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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스탭
2001-08-24

스탭 소개

무술감독 정두홍

한국영화의 액션이라면 모두 그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전수전 다 겪은 정두홍 감독이지만, <무사>는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의 액션스쿨 멤버 17명 전원이 참여해 수많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던 <무사>의 촬영은 두배로 힘든 작업이었다. 워낙 빡빡한 스케줄에다 거의 모든 장면이 액션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당연한 일. “아무리 액션영화라 해도 보통 15번에서 20번 정도 촬영하면 되는데 이번엔 112회 촬영 중 거의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하지만 이보다 그를 괴롭혔던 문제는 액션의 스타일이었다. 그와 김성수 감독이 애초 설정했던 액션 스타일은 와이어를 쓰지 않고, 임팩트가 있으면서 힘이 넘치는 것이었다. “일본의 , 미국의 <벤허>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액션 스타일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액션이 그대로 담겨 있는 <글래디에이터>를 본 뒤 모든 계획을 틀어야만 했다. 결국 특정한 스타일을 녹인다기보다는 좀더 리얼한 액션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 자동차 액션을 기마 액션으로 바꾸는 식으로 현대 액션을 사극에 맞게 만들어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도 오랫동안 긴장해서 그런지 나를 포함한 액션스쿨 멤버 모두가 서울에 돌아온 뒤 한달 정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그는 현재 할리우드가 감탄할 만한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을 만들기 위해 심기일전중이다.

미술감독 훠팅샤오

첸카이거 감독의 <현위의 인생>, 원화평 감독의 <포타쌍등> 등에 참여하는 등 중국에서 촉망받는 젊은 프로덕션 디자이너 훠팅샤오가 <무사>에서 차지한 자리는 상당히 넓었다. 첸 감독의 <시황제 암살사건>으로 1999년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미술공헌상을 받기도 했던 그는 원, 명시대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살아 있는 세트를 만들어냈다. 그의 미술 컨셉은 “홍콩영화처럼 과장하지도 않고 서구의 느낌도 나지 않는 사실적인 분위기”였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한국 제작진이 그에게 반한 점은 성실성과 꼼꼼함이었다. 조민환 이사는 “객잔 세트는 외부만 찍을 계획이어서 내부공사가 필요없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만약을 대비해 내부까지 완벽하게 갖춰놓았다”고 말한다.

이번 영화에서 그가 가장 공을 들인 세트는 아무래도 토성 세트다. 윤곽을 잡는 데만 1개월, 설계에 3개월이 걸렸으며, 3개월 동안에 걸쳐 지어진 토성 세트는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한 곳이다. 영화의 설정상 해안토성은 지어진 지 오래된 곳이었므로 닷새 동안 바닷물을 끌어올려 토성에 붓기를 반복했고, 이틀에 걸쳐 7번 성문을 불로 태웠으며 수차례 색칠을 한 뒤 물로 씻어내야 했다. 폐허가 된 듯한 분위기를 만들려면 토성 주위엔 잡초도 무성해야 했으므로 25명의 인부가 15일 동안 땅콩밭을 갈아엎은 뒤 일일이 잡초를 심었다. 결국 토성 세트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저게 원래부터 있었던가” 하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실감나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뒤에는 바다, 앞에는 탁 트인 지형을 갖춘 이 토성터를 찾아낸 것도 그의 공이었다

의상담당 황바우롱

베이징제편창에서 제작된 외국과의 합작영화 대부분에 참여했다는 황바우잉은 <황비홍> <와호장룡> <풍운> 등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는 의상 제작자다. 그가 <무사>를 위해 제작한 의상은 모두 180여벌. 원과 명의 군대 의상 200여벌을 대여하기도 했고, 객잔에 등장하는 색목인의 의상은 빌려다 직접 고치기도 했다. 그는 주인공 각 캐릭터에 맞춰 의상을 모두 새로 디자인해야 했다. 예를 들어 고려 왕실경호대의 장군인 최정의 경우 위풍과 힘을 보여줘야 했고 노비 신분인 여솔은 심플하고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액션장면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옷자락이 펄럭이도록 디자인됐다.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의상은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진립의 것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위엄이 있어야 한다는 감독의 특별 주문을 의상으로 소화하려니 일이 만만치 않았다. 부관인 가남의 경우 체격이 당당하게 보여야 하는데 가남 역을 맡은 박정학의 몸이 마른 편이라 ‘뽕’을 넣기도 했다. 그가 가장 만족하는 의상은 부용 공주의 황실 의상. 노란색이나 단아한 디자인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그의 특기는 뭐니뭐니해도 옷이 닳아보이도록 효과를 내는 것. 오랜 여정 속에서 닳고 해진 의상을 만들기 위해 그는 화학약품을 쓰기도 했지만, 손작업이나 기계작업의 공을 들였다. “시간이 좀더 많았더라면 세밀한 고증을 통해 스타일이 살아 있는 의상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그는 김성수 감독과 다시 작업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도구(소품) 담당 리밍산

