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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옥·고윤희의 러브토크 [1]
사진 오계옥 정리 김도훈 2005-11-17

<러브토크>의 주연배우 배종옥, <연애의 목적> 고윤희 작가의 사랑과 영화에 관한 수다

“연애가 다른 게 아니에요. 좋고 끌리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아무 계산없이 즐거운 시간을 쌓는 게 연애예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즐기면 되잖아요.” 유림의 유들유들한 대사에 <러브토크>의 써니라면 무어라고 답했을까. 그야 누구도 모를 일이다. <연애의 목적>과 <러브토크>가 말하는 사랑은 빛의 속도로도 서로에게 도달하지 못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하나는 발칙하고 고통스럽게 까발리며 ‘시작하는’ 연애담이고, 다른 하나는 시커멓게 속으로만 머금은 채 체념하다 ‘끝나는’ 연애담이니까. 도저히 대화가 통할 리 없는, 다른 세계다. 하지만 두 상극의 연애담을 만들어낸 여자들을 한자리에 모은다면, 어쩌면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연애의 목적>을 쓴 당돌한 고윤희 작가와 <러브토크>에서 마사지 테라피스트 써니를 연기한 배종옥을 한자리에 모았다. 한옥을 개량한 안국동의 한 소담한 와인바에 두 사람은 30분의 시간차를 두고 도착했고, 와인 두어잔에 지난 연애와 영화 속 남자들(그리고 현실의 남자들)을 안주 삼아 대화를 시작했다. 30대 작가와 40대 여배우의, 이 죽일 놈의 연애에 대한 러브토크.

고윤희/ <러브토크>를 보면서 이 영화는 써니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배종옥씨와 굉장히 잘 어울렸던 것 같고, 캐릭터에 대한 감독의 진득한 애정이 느껴졌다.

배종옥/ 써니는 중요한 인물이다. 걱정했던 부분은, 캐릭터와 비주얼이 강하기 때문에 지겨워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거였다. 보이는 듯 아닌 듯하면서 영화의 맥을 잡아줘야 했다.

고윤희/ 시나리오만 읽는다면 써니는 도저히 가닥이 잡히지 않는 캐릭터다. 그런 역할을 강하게 연기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사에 영어가 섞여 있고, 한국어도 영어발음처럼 흐트러지기도 하고. 감정을 싣기도 힘들었을 텐데.

배종옥/ 게다가 한신에서도 감정이 여러 번 튀지 않나. 감정이 올라갔다 또 내려갔다.

<러브토크>는 사랑과 연민 사이의 모호함을 그린 영화

고윤희/ <연애의 목적>의 두 배우가 어려도 잘해냈던 이유는, 감정을 따라가는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의 목적>과 <러브토크>는 같은 연애 이야기지만, <연애의 목적>은 술먹고 취해서 지르는 이야기이고, <러브토크>는 이성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감정이 표현되지 않는 이성적인 영화라 배우들이 더 힘들어 보였다.

배종옥/ 힘들었다. 이윤기 감독은 음악을 함께 들을 때도 ‘이 음악은 감정이 이렇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어떤 상황에서 대사를 이렇게 저렇게 해라 마라가 아니라, 이 대사는 느낌이 이렇게 살았으면 한다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그게 이윤기 감독의 독창적인 부분인 것 같다.

고윤희/ 그런데 <러브토크>를 보고나서, 보통의 한국 남자가 지니지 못한 독특한 감성을 지닌 이윤기 감독이 왜 이토록 어렵게 그 감성을 표현했나가 궁금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쓸 때 직설적으로 까고 가는데, <러브토크>는 캐릭터를 내지르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간다. 두터운 외피를 벗겨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제목도 <러브토크>이고, 라디오라는 설정을 통해서 인물들을 엮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끝이 날까. 그래서 처음 봤을 땐 파악이 안 되더라. 무엇 때문에 좋은 건지 모르겠더라. 근데 하루가 지나고 나니 영화의 느낌이 다시 떠오르는 거다.

배종옥/ 감독에게 써니가 지석(박희순)을 자꾸 지켜보기만 하는데 그게 사랑이 맞냐고 물었다. 감독이 그러더라. 사랑일 수도 연민일 수도 있는 불분명한 감정이라고. 그런 모호한 감정을 보여주고 싶다고.

고윤희/ <러브토크>의 정의하지 않는 매력이 좋았다. 사실 처음엔 그 점이 가장 재미없었다. 라디오를 끌어들였으면 그걸로 뭘 좀 해보지. 써니도 뭔가 이야기하려다 항상 참기만 하고, 아무 표현도 못하는 지석은 남자로 보면 바보 같고. (웃음) 처음엔 감독이 여러 여자한테 차인 이야기를 빙빙 돌려서 해놨군 싶었다. (웃음) 근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바로 그게 강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적으로 엮어지지도 않고 스치듯이 주변부에만 있으면서 각자의 감정을 지키기만 하는 것 말이다. 만약에 배종옥씨가 써니라면 지석이를 어떻게 했을까.

배종옥/ 써니가 지석이를 사랑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지석을 통해 자신의 옛 모습을 본 것 같다. 중심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주변만 헤매는 자신의 모습. 지향하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사라져가는 자신의 삶을 본 것 같다. 사랑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강하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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