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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치 시노부를 만나다 [2]
김나형 2006-03-22

일상 속에서 ‘문득’을 찾다

그가 논리 대신 황당한 사건을 통해 영화를 전개해가기 때문에 관객도 쉽게 일탈에 동참한다. “사람들은 보통, 내가 보는 것이 이만큼이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 안에 재즈나 수중발레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좁은 공간 안에 황당한 것들이 끼어들고, 정말 그 일을 하게 된다. 주인공들이 이후에도 밴드를 계속할 것인가까지는 모른다 해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아,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의 가능성이라도 열게 된다면, 나는 충분하다.”

<스윙 걸즈>

<워터보이즈>

황당하고 유쾌한 전개 때문에 그의 영화는 만화처럼 느껴진다. 밴드부가 상한 도시락을 먹고 단체로 식중독에 걸리고, 소녀들은 보충수업을 빼먹으려고 대신 밴드를 하게 된다. 소년들을 수중발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여선생님은, 임신 8개월이라는 폭탄선언을 던지고 신나게 휴가를 떠나버린다. 지도자도 없는 아이들은 건널목에서 투포(2·4)리듬의 본질을 깨닫고, 펌프를 하면서 수중발레 동작을 짠다. 신청서를 늦게 내는 바람에 발표회에 못 나가게 되었지만 불참하는 팀이 생겨 거짓말처럼 해결된다. 축제 전날 학교에 불이나 수영장 물이 씨가 말랐거늘, 소년들은 근처 여고 수영장에 초대받아 일약 스타가 된다.

현실이라면 있을 수 없을, 비현실로 감싸안긴 밝은 세계. 그러나 야구치 시노부는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에 제동을 건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문득 이상한 일들이 생기곤 하지 않나. 배가 너무너무 아파서 몹시 곤란하게 돼버리는 상황이라거나. 테러리스트의 부엌에까지 가서 일부러 열심히 취재하지 않아도 그런 일들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나는 늘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다.”

자신의 영화도 꼭 만화 같은 세상만은 아니라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를 테니까 영화 속의 사건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 영화 속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은 없다. 하나하나 떼어놓으면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다만 일련의 사건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걸 거다. 시간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못하던 애들인데 심하게 잘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윙걸즈>의 경우 영화가 시작될 때는 여름이지만 끝날 때는 겨울이다. 반년 동안 연습한 거다. 2시간 동안이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다. <스윙걸즈> 속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다. 재즈에 문외한인 배우들이 <스윙걸즈>를 준비하고 찍으면서, 영화 속의 연주를 모조리 해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유쾌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일본에 ‘자기처럼’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 없다고 한다. <쉘 위 댄스>와 <으랏차차 스모부>를 만든 수오 마사유키는 어떠냐고 반문하자 이렇게 답한다. “그가 <스윙걸즈>를 만들었다면 멧돼지 습격장면이라거나, 남자가 자전거째 굴러떨어지는 장면은 절대 넣지 않았을 거다. 제대로 되지 못한 것들, 괴상한 것들, 나는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이상한 생각이 늘 떠오른다. 같은 PD가 <으랏차차 스모부>와 <스윙걸즈> 둘 다 제작했는데, 수오 마사유키에게는 그런 것을 안 시키면서 나에게는 ‘괜찮으니까 해라 해라, 더 해라’ 한다.”

<스윙 걸즈>

<워터보이즈>

야구치 시노부는 영화가 저 높은 곳에서 관객을 내려다보는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뭔가를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화가 가진 참 힘이라 생각한다. “<스윙걸즈>는 ‘음악을 하고 싶어지는 영화’다. 전세계에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지만 사람들이 영화를 본 뒤 ‘나도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 영화는 없었다. <스윙걸즈>가 상영된 뒤 일본 여기저기에서 악기를 사거나 배우려는 인구가 늘었다. 나도 그중 하나다. 영화가 끝난 뒤 색소폰을 샀고 현재 배우고 있다. 영화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이 ‘스윙을 배웠다’가 아니라 ‘스윙을 알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자신은 청춘물 작가가 아니며, 지금 굉장히 어둡고 무서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는 야구치 시노부는, 그런 식으로 세상의 남녀노소들을 불타는 청춘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 재즈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무턱대고 대중음악 학원에 등록했던 2001년 봄이, 나는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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