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김성수 감독 \" 폭력은 허망한 것\"
2001-08-24

“무서워서 공포영화 못본다. 특히 처럼 갑자기 튀어나와 사람 죽이는 거.” 뜻밖이다. <런어웨이> <비트> <태양은 없다> 등 김성수 감독(40)이 만들어온 영화에는 늘 폭력이 등장한다. 급기야 <무사>에서는 목이 잘리고, 화살이 몸을 뚫고, 칼이 머리에 박히는, 너무나 사실적인 싸움 장면을 쏟아냈다. “찍다 보면 나도 끔찍해서 살짝 외면했다가 오케이 사인 낸 적도 있다.” 물론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글래디에이터>처럼 사실적인 만큼 쾌감을 자극하는 액션 장면들이다. 이야기는 이 `폭력미학'에서부터 풀어야했다.

“싸움을 예술적으로 승화하고 관조하게 만들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전쟁의 복판으로 들어가면 혼란밖에 없다. 강자든 약자든 공포심밖에 없고 그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더 잔인해지는. 저 사람이 일어나서 나를 찌를까봐 또 찌르고. 전쟁이 잔인하고 허망하다는 거 보여주면 됐지, 탐닉의 경계까지 가진 않았다.”

폭력의 끝에 허무가 있을 뿐이라는 말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마지막 토성 전투에서 배우 모형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고려 무사들이 죽어가는 걸 얼마든지 잔인하게 찍을 수 있었지만 맥락이 그게 아니어서 오히려 차분하게 갔고, 내공 절정의 무림고수가 뿜어내는 팬터스틱한 무술을 기대한다면 배반감을 느낄 테지만 그렇게 찍을 능력도 없었고 <무사>를 만든 의도와도 상관없어 피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화려한 테크닉이 없는 건 아니다. 원군으로부터 부용공주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듯 고속촬영, 저속촬영, 개각도 촬영(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줄여 동작이 끊기는 느낌을 준다) 등의 기법이 효과적으로 쓰였다.

<무사>는 총제작비 70억원에 이르는 대작이다. “절대로 실패하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컸다. <쉬리>에서 시작한 걸 <무사>가 해치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투자자가 조금이라도 이득을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돈만 많이 들어간 영화이기는 싫었”고 장르 영화의 관습에서 약간 벗어난 길을 택했다. 장쯔이를 둘러싼 멜로를 부각시키는 대신 무사들 내부의 갈등, 계급 사이의 갈등, 한 인물의 내부에서 충돌하는 모순을 그리려 애썼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자주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관객이 불편해 할 걸 감수했다. 광활한 곳이 많지만 그곳에 시선을 주기보다 인물의 답답한 내면과 처지를 느끼도록 강제하려고 일부러 그랬다.”

그런 갈등 관계 속에서 아웃사이더 격인 여솔(정우성)과 진립(안성기)은 영웅적으로 그려졌다. “<무사>에서 신분이 낮을 수록 미덕이 더 높은데, 이게 현실하고 맞는 것 같다. 잘났다고 까부는 이들이 더 역사를 망친다고 하지 않나. `만적의 난'에서 착안해 만든 노비 여솔이 장군에게 당당히 맞서는 장면이 너무 좋다.”

인터뷰에는 <비트> 때부터 함께 작업하며 <무사>의 산파 구실을 한 조민환 프로듀서가 함께 했다. “(평가절하를 부르는) 질시와 (지나친 기대에서 오는) 사랑이 블록버스터의 운명”이라는 조 프로듀서에게 김 감독은 “<무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 길을 걸어왔고 지켜냈다는 점이 뿌듯하지 않냐”고 대꾸했다.

글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