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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영진위 남북영화교류추진특별위원회 평양방문기
2005-11-16

지금 평양은 영화를 향해 순항 중

평양에서 본 아리랑 공연

평양 순안공항 착륙장으로 향하는 특별기 차창 아래로 한창 공동작업에 열중인 북녘 사람들의 분주한 몸놀림이 내려다보인다. 남쪽 산하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지만, 밭농사 작업장 인근에 군데군데 설치된 초소 옆으로 늘 그래왔던 듯이 무장한 군인들이 2인 1조로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과 묘한 병치를 이루고 있다.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차창 밖을 바라보던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남북경제협력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서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북녘 땅을 밟고 되돌아갔을 터이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북녘 땅을 밟아본 필자가 처음 목격한 광경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단지 일견하는 것만으로도 은연중에 파악해버린 북녘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지나치자 우리는 어느새 순안공항에 도달해 있었다.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평양 방문은 지난해 조문 파동 이후 중단된 남북영화교류를 재개하기 위한 일차적 목적이 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 주최로 진행된 “경제·문화인 평양방문” 행사에 참여한 150여명 중 필자를 포함한 영화진흥위원회 방북대표단 일행(영화진흥위원회 안정숙 위원장, 김혜준 사무국장, 영화진흥위원회 남북영화교류추진 특별위원회(이하 남북특위) 김경웅, 신동호, 이효인 위원 등 6인)은 앞으로 지속적인 영화 교류와 협력을 진행할 수 있는 ‘핫라인’ 형성에 무엇보다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시기를 되돌아보면 남측 영화계의 북측 6·15 공동선언문 채택 뒤 남북 양측은 “남한과 북한”이란 용어 대신 남측과 북측 또는 남쪽과 북쪽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정체가 다른 두 국가의 차이를 강조하는 남한과 북한이란 표현 대신 사용하는 후자와 같은 용어들이 처음엔 다소 어색하기도 했으나 본 방문기를 쓰는 동안 오히려 남한과 북한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어느덧 적응해가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양쪽이 모두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고려(Korea)라는 명칭보다 더 우리의 동질성을 강화할 만한 용어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첫 간담회, 원론에 대한 재확인

영화당국과의 최초 접촉 시점은 다른 문화 분야보다 오히려 더 빨랐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던 해인 2000년 11월 임권택 감독을 포함한 영화계 대표로 구성된 10인의 방북대표단 일행은 8일간의 북쪽 방문에서 네 가지 비공식 합의를 이끌고 귀국한 바 있다. 그러나, 조문파동 이전에 거의 성사될 뻔했던 남북 애니메이션 워크숍을 제외한다면 네 가지 항목에 걸친 그 당시 합의가 현실화되진 못했다. 이번 평양 방문은 그런 점에서 답보 상태에 있는 남북영화교류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루트 개설을 할 수 있느냐가 주된 관건이 될 터였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특수촬영 세트

방북 첫날, 우리는 애초 예정되어 있던 북쪽 영화계와의 첫 미팅을 때마침 진행된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평양 방문 일정으로 평양이 아닌 묘향산 향산호텔에서 가졌다. 이날 간담회는 북쪽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 문화담당 참사인 박현학, 김광성 일행한테 영화진흥위원회 안정숙 위원장이 미리 준비해온 ‘남북 영화교류추진 제안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제안서에는 총 8개 항목에 달하는 남북영화교류추진을 위한 주요 사업들과 의제들이 제시되어 있었다. 안정숙 위원장은 “남과 북이 영화를 통해 교류하고 통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작업이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하며, 이러한 작업을 위해 금강산 통일극장 설립사업, 남북 영화인 교류, 영상자료 및 학술 교류 추진, 저작권 중개를 위한 창구개설, 남북 공동제작 영화지원, 남북문화교류센터 설립 등을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했지만, 북쪽 민화협 관계자들은 우리가 제안한 낯선 사업들에 대한 검토보다 ‘먼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간담회가 진행되는 동안 사업 진행 이전에 좀더 ‘명백하게’ 무언가가 제시되기를 반복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지난 수년간의 남북 교류 과정에서 일반화된 ‘원조’ 차원의 제안사항이었음을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어쨌거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쪽 소재 프로젝트들(<황진이>(씨즈 엔터테인먼트·씨네2000 공동제작), <국경의 남쪽>(싸이더스 제작), <압록강은 흐른다>(조이슈즈 엔터테인먼트 제작 등))을 진행하는 데 원작 판권문제 해결이나 현지 로케이션 촬영문제가 중요한 의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덧붙여 지속적인 영화 교류의 창구를 가져가기 위한 ‘남북 문화협력 협의 사무소’(10월 말 개성에 문을 연 남북경협협의사무소의 문화 분야 모델) 설치 등이 좀더 심도 깊게 논의될 수 있기를 우리는 더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북쪽 관계자들에겐 그러한 사업 제안보다 당장 그들 앞에 놓인 ‘저개발의 상흔들’을 감추고 어떻게 남쪽 관계자들에게 ‘자존심 구기지 않는’ 사업제안 수락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더 중요해 보였다.

