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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미쟝센단편영화제 [1]
오정연 장미 2006-06-28

장르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단편영화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축제, 미쟝센단편영화제가 다섯 번째를 맞이했다. 오는 6월29일부터 7월4일까지 CGV용산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정성시(사회드라마), 사랑을 위한 짧은 필름(멜로드라마), 절대악몽(공포판타지), 희극지왕(코미디), 4만번의 구타(액션스릴러)라는 부문별 명칭도 이제는 익숙하다. 올해 처음으로 눈에 띄는 이름이 있긴 하지만 송해성, 정지우, 박흥식, 박진표, 박찬욱, 류승완, 장준환, 박광현, 김성수, 오승욱 등 장르별로 2명씩 포진한 심사위원단의 화려한 명단 역시 눈에 익다. 그러나 점점 까다로워지는 관객의 눈높이 탓인지 올해 본선 진출작들의 면면은 한결 묵직하다. 유럽의 공포와 판타지를 모은 해외초청부문 ‘유러피안 나이트메어’, 노인들의 성과 사랑을 조명한 작품을 상영하는 ‘실버 멜로’, 5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승부한 진정한 단편을 조명한 ‘5! 단편’ 등 초청섹션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수상작 11편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돼 있다. 이제는 듬직한 연례행사로 자리잡은 미쟝센영화제를 좀더 알차게 즐길 수 있도록 미쟝센영화제의 지난 5년을 살폈다. 먹음직한 메뉴를 앞에 두고 갈등하실 분들을 위해 장르별 <씨네21>의 추천작을 꼽았고, 이와 함께 각 부문 심사를 맡은 감독에게 올해의 경향과 심사소감을 들었다.

2002년 여름. 장르 혹은 단편영화를 둘러싼 상식을 거부한 영화제 하나가 조용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미쟝센이라는 그 이름이 낯설기도 했다. 지극히 영화적이기도 하지만, 헤어용품 전문브랜드로 더욱 익숙한 이름인 탓이다. 신규 브랜드를 내걸고 영화를 지원하려고 구상하던 아모레퍼시픽 태평양 관계자가 이현승 감독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현승 감독은 기왕이면 영화제, 많은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단편영화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집행위원장으로 부임해 영화제의 모든 준비를 시작한 이현승 감독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단편영화는 왠지 어렵고 낯설다는 편견. 이를 극복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장르’다. “일반적으로 개봉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장르 아닌가. ‘우리 멜로영화 한편 볼까?’ 하는 식으로 단편을 선택하게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로부터 4년. 다섯살이 된 미쟝센의 기세는 사뭇 당당하다. 400편 미만의 영화가 출품되던 영화제의 예심은 750여편의 쟁쟁한 영화가 경합하는 자리로 변모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작한 영화제가 아리랑시네센터를 거쳐 지난해 CGV용산에 둥지를 틀자, 단편을 보러왔다가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이 일반 개봉작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장르라는 기준과 젊은 감독들 참여로 성공 이끌어내

장르라는 기준으로 단편을 분류한다는 발상의 전환 못지않게 중요한 미쟝센영화제의 성공요인은,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감독들이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이현승, 박찬욱, 허진호, 김대승,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김지운. 충무로의 알아주는 마당발, 이현승 감독이 1회 미쟝센영화제에 끌어들인 심사위원의 명단이다. 사회드라마, 멜로, 코미디, 공포판타지, 액션스릴러라는 장르에 비정성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희극지왕, 절대악몽, 4만번의 구타라는, 발랄하고도 익숙한 이름을 직접 지은 심사위원들은 평소 자신이 선호하는 장르를 심사했다. “상업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 장르영화임에도 우리나라에선 유난히 마이너로 취급받는 것이 사실이다.” 충무로 데뷔 이전 독립영화를 찍을 무렵부터 액션이나 코미디를 고민했던 류승완 감독의 말이다. 이처럼 단편은 물론 장르영화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지닌 심사위원들은, 특정 작품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들의 심사는 절대적이고 권위적인 기준으로 특정 영화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취향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일선에서 만나게 될 예비 동료의 영화를 지지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2004년 장르별 대상 수상작 감독들

어디서도 정답을 얻을 수 없는 영화 만들기에 있어, 자신이 만든 영화를 좀더 많은 일반인들과 함께 감상하며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영화제는 진정한 영화교육의 장이다. 전통적으로 단편영화에서 강세를 보였던 사회드라마와는 달리, 코미디나 액션스릴러처럼 비교적 대우를 받지 못했던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숱한 단편영화 감독들이 미쟝센을 통해 관객을 만났다. 실제로 액션스릴러 부문은 첫해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의 출품작이 몰려 미쟝센의 대표 섹션으로 자리잡고 있다. 작품을 상영한 많은 감독들이 영화제 동안 평소 존경하던 선배 감독들과 대면의 기회를 가지고, 냉철하고 객관적인 평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장화, 홍련>의 이모개 촬영감독이 김지운 감독을 만났고, <친절한 금자씨>의 스크립터였고 현재 모호필름에서 장편 데뷔작을 준비하고 있는 이경미 감독이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여러모로 부족한 여건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도움이 됐던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액수의 상금. 총금액 3천만원, 작품당 최고 1천만원까지 책정된 상금은, “그 정도는 되어야 제작비 회수가 가능하다”는 이현승 감독의 현실적인 주장이 반영된 결과다. 그쯤 되면 단순한 격려가 아닌, 차기작을 위한 실질적인 발판으로도 작용이 가능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증언이다.

