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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의 윤제문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06-06-27

“애쓰는 마음, 태도가 창조고 연기다”

“괴물 같은 배우다.” 윤제문(36)을 두고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은 그렇게 잘라 말한다. <열혈남아>의 이정범 감독 또한 다르지 않다. “평소에는 무표정 심드렁인데 카메라 앞에 서면 달라진다. 마지막 장면 촬영 때는 (설)경구 형이랑 붙어서 기를 뿜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대단하더라.”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라고 치켜세우는 건 아니다. <비열한 거리>의 중간보스 상철은 그동안 눈에 쉽사리 띄지 않았던 배우 윤제문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남극일기>의 죽음의 크레바스를 향해 걷는 부대원을, <너는 내 운명>에서 외국인 아내와 함께 사는 재호를, <로망스>에서 권력에 빌붙은 악질 형사반장을,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다. 눈빛 하나로 ‘진짜’를 만드는 배우 윤제문을 뒤늦게 대학로에서 만났다.

-6월18일까지 연극한다고 들었다. =오늘도 한다. 오후 7시30분에.

-한국이랑 토고랑 축구하는 날인데. =끝나면 바로 축구 보러 간다. 동료들이랑.

-그게 아니라 관객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관객이 없길 바란다. 그건 아니고. 아니, 그래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웃음)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이란 연극이던데. 전에도 한 적 있지 않나. =프랑스 작가가 쓴 건데. 내가 몸담은 76극단 30주년 기념 공연이다. <관객모독> <리어왕>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이렇게 세 작품이 올라간다.

-요즘 대학로를 찾는 관객이 많지 않은데. 무대에 서면 좀 씁쓸하겠다. =영화 티켓은 싸고, 연극 티켓은 비싸고.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한다. 가끔 연극이 도자기 빚고, 굽는 일이랑 비슷해지는 것 같다.

-관객으로부터 기를 받아 먹어야 무대에서 팔팔 나는 것 아닌가. =관객이 많으면 힘을 받는다. 신나서 한다. 관객이 없으면 음…. 없는 대로 열심히 해야지. 1996년엔가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라는 이탈리아 번역극을 올렸는데, 그때 우리극연구소 3기로 첫 무대에 섰다. 근데 관객이 3명이더라. 그래도 그때는 처음이니까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공연마다 평균 15명은 온다.

-영화 한편 하고 연극 한편 하고. 영화 한편 하면 몸과 마음이 허해져서 보약처럼 무대를 찾는 건가. =굳이 계획을 짜는 건 아닌데. 영화 들어오면 하고. 연극 들어오면 하고. 그렇지, 뭐. 그래도 연극을 1년에 2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안 하면 심심해서.

-다들 매사 심드렁, 무덤덤한 성격이라고 하던데. 어렸을 때도 그랬나. =음, 초등학교 때는 진짜 까불고 그랬다. 중학교 때도 그랬고. 그런데 왜 이렇게 변했냐면, 잘 모르겠다. 졸업하고 사회생활하고 그러다가 이렇게 됐나. 근데 내 성격이 이상한가.

-아니다. (웃음) 무대에 서는 것과 카메라 앞에 서는 것과 쾌감이 다를 것 같다. 배우로서 취하는 연기도 다를 것 같고. =영화 연기, 연극 연기 따로 구분 안 한다. 똑같다. 다만 연극은 라이브니까. 즉흥적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거고. 영화는 관객으로서 볼 때 새롭긴 하다. 촬영할 때 몰랐는데 붙여놓으면 힘이 나오니까.

-<비열한 거리>는 어땠나. 관객으로서 자신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카메라에 익숙해진 것 같더라.

-어떤 장면에서 그런 것 같던가. =난 잘 모르겠고. 우리 애기 엄마가 그랬다. 영화에서도 연기가 좀 되는 것 같다고. 전 영화들에선 어색했다면서.

-부인이 모니터를 많이 해주나보다. 지적을 수긍하는 편인가. =무조건 받아들인다. (연기할 때는) 한번 더 거르고. 10년 넘게 같이 살아온 사람인데. 나를 잘 알지 않겠나.

