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SM, 그 도착적인 강렬함, <도쿄 데카당스>

스물두살의 아이(니카이도 미호)는 도쿄의 SM클럽에서 일한다. 그녀의 손님들은 호텔 방에 갇혀 마약과 술로 은밀한 욕망을 달랜다. 섹슈얼 판타지에 집착하는 그들에게서는 삶에 대한 희망 대신 죽음과 적막한 공허함이 묻어나온다. 아이는 그들을 상대로 돈을 벌지만, 그녀 역시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 진정한 사랑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삶에 대한 소박한 소망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현실의 극단에 서 있는 그녀에게 살아 있음은 곧 결코 변하지 않을 무료한 순간들을 견디는 일에 다름 아니다.

<도쿄 데카당스>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 <토파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무라카미 류는 이 영화를 직접 감독했다. 총 12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던 원작 소설 중 두편의 내용이 영화의 바탕이 되었다. 그가 형상화한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듯한 익명의 공간 안에는 그 속에서만 관계를 형성할 줄 아는 남자들이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지고 관계를 ‘사는’ 이 탐욕적인 남자들은 역설적이게도 마약과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삶의 무게를 혹은 삶의 가벼움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영화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행위하며, 회색빛 쾌락의 도시에 내던져진 아이에게 연민의 시선을 던지지만, 정작 불쌍한 것은 껍질만 남은 듯한 퀭한 눈빛으로 자아를 잃어가는 남자들이다. 그들은 각각이 고립된 공간 속에서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삶을 건조하게 반복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단편들이 지녔던, 도시의 안개처럼 쓸쓸했던 감수성은 영상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오히려 설명적으로 변하여 그 울림이 반감되고 있다. SM 그 자체만을 보여주었더라도 충분했을 텐데, 그는 영상화된 극단적인 행위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것을 걱정했던 것일까. 그는 영화 속 인물의 입을 빌려 굳이 사회를 결부시키며 이렇게 ‘해설’한다. ‘자랑스럽지 못한 일본의 돈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에 빠져 마조히스트가 되는 것이다.’ 영화 속,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이러한 인과관계 속에서 어쩐지 그 도착적인 강렬함, 그 잉여의 아픔을 안전하게 정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섯번의 심의를 거쳐, 6분가량의 분량이 삭제된 끝에, 이제야 겨우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