보면 공격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물컹이일 뿐이다. 직원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은행강도가 된 파산한 전 건설회사 사장의 이야기에 이르면 그 선의에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기까지 한다. 영화는 ‘남자’의 갱생 과정을, 그가 이 친절한 사람들과 ‘우리’로 합류하기까지의 과정과 겹쳐놓는다. <떠도는 구름>(1996)에 이어 빈곤한 사람들의 삶을 다룰 삼부작(이른바 ‘빈민 삼부작’)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이 영화는, 그렇게 순진하게, 하지만 진심을 담아, 삶의 에너지를 가져 마음은 풍요로운 그 사람들을 찬양하고 그들 사이의 ‘결속’을 지지한다.

전반적으로 <과거가 없는 남자>는 무표정함 뒤에 감정을 감추고 있는 영화 속 인물들을 닮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여느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들처럼 <과거가 없는 남자>는 카메라워크, 편집, 연기 등에 있어서 ‘꾸밈’을 자제하면서도 그 무표정의 스타일로부터 다채로운 감정이 배어 나오게 하는 영화인 것이다. 예컨대, ‘남자’와 변호사가 건성인 듯 악수만 하고 헤어지는 뚱한 장면이 관객에게 어이없이 유쾌한 웃음을 안겨준다면, 총소리만으로 은행강도가 된 남자의 자살을 알려주는 장면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우리의 감정을 가장 많이 흔드는 것은 ‘정체’를 알게 되어 부인을 만나러 갈 ‘남자’와 이르마가 헤어지기 전 포옹하고 이별의 말을 나눌 때일 것이다. 둘 사이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안타까운 대화를 포착하는 이 장면은 덤덤한 듯 바라보지만 대상에 대한 공감이 담겨 있어 만만치 않은 정서적 울림을 전해준다. 유사한 방식으로 구축되었지만 감정적으로 밋밋했던 카우리스마키의 데뷔작 <죄와 벌>(1983)과 비교해보면, 분명히 이 감동적인 영화는 멀리 와 있다. <필름 코멘트>의 편집장 개빈 스미스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과거가 없는 남자>는 카우리스마키의 스타일이 나이를 잘 먹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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