새로운 실험과 관습 파괴 통해 성장해야

인디다큐페스티발, 인디포럼 등 전통적인 독립영화제가 대중성 약화로 고민하는 요즘, 미쟝센영화제의 호황은 많은 것을 시사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 또한 존재한다. 실험과 도전정신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단편영화에 장르의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특정 장르의 대중적인 스타일만을 내세운 단편이 양산되거나, 상업영화와 다르지 않은 단편이 과잉평가되고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혹은 엄연히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어야 할 단편을, 상업영화 진출을 위한 포트폴리오 정도로 여기는 풍토가 자리한 것도 문제다.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미쟝센에서 주목받는 영화 중 기존 독립 단편의 정체성과 정신이 아쉬운 작품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독립영화제가 겪는 어려움을 미쟝센영화제가 초래한 건 아니잖나. (미쟝센영화제가) 이른 시간 안에 관객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관객과의 접점을 그만큼 많이 고민했고 그 고민이 적중했다는 뜻이다. 그런 점은 기존 독립영화제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장르영화제를 표방하는 미쟝센의 심사기준은, 장르의 화법이 아닌 관습의 파괴에 있다. 언뜻 아이러니처럼 들리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까다로운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진짜 성장이다. 이는 여태껏 걸어온 길을 꾸준히 가겠다고 다짐하는 미쟝센과 미쟝센이 지지하는 영화 모두에 해당하는 목표일 것이다.

“대중성이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역대 수상감독들이 말하는 미쟝센단편영화제

*제창규/ 1회 <사춘기> 공포판타지 부문 대상·<모두들, 괜찮아요?> <비단구두> <특별시 사람들> 촬영감독 “처음 영화제가 생겼을 때 내 영화를 어떤 부문에 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충무로 감독들이 주축이 돼서 만드는 영화제라 그런지 대중성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고 장점이다. 미쟝센영화제 출신 감독들은 충무로 이곳저곳에서 유난히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

*오점균/ 2회 <생산적 활동> 심사위원 특별상·상업영화 데뷔작으로 휴먼조폭코믹드라마 준비 중 “단편에 장르를 적용한 것이 관객의 취향을 고려한 것이었던 것 같다. 관객에게는 선택하는 재미도 있었을 것이고, 미쟝센에 선정된 영화들은 대중성이 돋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생산적 활동>의 장르가 코미디인지 멜로인지 사회드라마인지 고민하다가 왠지 경쟁률이 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코미디에 지원했다. (웃음) 나중에 심사위원 중 한분이 멜로가 더 어울리지 않냐는 말씀도 하시더라.”

*윤종빈/ 3회 <남성의 증명> 코미디 부문 대상·<용서받지 못한 자> 연출·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업영화 데뷔작 준비 중 “처음으로 일반 관객에게 내 영화를 보여준 기회였다. 욕먹을까봐 겁을 잔뜩 먹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힘이 많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상금이 많다는 것도 중요했는데, 수상 당시 <용서받지 못한 자> 촬영 일주일 전이었는데, 돈이 한참 모자라던 참에 이게 웬 떡이야 싶었다. (웃음)”

*김선민/ 4회 <가리베가스> 사회드라마 부문 대상·<시크릿 선샤인>(이창동 감독) 연출부 “특별히 장르를 고민해서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었는데 대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단편영화는 상업영화처럼 대중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게 마련인데, 미쟝센에서 내 영화가 매진되고,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해주는 것을 보면서 관객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내가 느낀 바를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도 있다.”

*김병정/ 4회 <나의 지구를 지켜줘> 액션스릴러 부문 대상·<구타유발자들> B캠기사·<특별시 사람들> 촬영부 퍼스트 “영화제용 영화가 아니라 상업 단편을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영화였다. 처음부터 부천판타스틱영화제나 미쟝센이 아니면 내 영화를 상영할 영화제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부천이 틀어지면서 유일한 기회가 미쟝센이었다. 미쟝센은 자원봉사자들이 특히 인상적인데, 다른 영화제는 자원‘봉사’를 한다면 이곳은 ‘자원’봉사를 한다. 격식 차리지 않은 영화제의 분위기도 독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