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스크린쿼터 투쟁, 다섯가지 시선 [2] - 김소영

전세계 대상 마이너영화 쿼터로 바꾸자

‘조용한 피범벅 혁명’이라고 <버라이어티>가 불렀던 사건이 있다. 2001년에서 2002년 사이 소니(컬럼비아트라이스타)와 유니버설, 이십세기 폭스사 그리고 워너브러더스의 국제 배급 담당 책임자들을 미국 국내 배급과 마케팅 책임자들로 바꾸어버린 사건을 두고 벌인 호들갑이었다. 세계화의 결과 국내와 국제 배급망의 연결고리가 긴밀해지면서 벌어졌던 일로, 국내와 해외 배급, 마케팅 양자 모두를 동일한 사람들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배급 라인의 책임자들이 바뀐 사건을 두고 피범벅 혁명이라고 할 만큼 배급은 미국 영화계의 치명적 무기로 기능한다. 배급과 정책을 영화산업의 중심부에 놓은 것은 할리우드를 오늘에 이르게 한 주요한 전략이었다.

미국 정부와 1946년에 세워진 MPEAA(The Foreign Department of 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가 공모해 할리우드는 전세계로 지배를 확대하게 된다. 이러한 할리우드가 내뿜는 세계 배급 주도권의 피비린내 속에서도 한국영화는 90년대 후반 이후 국내시장 점유율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데이지> <묵공> 등의 범아시아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놀라운 성과다. 그리고 가시적인 성과다. 이러한 가시성에 비해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앞두고 느닷없이 스크린쿼터를 73일로 축소하라는 것은 형편없이 비가시적이고 그래서 추상적이고 얼토당토않은 명령이다. 이 협정 체결로 수혜를 입을 분야가 전자, 자동차, 금융 등이라는 보고가 나오는 것을 보면, 그리고 지난번 한국 농민들의 홍콩에서의 반WTO 투쟁에 미루어보면, FTA는 그렇지 않아도 심화되는 한국사회의 빈부 격차, 도시와 지역간의 간극을 현격하게 벌려놓을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과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양자간 협정인데 반해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정이 그야말로 글로벌한 협정이고 상위의 질서임을 고려할 때, 그리고 1989년 미국과 캐나다간의 FTA에서 문화를 협상 대상에서 제외한 경우를 참고할 때 스크린쿼터는 당연히 무역협상에서 논외의 대상이다.

미국이 세계시장을 놓고 벌이는 전쟁은 무혈도 아닌 피가 낭자한 전쟁이다. 미국 내 입장에서 보면 <버라이어티>의 수사처럼 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싶겠으나 외부에서 보면 그것은 잔혹한 전쟁이다. 그것을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자유무역이니 하는 향수 뿌린 말로 대체한다고 해서 지역에서의 문화, 정치, 경제적인 재앙의 효과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제 문제는 스크린쿼터를 근심하는 영화계나 문화계 관계자들이 정부에서 하는 것처럼 다짜고짜 시행 혹은 불시행 명령을 내려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으니 스크린쿼터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구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미국이 한국에 FTA라는 협약이라는 이름뿐인 불공정 거래를 명령하고 있다면, 한국영화 부흥의 수혜자였던 투자사, 제작자, 배급사가 스탭들의 노동 조건이나 임금을 그동안 현실적 수준으로 개선하지 않은 것은 현재 할리우드의 독과점에 대항하는 최소한의 공정한 장치인 스크린쿼터의 사회적 공정성, 그 자체의 존립근거를 의심받게 하고 있다. 영화사들이 다른 기업이나 연예 기획사와 합병해 코스닥 상장으로 금융 투기를 시도하는 것도, 문화적 주권 장치로서의 스크린쿼터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큰손 투자사들이 영화 기획, 시나리오와 캐스팅을 좌지우지해 문화적 다양성에 일조한다는 스크린쿼터의 취지에 어긋나는 범박하고 균질한 영화들만 투자를 받고 있는 풍토도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좀더 중요한 것은 위의 산재한 문제들은 일단 한국 영화계가 존재해야 비로소 문제로 존재하는 것들이며, 그래서 해결해나갈 수도 있는 것들이다. 스크린쿼터 없이는 한국영화만이 아니라 이 정도 규모의 내셔널시네마 단위는 생존하기 힘들다. 생존이 확인되면 나도 거론하고 싶은 것이 있다. 스크린쿼터를 대규모 예산영화가 포함된 한국영화가 아닌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마이너영화 쿼터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 논의도 한국영화가 생존해야 가능한 것이다.

할리우드는 전세계를 상대로 피범벅 하드고어 전쟁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웬 자유무역 타령인지. 우선 영화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미 FTA의 장르적 성격을 확인하기 바란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들이 횡행하는 고강도 액션 전쟁영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