<와호장룡>에서 리무바이와 용이 서로 차지하려 했던 청명검, 그 날렵하면서 부드러운 검을 만든 장본인 리밍산이 <무사>에선 격렬한 전투 장면에 쓰인 무시무시한 병장기를 만들어냈다. 그가 무기를 디자인하는 데 가장 신경을 쓴 점은 무게다. 실용적이고 가벼워야 배우들이 마음대로 휘두르고 내지를 수 있기 때문. 전투장면에 사용된 대부분의 무기의 내부를 비우거나 특수 화학소재, 나무, 스펀지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이같은 가검(假劍)뿐 아니라 진검도 만들었다. 클로즈업장면이나 배우가 다칠 위험이 없는 장면에서는 진검이 훨씬 실감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가 또 하나 신경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구성이다. 감독이 리얼한 액션을 원했기 때문에 무기는 쉽게 파손됐다.

그가 이번 영화를 위해 제작한 창, 검 등 대형 병장기는 40여종, 단검은 20종이었지만 전체 수량을 합치면 수백개에 달했다. “망가질 위험이 있었으므로 주연의 경우 병장기를 언제나 5개 정도는 촬영장에 준비해뒀다. 촬영중 병장기의 손실이 심하다보니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무기는 계속 생산해야 했다. 얼마나 제작했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각 캐릭터에 맞는 무기를 디자인하는 작업도 쉽진 않았다. 가남의 도는 보기만 해도 위협감을 주도록 크게 만들었고 진립의 활은 민첩한 그의 몸놀림을 보장하기 위해 가볍게 만들어야 했다. 그 많은 병기 중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것은 여솔의 창이었다. 인도 무사에게 얻는 설정이었으므로 창 끝에 서방문화의 문양을 새겨넣었고, 정우성의 이미지를 살릴 수 있도록 날렵하게 디자인했다.

프로듀서 장샤와 중국스탭

조민환 프로듀서는 “100% 중국 로케이션을 내건 <무사>가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중국 스탭과 함께 일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영화 제작환경이 서로 달랐지만 두 나라 스탭들이 쉽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데는 중국쪽 프로듀서 장샤의 공이 컸다. 베이징제편창 소속으로 첸카이거의 <패왕별희> <현 위의 인생>에서 프로듀서를 맡은 바 있는 그는 노련한 지휘력을 발휘했고, 김성수 감독의 ‘무데뽀’식 연출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국 스탭을 잘 추슬렀다. “빡빡한 스케줄과 의상이나 소품 등의 갑작스런 변동이 많아 힘들었다”는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스탭들에게 귀 기울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김성수 감독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또 미술의 훠팅샤오, 의상의 황바우잉, 도구의 리밍산, 스테디캠의 리바우춘 등 중국 ‘드림팀’을 꾸린 것도 그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뿐 아니라 숙련된 기량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다른 스탭 역시 <무사>에 큰힘을 불어넣었다. “제작부와 연출부 모두가 함께 밤을 새워 의상, 미술 등의 일을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장샤의 말로 미뤄볼 때, <무사>는 평소 쉬엄쉬엄 일해 절대 지칠 일이 없는 ‘창공’(場工·촬영장에서 단순작업만 담당하는 기술자)들을 중국영화사상 최초로 ‘실신’시키까지 했지만, 중국 스탭들에게 한국영화의 역동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데는 성공을 거둔 듯하다.

▶ <무사> 제작, 그 천일간의 기록

▶ <무사> 제작일지 (1)

▶ <무사> 제작일지 (2)

▶ <무사> 제작일지 (3)

▶ 숫자로 본 <무사>

▶ <무사> 등장인물

▶ <무사> 스탭

▶ <무사>가 달려온 길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1)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