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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히치콕에 대하여, <히치콕>
홍성남(평론가) 2006-03-17

정말이지 우리는 또 다른 히치콕 책을 필요로 하는가? 최근 들어 서구의 영화 관련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많은 책들로 빼곡이 채워져 있는 히치콕 서가에 또 한권의 책이 추가될 때마다 그렇게 자문하곤 한다. 히치콕은 영화 자체를 정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혹은 단연코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이었기 때문에, 영화 서적의 주제로 가장 많이 다뤄진 인물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여전히 영화서적 출판이 활발하다고는 할 수 없는 국내의 경우를 서구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이 무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도 히치콕에 대한 인터뷰집, 전기, 비평서를 몇종 가지고 있기에 <히치콕>이란 제목을 단 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같은 질문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히치콕 책이 또 필요하단 말인가? 이에 대해 패트릭 맥길리건이 쓴 책은 긍정적인 대답을 마련해놓는다.

오해를 막기 위해서 먼저 지적하자면, 맥길리건의 <히치콕>은 히치콕이 스크린 위에 구축해놓은 매혹적인 ‘세계’ 속을 깊이있고 체계적으로 탐사하고픈 마음이 우선인 독자에게는 유용성이 별로 없는 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대신에, 이것은 프리츠 랑, 조지 쿠커, 로버트 알트먼 같은 영화인들의 전기를 써낸 저명한 전기 작가의 책답게 히치콕이라는 ‘인물’과 그의 삶 자체에 호기심을 가진 이에게는 수고로운 책읽기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여기엔 “청과상의 아들인 키 작고 토실토실한 소년”이 “영화의 진정한 기사”로 탈바꿈하고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자취가, 기존에 나와 있는 히치콕 전기의 기를 눌러버릴 정도로 방대한 분량 속에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맥길리건이 이 책의 원 부제를 <어둠과 빛 속의 삶>이라고 지은 건 (도널드 스포토가 쓴 히치콕 전기 <천재의 어두운 면>을 겨냥한 것 외에) 아마도 저자가 다루는 인물의 가능한 모든 측면을 포괄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향해 마술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을 좋아한 사람”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협상에 정통할 수밖에 없었던 한 영화감독, 그러면서 음탕한 장난을 즐겨했으며 가정에는 충실했던 한 인간의 복합적인 면모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편으로 히치콕의 작업과정과 동료들, 그를 둘러싼 영화계의 상황도 소상히 밝히고 있는 이 책은 가히 연대기의 형식을 가진 히치콕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무엇보다도 자료의 힘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1400페이지가 조금 못 미치는 이 책의 거대한 분량 안에 담긴 것은 히치콕이 젊었을 적 쓴 콩트부터 주위 사람들의 증언까지 꼼꼼하게 수집된 수많은 자료들과 그것들의 솜씨 좋은 배치이다. 그런데 이건 달리 말하면 여기엔 자료들을 관통하는 번득이는 혜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맥길리건의 책이 읽기에 힘이 드는 건 그저 부담스런 분량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다 읽고 나면 든든한 마음이 들게 해준다. 우리에게도 이제 히치콕의 이해에 필요한 충실한 기초 자료 하나가 생겼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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