-연극할 때 만났나. =맞다. 동기다. 우리극연구소에서 만났다. 직장생활하다가 권태로웠는지 연극 한번 하겠다고 뛰어들었던 친구인데, 나한테 딱 걸렸다. 그 이후 넌 연극 안 돼, 연기 안 돼, 그러니까 집에 있어. 그랬는데 지금은 내 연기에 대해 이런저런 주의를 주곤 한다.

-유하 감독은 배우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길 많이 하는 편이라고 알고 있다. =다른 주문도 하셨는데 잘 기억이 안 나고. 서울 사람이라 전라도 사투리가 신경이 쓰였다. 연극하는 친구들 중에 전라도 사투리 쓰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기본은 하는데. 뉘앙스가 아무래도 좀. 그건 전라도 출신인 유 감독님이 많은 도움을 줬다.

-유하 감독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낸 대사도 있나. =‘야 이 씨벌놈아’ 같은 대사. 감독님 욕 하는 거 탁월하다.

-연기할 때 현장에서의 느낌을 중요시한다고 들었다. =<비열한 거리>의 상철 같은 인물은 대단히 머리가 좋다고 해야 하나. 잔머리도 머리니까. 일단 그런 인물 정도로만 탁 세워놓고 현장에 간다. 어떤 인물이라고 구체적인 모습까지 잡는 게 아니라 둥그스름하게 가져가서 감독 이야기 듣고 상대 배우 이야기 듣고 그러면서 깎아나간다. 처음부터 코는 이렇고, 눈은 이렇고 하는 식으로 디테일하게 그려가는 것도 좋겠지만.

-애드리브는 거의 안 하는 편인 것 같다. =대사 안에서만 하려고 한다. 주어진 대사에 눌리거나 채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툭 치면 훅 뱉어낼 수 있도록. 어떻게 해야 대사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체화할 건지 고민한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은 결혼식이었을 것 같은데.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무래도 죽어야 하는 장면이 가장 죽겠더라. 내가 죽어본 적이 없으니까.

-본인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감독의 의견을 잘 소화하는 배우라고들 하더라. 스펀지처럼. =연극할 때부터 그랬다. 내 걸 내가 제대로 볼 수 있겠나. 연출이야말로 관객 입장에서 보는 건데. 100% 믿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열혈남아> 마지막 장면 촬영 때는 평소와 달리 한번 더 테이크를 가자고 했다던데. =더 들어가야 하는데, 더 들어갈 수 있는데 안 나올 때가 있으니까. 그럴 땐 다시 가는 수밖에 없지.

-연극배우로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청춘예찬>(1999)이다. 그전엔 어디에서 활동했나. =처음 연극을 시작한 건 산울림 소극장이었다. 그러다 우리극연구소 3기로 들어가 연희단거리패에 있었고. 백수광부라는 극단에도 있었다가 76극단의 박근형 연출가를 만나서 여태껏 왔다. 지금은 ‘골목길’이라는 집단을 만들었고.

-<청춘예찬>을 만나기 전까지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연극만 해서 돈이 안 되니까. 중간에 포기했었다. 큰애를 낳았는데 난감하더라. 연극 하지 말고 돈 벌자고 맘먹었다. 그때가 IMF였다. 취직도 안 되고. 결국 공공근로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다 집사람한테 하루는 나 다시 연극해야겠다고 했다. 그거 안 하면 못살겠다고. 한달에 최소 생계비 50만원은 책임진다고,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가져다주겠다고. 집사람이 하라고 하더라. 박근형 연출가를 만나서 <청춘예찬>을 하게 됐고, 상도 받고 그랬다. 연극 그만뒀을 때 정말이지 죽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다시 연극 하면서 죽을 각오로 했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건 아닌데. =대학 갈 생각은 없었다. 상고를 나왔는데 고3 때 다들 취업해서 양복 입고 학교 오고 누구는 대학가고 그랬는데. 난 그런 것엔 관심도 없었고, 나름대로 이것저것 하느라 바빴다.

