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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최민식의 쿼터 투쟁 대담 [1]
이영진 사진 이혜정 2006-07-11

7월1일부터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 연간 146일이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가 절반인 73일로 줄어들어 시행되는 것이다. 1월26일,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이후 정부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귀를 막아버린 정부한테 영화계는 물론이고 한-미 FTA에 반대하는 거센 민중의 목소리가 들렸을 리 없다. 물론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고 곧장 극장이 한국영화를 문전박대하지는 않겠지만, 현재 영화계 안팎의 위기감은 적지 않다. “이젠 끝난 거지, 뭐” 하는 냉소가 그동안의 투쟁의 열기를 송두리째 앗아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안성기최민식, 지난 6개월 가까이 절반으로 뚝 잘린 스크린쿼터를 원상회복시키기 위해, 근거없는 장밋빛 미래론을 유포하는 한-미 FTA를 막아내기 위해, 쉼없이 싸웠던 두 배우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궁금했다. 1998년과 달리 여론마저 등돌린 상황에서 그들도 이젠 지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적당히 물러설 때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었다. 2시간 넘게 두 사람은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선배인 안성기는 “여론이 들고일어나 FTA에 대한 찬반 양론을 벌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또다시 불을 붙일 시점”이라고 했고, 후배인 최민식은 “추잡한 타협 같은 거 할 생각 없다. 앞으로 우린 더 떠들 거고, 그래야 한다”고 받았다. 7월1일은 이들에게 ‘국치일’인 동시에 제2의 투쟁선포일이었다. 두 배우가 내뿜는 활력의 인도를 받아 지난 6개월 동안 영화계 안팎의 한-미 FTA 및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과 앞으로의 계획을 챙겨봤다.

어찌 잊으랴, 문화국치일 1·26을

안성기/ 그땐 정신을 못 차렸지.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나고 다들 뒤통수 맞았다고 했잖아. 언질도 없었고, 낌새도 주지 않고, 단칼에 베어버렸으니까. 진짜 배신감을 느꼈지. 사는 게 뭔지, 믿음이라는 건 또 뭔가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영화인 이전에 나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정부가 약속과 기대를 그렇게 저버리는 것을 보고서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느꼈어. 영화인들 모두 설날을 외롭게 보냈을 거야. 좀 모여야 하는데 설 연휴 앞둔 1월26일 그렇게 뒤통수를 쳐버리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전화 몇통 나누고, 일단 설 보내고 대책을 마련하자 그랬지. 2월에 모이면서부터 좀 정리가 됐던 것 같아.

최민식/ 지난해 11월인가요. 국회 예결위에서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스크린쿼터는 FTA랑 무관하다,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스크린쿼터는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청와대나 총리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했잖아요. 그거 보면서 문화부가 할 말은 하는구나 했어요. 정부 내에서 재경부가 강세지만 문화부에 신뢰감이 갔죠.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죠. 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를 넘겨주면서 어떻게 주무부처 의견이나 이해당사자의 의견 청취를 무시할 수 있는지. 그런 독단적인 결정이 어쩌면 다 같이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닌가 싶었죠.

안성기/ 권태신(전 재정경제부 차관·현 경제협력개발기구 이사)은 악랄하고 치사했어. 영화인들을 한 나라의 중요한 정책결정을 하는데 자기들만 살겠다고 난리법석 떠는 못난이들로 만들어놨으니까. 약점없는 집단이 없는 법이고, 그래도 영화계가 투명한 편이잖아. 그런데 그걸 콕 공격해놓고서 정작 정책 결정을 한 자신들은 쑥 빠져나가고, 네티즌과 우리를 왈가왈부하게 만들고.

최민식/ 참여정부니 걱정 말라 해놓고 기습하는 거 보면 교활한 전술을 부린 거죠. 군사정권 때처럼 폭력으로 찍어누를 순 없었을 테니까요. 영화계를 과소비나 일삼는 사회의 파렴치 집단으로 몰고, 그런 상황을 알지 못하는 대중에게 돌을 던지게 한 거죠. 언론은 중간에서 배우나 감독들을 스탭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세력으로 묘사하고. 1998년에 여론의 도움을 받아 영화계가 스크린쿼터 축소하라는 통상압력을 막아내고 또 한-미투자협정(BIT) 협상을 결렬시킨 전력도 있었으니 그런 잔머리를 쓴 게 아닌가 싶어요.