2시간여가량 진행된 첫날 간담회는 과거 영화인 방북대표단이 그러했던 것처럼 원론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차원 이상의 의미 부여를 하기는 힘들다. 성과가 있었다면, 향후 남북영화교류의 공식적인 핫라인을 북쪽 민화협으로 일원화한 사실. 민화협 박현학 참사는 안정숙 위원장의 “앞으로 남북영화교류 창구를 민화협으로 생각해도 될까요”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 민화협을 통해 공식적으로 하십시오. 그런 연후에 영화 일꾼들과 세부 사항을 논의하시면 되갔지요”라고 답했다. 이 대목에서 무엇보다 지난 5년간 수차례의 대북 영화교류 제안서 전달과 방북 사업을 전개했음에도 특별한 화답없이 진행된 일방적인 짝사랑을 이제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가는 상열지사’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호기가 형성될 조짐을 읽을 수 있었다.

내나라 비데오사와의 만남 그리고 성과

방북 둘쨋날. ‘경제 문화인 방문단’과의 공동일정을 마치고 숙소인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경. 전날 민화협 참사들과의 간담회가 비교적 관례적인 만남이었던 탓에 기회를 봐서 2차 간담회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이미 밤이 깊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회담은 사실상 무산되는 듯했다.

내나라 비데오사 대표 일행과 함께. 이날 간담회에서는 향후 북쪽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지 않고도 활용할 수 있는 내나라 비데오사의 영화들을 목록만이라도 확보하는 데 합의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번 방북단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경문협 문화협력위원장이기도 한 남북특위 신동호 위원(시인이자 북학문학 전공자인 신동호 위원은 몇 차례의 방북 끝에 벽초 홍명희 선생의 손자인 홍석중 선생의 소설 <황진이>의 영화화 저작권을 획득하는 일을 성사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으로부터 북쪽 영화관계회사인 ‘내나라 비데오사’ 대표 일행과의 미팅 일정을 성사시켰다는 전갈이 도착했다. 내나라 비데오사는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 당시 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00여편이 넘는 기록물을 제작하고 있는 회사다.

간담회는 얼마 전 남쪽에서도 개봉된 대니얼 고든의 <어떤 나라>(A State of Mind)의 일부 장면을 현재 제작 중인 영화 <국경의 남쪽>의 설정화면으로 사용하고자 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사용할 수 없게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서론을 생략한 채로 진행되었다. 혹 내나라 비데오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중 남쪽이 기획·제작하고 있는 극영화에 설정화면으로 활용할 만한 장면들이 필름 혹은 HD급 영화로 존재한다면 남쪽의 영화제작에서 내나라 비데오사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중요한 판단 근거가 형성될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내나라 비데오사 홍강석 대표는 시종일관 영화 <국경의 남쪽>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인가를 궁금해했다. “<국경의 남쪽>의 영화 내용은 예술영화겠죠?”

북쪽과 남쪽의 예술영화에 대한 개념 차이란 하늘과 땅 차이겠지만, 남쪽 대표단 일행은 영화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고, 회담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간담의 중요한 성과라면 향후 북쪽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제작할 때 현지 로케이션 촬영 등을 진행하지 않고도 활용할 수 있는 내나라 비데오사의 영화들을 목록만이라도 확보하는 데 합의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남쪽 대표인 김혜준 사무국장은 “향후 몇 차례의 방북을 통해 좀더 남북영화교류의 의견 차이를 좁히는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가까운 시일 내에 평양 혹은 개성에서 남북 영화인 대회를 개최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북쪽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었다.

방북 셋쨋날. 이날은 북쪽 영화관계자와의 간담회 일정을 잡는 대신 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인천공항행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100만평 규모의 조선예술영화촬영소(남양주종합촬영소의 연면적인 약 40만평인 점을 감안한다면 두배가 넘는 규모다)의 곳곳을 관람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북쪽이 영화란 매체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방북 셋쨋날 찾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왼쪽부터 신동호 위원, 김혜준 사무국장, 안정숙 위원장, 이효인 위원, 김태형씨.

촬영소 관람 내내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대외사업부 김만석 과장은 “가까운 시일에 남쪽 촬영소도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은연중에 남쪽의 영화제작 시설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저희가 다시 올라올 땐 꼭 남양주종합촬영소로 초대하는 정부 당국의 초청장을 들고 오갔습네다.” 어느새 2박3일간의 짧은 일정 동안 입에 밴 평양 사투리를 어줍게 흉내내는 일이 유행처럼 방문단 전체에 퍼진 까닭에 작별 인사를 하는 내내 우리 일행은 연신 ‘네다’체를 연발하고 있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회색빛이다 못해 잿빛처럼 보이기까지 한 평양시의 외관은 분명 낯선 남쪽 이방인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인공적인 세트장의 풍경으로 다가올 법도 하다. 분주히 거리를 오가는 평양 시민들을 북쪽 수행원들이 보이지 않게 쳐놓은 포토라인 안에서 바라볼 때 느껴지던 친근감과 거리감의 공존 또한 서울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몇 개월 동안 무려 1만여명의 남쪽 사람들이 관광지인 금강산이 아닌, 북쪽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평양시를 방문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분명 획기적인 변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단지 궁핍한 경제를 외화벌이로 만회해보겠다는 의도 정도로 파악하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은 일은 이제 남과 북이 반세기 이상을 서로 격리시키며 상이한 문화적 정체성을 갖고, 문화의 차이가 사상과 의식의 차이로 나타나게 된 현실을 어쨌든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할 촉매제임에 분명하며, 양쪽이 향후 갖게 될 교류의 폭과 깊이에 따라 다른 어떤 분야보다 빠른 문화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신뢰형성이 중요한 시점이다.

‘저개발의 기억들을 뒤로 하는 영화 도시를 향하여’ 지금 평양은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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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태형/ 영화진흥위원회 남북영화교류추진특별위원회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