-뭐하느라 바빴나. =난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할 때였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벌고 싶은데.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면서 돈 벌긴 싫고. 난 뭘 할 수 있나.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방황하다 찾은 게 연기였나. =아니다. 방황이 길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클래식 기타에 빠졌는데. 구두 닦아서 기타 사고,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격투기 학원 다니고. 엄마 몰래 서랍에서 돈 훔쳐서 대금 사고.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던 때였다. 심지어 미술도 해보겠다고 이젤 사고 석고상 사고 도화지 찢어가며 그렸는데 재능이 없더라. 그러다 고3 때는 도에 빠져서는.

-도라니? =길 가다보면 ‘도를 아십니까’ 하는 거 있잖나. 한번은 공부 죽어라 싫어하는 친구들이랑 그룹사운드를 만들자고 해서 광화문에 모였다. 넌 기타, 넌 드럼. 뭐 이렇게 정하고 있는데 누가 다가와서는 도를 아냐고 하더라. 정신세계가 어떻고 지구가 어떻고 하는데.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걸 보고선 호기심이 일었다. 친구들은 썰렁한 반응이었는데. 그 친구들 내버려두고 혼자서 따라갔다. 한복 입고 입도식도 하고. 집에서 나와서 1년 넘게 도에 푹 빠져서 생활했다.

-도를 아십니까, 하고 물으면 사람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었을 텐데. 그걸 관찰하면서 저절로 연기 공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자양분이 됐을지도. 연기는 방위생활할 때 불문과 나온 동기 놈이 연극 <칠수와 만수>를 보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아, 저런 게 있구나 놀랐고, 그럼 한번 해봐야지 해서 시작한 거다.

-<정글쥬스>가 첫 영화인데. =그전에 단편 여러 개 했다. 아는 선배 소개로 참여한 <해 아래 햇살>이라는 단편이 처음이었다. 35mm인데다 스탭도 많고 다들 충무로에서 일하는 분들이라 상업영화랑 분위기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긴장이 되지 않았나. =덤덤하게 그냥 찍었던 것 같다. 다만 자전거 타고 다니는 우체부 역할이라 감독님이 살을 태우라고 해서 고생을 좀 했다. 개울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바위에 무식하게 한나절을 누워 있었는데 화상을 입을 정도로 타서. 밤에 잠을 못 잤다. 쓰려서.

-영화와 연을 맺게 된 계기가 있다면. =돈문제가 없진 않지. 일단 배우라면 얼굴이 좀 알려져야 하는데. 얼굴 알려지려면 영화를 해야지. 연극만 해서도 알려질 수 있지만 그건 좀 힘드니까. 오디션 참 많이 보러 다녔다. 영화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긴 했다. 아버지가 신촌 신영극장 옆에서 안경점 했기 때문에 극장 다닐 기회가 많았고 김두한 시리즈나 <팔불출> 같은 영화들 보면서 유년을 보냈다.

-처음 오디션 다니면서는 진입 장벽이 꽤 높구나 느꼈을 텐데. =오디션 볼 때마다 씁쓸했다. 생뚱맞게 서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게. 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니 시키는 대로 했지만서도. 어쨌든 이미지가 안 맞았는지, 그쪽에서 바라는 연기가 아니었는지, 많이 떨어졌다.

-조연배우로서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코믹한 역할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별로 그쪽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코믹이어서 싫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주어진 대로 했을 뿐이다. 다만 내가 연극을 해서 그런지 극단 마다 성격이 다 있는데 내가 몸담았던 76극단이 좀 무겁고 진지하다. 그래서 그런 쪽 역할들이 많이 들어왔던 거 같다.

-역할이 크지 않다보니 편집 과정에서 많이 잘렸을 텐데. =저걸 왜 잘랐지, 아쉽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지.

-어떤 배우들은 그런 걸 미리 알고 감독이 편집할 수 없도록 연기한다고 하더라. 대사의 타이밍이나 호흡을 조절해서. =그런 게 있다고? 난 그런 거 진짜 모른다. 배워야겠다. (웃음) 어떻게 하는지.

