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쾌락을 찾을 것인가, 사랑을 지킬 것인가, <라이 위드 미>
이종도 2006-05-02

‘나는 섹스를 알고 원하는 걸 얻는다.’ 라일라(로렌 리 스미스)는 자기 말대로 자신의 욕망을 구체적으로 알고, 그걸 어디에서 언제쯤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안다. 술집에서 자신의 육체를 전시하고, 남자들로부터는 선망을 여자들로부터는 질투를 얻으며, 그걸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그는 숙련자다. 라일라는 자신의 복잡한 판타지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노련하다. 이를테면, 자신이 술집에서 고른 남자 데이비드가 애인과 함께 은밀하게 훔쳐보고 있는데 노상에서 즐기며 섹스를 하는 것이다. 이때 라일라와 섹스하는 남자는 라일라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 ‘사정하지 마’, ‘만지지 마’ 같은 명령을 내리고 그걸 관철시킬 정도로 라일라는 매력적이며 일방통행이다.

그런데 라일라도, 라일라를 훔쳐보는 우리도 모르는 게 있다. 욕망이 이성의 통제를 거부한다는 것, 타인의 욕망은 더더군다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를 만족시켰는가 싶으면 어느새 상대가 도망가고, 내가 만족했다 싶으면 내가 질려버리는 괴리를 어느 누가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라일라와 데이비드는 동시에 눈이 맞지만 사랑과 함께 번민도 함께 자란다. 데이비드는 라일라를 독점하고 싶고, 라일라는 데이비드의 독점욕이 부담스럽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쾌락을 계속 찾을 것인가 아니면 유대감과 신뢰로 쌓은 사랑을 지킬 것인가.

성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성기 노출은 더이상 관심거리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의 섹스가 우리의 상상력을 얼마나 자극하느냐는 것. 아쉽게도 라일라는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판타지가 빈약하고, 과감해 보이긴 하지만 익숙한 관습 안에서 움직인다. 라일라가 공허를 이겨내기 위해 낯선 남자를 몰아붙이며 섹스를 할 때, 찬물로 몸을 식히며 포르노 테이프를 보다가 짜증을 낼 때 느끼는 건 감동이나 공감보다 일상적인 남루함이다. 신선한 맛은 다른 데서 온다. 유럽의 아름다운 소도시를 보는 듯한 캐나다 토론토의 아기자기함, 자연광을 잘 활용한 따뜻하고 풍요로운 조명, 유려하면서도 풍만한 데이비드의 엉덩이선, 쭈글쭈글해지고 늙고 지쳐 더이상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데이비드 아버지의 주름진 성기가 빈약한 이야기의 틈을 메운다. 섹스라는 격정도 결국은 냄새 나는 서로의 체취, 땀냄새 밴 시트, 편안해진다 싶으면 어느새 시들해지는 지루함으로 바뀐다는 시시한 통찰이, 섹스도 하나의 일상일 뿐이라는 느긋함과 여유로 바뀌는 순간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