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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의 영화만들기 [1]
사진 이혜정이영진 2005-12-20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취재 기획은 올해 여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8월 말이었을 텐데,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 생전 처음 보는 게시물이 하나 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을 위한 연극놀이 캠프’를 개최한다는 소식이었다. 알고 보니, 남양주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수만 5천여명. 그러나 이들을 배려한 복지 환경은 전무했고, 이를 감안한 영진위와 문화관광부가 지역사회단체들과 함께 사회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며칠 동안의 연극캠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7월부터 이미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영상물 제작 강의를 시작했고, 가을에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영상을 통한 기본적인 심리치료 시간도 계획되어 있었다. 미리 김칫국부터 마신 것일까. 기대와 달리 프로그램 담당자는 취재가 곤란하다고 했다.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정부가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 이주노동자들이 노출되는 걸 꺼리는데다 프로그램 진행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고 난 뒤 3개월 가까이 지났다. 다시 연락을 취했지만, 이미 모든 프로그램들이 끝났거나, 마무리 단계였다. 그럼에도 세 차례의 취재에 나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번으로 끝나는 이벤트여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올해의 아쉬움은 내년의 숙제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아니, 손이 반대로 된 거 아녀. 저렇게 절하면 조상님들한테 하는 건데….” 경기도 양평에 사는 김옥자(60)씨는 끝끝내 훈수를 두고 만다. 구경꾼이 그러할진대, 이날 혼례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영광(민족혼뿌리내리기시민연합 사무총장)씨의 심정은 어떨까. 그의 이마는 매서운 한파에도 식은땀 줄줄이다. “어허, 절했으니까 이젠 일으켜줘야지….” 최씨는 쉬지 않고 주문들을 콸콸콸 쏟아내지만 영 효력이 없다. 노련한 들러리가 붙었다면, 한결 수월할 텐데. 신랑, 신부는 물론이고 들러리들까지 모두 초보 외국인들이다. 게다가 영어로 통역까지 이뤄지니 결혼식 진행이 서툴고 더딜 수밖에 없다.

11월13일 오후 2시, 남양주종합촬영소. 한옥 세트가 있는 운당은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하다. “외국인들이 결혼식 체험 하나봐.” 얼굴색 다른 이들이 사모관대 차려 입고, 족두리 쓴 것이 신기했는지 여고생들은 디지털카메라를 꺼내면서 키득거린다. 자신들이 ‘진짜 결혼식’에 우연한 하객으로 참석하게 됐는지는 모르고서 말이다. “이 결혼식 진짜인데….” 참다 못해 슬쩍 내막을 일러줬더니 그때야 “정말이에요?” 한다. 운당을 나서려다 말고 여고생들은 정재영과 수애 대신 외국인 남녀의 얼굴로 가득 채워진 <나의 결혼원정기> 패러디 포스터를 다시 한번 꼼꼼히 들여다본다.

낯선 나라 한국에서 백년해로 기약하는 이들은 모두 촬영소 인근 마석 가구공단에서 일하는 4쌍의 이주노동자들이다. 샬롬의 집, 남양주이주노동자여성센터 등의 사회단체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대상자를 선정해 치러진 이날 결혼식은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다.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을 피해, 넉넉하지 않은 생활고에 좇겨,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한국에서 생활을 함께한 이들 중엔 등 붙이고 산 지 “10년이 다 된” 부부도 끼어 있다. 촬영소 책임자인 정병각 감독은 “어제까지만 해도 해가 떴는데…”라며 “날씨만 좋았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해프닝 없는 잔치가 흥겨울 리 없다. 놋그릇에 담긴 물에 신랑 신부가 나란히 서 손을 씻는 의식 때는 파트너가 바뀌질 않나, 신랑과 신부가 술을 나눠 마시는 각거음(各擧飮) 때는 급한 마음에 ‘원샷’을 감행하질 않나, 안 웃고는 못 배길 상황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너무 어려워요. 이런 스타일은 처음 봤으니까.” 한국에 온 지 8년 됐다는 ‘1번 신랑’ 우잘(30)은 “세살배기 딸내미 유나가 보고 있으니까 더 잘해야 한다”고 생글거린다. 노란 꼬까옷 입은 유나는 엄마, 아빠의 지각 결혼식을 알까. 유나는 아빠가 시선을 던지는데도 삼촌이라 부르는 청년과 목마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