-<남극일기> 때부터선 비중있는 역들을 맡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애정이 남다르다. 전보다 역할이 크니까. 대원 6명 중 한명이었는데, 열심히 그것도 잘해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대원들 중 가장 먼저 캐스팅됐다고 하던데. =싸이더스가 아닌 다른 영화사에서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캐스팅되고 신세 진 친구들 불러서 회를 한번 쐈는데 수중에 돈이 없어서 일행 중 한명에게 카드를 빌렸다. 나중에 개런티 들어오면 갚겠다고. 그렇게 쓰고 나서 한달이 지났는데 영화가 엎어졌다고 하더라. 별수 있나. 노가다 뛰어서 갚았다.

-연극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노가다를 한 이유가 뭔가. =원래 들어온 연극이 하나 있었다. 박근형 형이 큰돈 들어온다며 연극 한편 하자고 했는데, 안 한다고 했다. 더 큰돈 들어온다고 하고. (웃음) <남극일기>쪽에서 워크숍이 필요하다고 해서 열심히 준비해볼 요량으로 거절한 건데 일이 그렇게 돼버렸다.

-임필성 감독에 따르면, <남극일기> 뉴질랜드 촬영 때 간식으로 나온 사탕을 먹지 않고 한 박스나 모았다고 하던데. 어디에 썼나. =딸들 가져다줬다. 사탕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알록달록한 거 보니까 딸들 생각나더라.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사탕은 사탕대로, 초콜릿은 초콜릿대로 종류별로 모아서 촬영 끝나고 가져다줬다. 그거 알고 다른 동료들도 안 먹고 건네주기도 했고.

-어쨌든 최근 몇년 동안 활동하면서 돈은 좀 벌었겠다. =빚은 다 갚았다. 7천만원 가까이 됐는데. 연극할 때 생활비가 없어서 카드를 좀 썼는데 그게 오랫동안 빚으로 남았었다. 거기다 2001년인가 동대문 두타에서 집사람이랑 아동복 장사를 했는데 1년쯤 하다가 ‘호올딱∼’ 말아먹고 몇 천만원 까먹었고.

-현장에서 거의 입을 닫고 산다고 하더라. =잘 못 어울린다. 딱히 할 말도 없고. 멍하니 있을 때가 많다. 담배 피우면서.

-대기할 때는 답답하지 않나. 일부러 어울리면서 성격을 바꾼 배우도 많은데. =그래서 가끔 걷기도 한다.

-<비열한 거리> 때 천호진과 한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다가 촬영 막바지에 기타 이야기 하면서 친해졌다고 들었다. =선배님이 손톱을 기르시기에 설마 했다. 그런데 곧 공연도 앞두고 계신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한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18번으로 삼고 3개월 정도 기타 보조강사도 했다고 했다. 따라라라∼. 한참 칠 때는 여자들이 많이….

-자신만의 연기론이 있나. =그런 거 없다. 막 시작할 때는 이런저런 책도 많이 봤고 술자리에서도 온통 연극 이야기뿐이었는데. 서른 넘으니까 안 하게 되더라. 축구 이야기를 하든가 아니면 노는 이야길 하든가. 지금 생각은 연기를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답이 어딨나 싶다. 이렇게 하면 안 돼, 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만을 갖고 있다. 연기라는 게 애쓰면 되는 거다. 창조라는 게 애쓰는 거잖나. 애쓰는 마음, 태도가 창조니까. 아직 멀었지만 앞으로도 쭉 애쓸 거다.

-가을에 개봉할 <열혈남아>를 비롯해 현재 촬영 중인 이언희 감독의 <어깨 너머의 연인>, 그리고 곧 촬영에 들어갈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까지 영화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열혈남아> <우아한 세계>에선 조폭이지만, <어깨 너머의 연인>에선 좀 색다른 역인데. =현장 분위기도 좀 다르다. 여성감독이라서. 이태란씨 남편으로 나오는데, 유산을 상속받은 부잣집 아들이다. 똑똑하지 못하고 성격은 애 같고. 그런데 바람을 피우다 부인에게 들켜서 용서를 빌고 뭐 그런 역이다.

-연기 말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음악을 계속 해보고 싶은데 재능이 워낙 없어서. 내가 작곡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룹도 하나 만들어서.

-음악을 좋아하는 건가. 음악인들의 삶이 좋은 건가. =같이 신나게 놀고 싶은 거지. 혼자는 심심하니까. 같이 술도 마시고 때론 포커도 하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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