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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캐릭터가 만드는 잡다한 이야기, <빅 화이트>

인적은 드물고 하얀 눈만 끊임없이 내리는 알래스카. 이곳만큼 이야기가 시작되기 좋은 장소도 없다. 설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감추고 있다. <인썸니아>나 <파고>를 떠올려보라. 드넓게 펼쳐진 설원은 숭고하지만,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그들은 줄곧 목숨을 걸고라도 이곳을 벗어날 상상을 멈추지 못한다. 그래서 인물들 사이, 인간과 설원 사이에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빅 화이트> 역시 그런 영화지만, 여기에는 그러한 긴장감을 일순간 이완시키는 유머도 있다.

바넬(로빈 윌리엄스)은 알래스카에서 투렛증후군(무의식적 행동으로 특성화된 신경장애로 눈 깜박임, 얼굴 찡그림 등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게 되는 현상)을 앓는 아내 마가렛(홀리 헌터)과 산다. 그가 운영하는 여행사는 파산한 지 오래고, 아내의 치료비 때문에 경제적 부담감은 더해간다. 그는 마침 행방불명된 동생이 가입했던 생명보험을 떠올린다. 동생의 시체 대신 우연히 발견한 시체를 위장하여 그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사기극을 시작한다.

범죄스릴러 같기도 하고 코미디 같기도 하고 때로는 멜로 같기도 한 이 영화의 특성은 ‘잡다함’이다. 주요 등장인물들 역시 모두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 전체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 그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때때로 그러한 분산이 영화적 긴장을 떨어뜨리고 산만함을 가중하기도 한다.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강한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힘이 캐릭터 속으로 매몰되기도 한다. 영화 속, 인물들 행동의 동기나 인과관계의 설정도 허술하고 그래서인지 영화적 맥락을 깨는 난데없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더구나 별다른 의미없이 지속되는 근접 촬영은 ‘영화’가 아닌 ‘캐릭터’에만 눈을 두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한 호화 출연진들이 영화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로빈 윌리엄스와 우디 해럴슨, 그리고 지오바니 리비시의 분열증적이고 비정상적인 이미지도 설원의 배경에 적격이지만, 이 영화에서 범죄의 근원인 홀리 헌터는 정작 범죄의 주된 흐름에서 벗어나 있음에도 그 누구보다 다층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사납고 예민하면서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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