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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예상 못한 코믹스타, <웨딩크래셔>의 빈스 본
김도훈 2006-03-13

지금 할리우드의 대세는 프랫 팩(The Frat Pack)이라 불리는 일당들이다. 벤 스틸러가 일종의 회장으로 암약하는 프랫 팩 집단의 회원들은 오언과 루크 윌슨 형제, 윌 페렐과 잭 블랙. 스스로 망가지며 세상을 웃기는 데 개의치 않는 젊은이들이다. 그러고 보면 60년대 랫 팩(Rat Pack)과 80년대 브랫 팩(The Brat Pack)에서 따온 프랫 팩이라는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미국 대학의 남자 사교클럽을 일컫는 프래터니티(Fraternity)의 준말인 프랫은, <아메리칸 파이>나 <올드 스쿨>에서 심심찮게 봐온 미국 청년들의 난장판 파티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실없이 덩치 큰 과체중 남자 하나가 파티장에 걸어들어왔다. 빈스 본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프랫 팩이라 불리는 건 또 싫단다. “프랫 팩? 그거야 미디어가 제 마음대로 만들어낸 단어에 불과한 거 아닌가.”

처음부터 빈스 본에게서 프랫 팩 회원의 미래를 본 점쟁이는 없었을 것이다. 96년작 <스윙어즈>로 할리우드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어딘가 도회적으로 그늘진 인상 덕에 확실히 스윙어(Swinger: 일탈적인 자유섹스주의자)에 가까워 보였다. 조금 더 나아간 사람들은 본의 눈동자에서 마음속에 응달을 품은 괴물을 보았고, 그는 98년 한해에만 두명의 인상적인 사이코를 연기한다. <점토 비둘기>(Clay Pigeon)의 연쇄살인범과 <싸이코>의 노먼 베이츠였다. 본의 베이츠는 소년 같은 얼굴에다 악마를 가두어놓은 앤서니 퍼킨스와는 달랐으나, 압도적인 육체와 서늘한 눈매는 언제고 샤워실로 숨어들어 여인의 목젖에 면도날을 갈아낼 듯 보였다. 그는 연이어 출연한 <디스터번스>(2001)에서도 연쇄살인마를 연기했다. 음험한 남성성은 묘하게 사람들의 리비도를 자극하는 법이니, 1998년에 <무비라인>이 그를 가장 섹시한 남자 중 하나로 선정하며 “엘비스 프레슬리와 앤 마거릿 사이에서 태어난 스타처럼 보인다”고 말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당시 빈스 본은 할리우드의 가장 위험한 남자였다.

이러니 빈스 본에게서 코미디 배우로서의 미래를 점친 점성술가는 없었을 것이다. 본 스스로도 코미디영화는 영 내키지가 않았다. “코미디영화에 출연할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게다가 <스윙어즈> 이후로는 별달리 내세울 만한 작품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흥미로운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드 스쿨>의 토드 필립스 감독은 그에게서 감춰진 자질을 보았다. 물론 “연약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외양에 부서질 듯 연약한 속내를 가진 그의 캐릭터는 천부적인 코미디용”이라는 필립스 감독의 혜안을 일찌감치 알아들은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간혹 들어오는 코미디 제의를 “부끄러움이 많은데다 코미디라는 카테고리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뭔가를 이룬 것도 없는데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짜증을 느끼는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고, 연쇄살인범 역을 모조리 돌려보냈더니 책상 위에는 남는 대본이 없었다.

여기까지도 빈스 본에게서 프랫 팩 일당의 기운을 느낀 관상학자는 없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프랫 팩들은 달랐다. <피구의 제왕>의 상대역을 찾고 있던 벤 스틸러는 <올드 스쿨>을 보고는 “안 된다는 스튜디오와 격렬하게 싸운 결과” 본을 얼치기 체육관장 역에 캐스팅하고야 만다. <앵커맨>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웨딩크래셔>로 이어지는 희극배우 빈스 본의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R등급 영화로는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흥행성적을 올린 <웨딩크래셔>는 본을 하루아침에 일급 스타로 등극시켰고, 출연료는 1200만달러로 치솟았다. 여기서 토드 필립스 감독의 혜안을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빈스 본의 괴상한 코미디 감각은 확실히 육체와 내면의 괴리에서 온다. 강인한 196cm의 거인이 여린 속내를 들이미는 순간, 오도방정 속사포 같은 수다를 쏟아내는 순간, 관객은 물론이고 상대역인 오언 윌슨마저 압도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본을 따라가는 건 정말 힘들다. 심지어 카메라가 사라진 뒤에도 가끔 그는 절정에 도달하니까.”

<뉴스위크>에 따르자면 본은 “말하는 게 너무 신중한 나머지 ‘내 관심사는 언제나 일’이라거나 ‘나는 그저 한명의 배우일 뿐’이라는 등 유명인사들의 대답 모음집에서 따온 듯한 표현을 곧잘 쓰는 배우”다. 어째 그의 최근 인터뷰들은 하나같이 예전만한 재미가 없다. 밤새 지칠 때까지 놀며 원 나이트 스탠드를 즐기던 생활도 깨끗이 정리했다. 이제 빈스 본은 제니퍼 애니스톤의 연인인 동시에 할리우드 일급 스타로서 파파라치에 시달리는 중이다. “나는 이 정도 레벨의 주목을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 내 주위의 친구들이 이런 상황을 헤쳐가는 걸 보면서 ‘정말 재미없는 일이겠거니’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을 뿐이다.” 연쇄살인범 전문배우는 거대한 덩치를 흔들어 세상을 웃기는 법을 터득했고, 사랑도 찾았고,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간드러지는 별명도 얻었다. 이러니 할리우드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가 어쩌다가 프랫 팩 클럽에 가입했냐고 구태여 다시 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프랫 팩이야 미디어가 제 마음대로 만들어낸 말이다. 그런데 이거 아는가. 당신이 하나의 이름 속에 속하게 되는 순간부터 그건 점점 리얼리티로 변모해간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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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R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