안성기/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왜 소신있게 못하나. 왜 그렇게 눈치를 보나 싶어. 한-미 FTA는 지금처럼 가면 정부가 코너에 몰릴 거야. 신중론이 득세하고 있잖아.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FTA를 아나. 우리도 그때 왜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하는지 정부에 제발 좀 설득해달라고 했잖아. 근데 못했지. FTA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이 지금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영화계가 FTA 투쟁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봐.

최민식/ 스크린쿼터는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유지하겠다고 한 거잖아요. 미국의 압력 말고는 축소 당위성이 없는 건데. 100번 양보해서 FTA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우리가 지금 압력을 너무 심하게 받고 있다”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게 국민에 대한 상식이고, 예의인 거죠. 그런데 그건 안 하고 몰염치한 집단으로 매도하니까 모욕감이 안 들 수가 없죠. 현 정부는 소통방식이 글렀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아랍순방 때 교사들이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그랬잖아요. 전교조 선생님들을 두고 한 이야기일 텐데.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비판이나 이의를 제기하면 무조건 적으로 모는 거죠. 너무 촌스러워요. 대추리 가면 무조건 사회발전 저해하는 빨갱이로 모는 것 보세요. 게다가 대추리 사태는 군사정권 때 군홧발로 짓밟는 것과 다를 것도 없어요.

2006.1.18/ 노무현 대통령,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발언 1.20/ 권태신 재정경제부 차관, “집단이기주의가 스크린쿼터에도 있다”고 공격. 같은 날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8년 된 스크린쿼터 문제는 풀고 가야 한다… 문화관광부가 영화계와 협상안을 마련해오면 그 안을 갖고 (미국과) 협상에 나설 것이다”라고 설명. 1.26/ 한덕수 부총리, “7월1일부터 스크린쿼터 일수를 73일로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기습 발표. 2.2/ 영화계, “집행위원만 80명이 넘는”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발족하고 정부에 스크린쿼터 축소 철회 촉구.

146일간 계속된 영화인 릴레이 1인 시위

최민식/ 1인 시위 아이디어는 선배가 전에도 낸 적 있잖아요.

안성기/ 2003년이었나 그랬을 거야. 정부쪽에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겠다는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왔을 때였는데. 이렇게 시달리지 말고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를 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더라고. 영화인들이 시청이나 광화문 등에 나가서 스크린쿼터가 뭔지 제대로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회의 때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어. 근데 그게 쉽지가 않은 일이잖아. 스크린쿼터처럼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를 신문 며칠 들춰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결국 축소 이야기가 쑥 들어가서 그냥 넘어갔다가 이번에 다시 하게 된 거지. 발표났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래서 1인 시위를 하자. 하고 싶은 이야기 피켓에 써들고 가서 싸우자 한 거지. 사진 찍히는 것만으로도 홍보가 되고 또 정부에 압력을 줄 수도 있을 거라고 봤어.

최민식/ 선배가 1인 시위 나선 첫날 좀 속상했어요. 프랑스로 치면 이브 몽탕 같은 배우가 자국의 문화정책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온 거잖아요. 난리가 나야 하는 거죠. 근데 말로는 국가 신인도를 높이는 국민배우라고 불러놓고, 정작 우리 정부가 행위로 보여준 것은 없었어요. 제 생각에 그날은 문화관광부 장관이 직접 광화문에 나왔어야 해요. 쇼맨십이라고 비난받을지언정 나왔어야 해요. 해프닝이라고 손가락질당하더라도 나왔어야 해요. 문화를 존중한다면 말이죠. 우리가 대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건 아니잖아요. 경제적인 판단과 기준만이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정신적 가치나 문화적 존재가 존중받을 수 없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안성기/ 막 싸우기 시작할 때 우리에게 여론이 불리했잖아. 98년에는 안 그랬는데. 그때는 여러 시민단체에서도 싸움 잘한다고 했었고. 근데 이번에는 여론이 안 좋으니까 대책위를 꾸리고 또 싸움을 진행하기가 어렵더라고. 힘받는 게 안 되는 거지. 또 똑같은 거 하는구나 하는 냉랭한 시선도 없지 않았고. 물론 언론이 매도한 여론을 조금씩 우리쪽으로 끌고 오는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웃음) 근데 이상하게 한달 넘게 매일 광화문에 나갔는데 네가 1인 시위 하던 날은 못 갔네. 유니세프 일로 부산에 갔었나. 훈장 반납한 것도 못 봤고.

최민식/ 훈장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죠. 그래도 국가 포상인데 받았을 때는 왜 영광스럽지 않았겠어요. 선배 앞에서 죄송스럽지만, 살다보니 별걸 다 받네 했죠. 그런데 이제는 내가 갖고 있어야 할 하등의 명분이 없구나. 그래서 박찬욱 감독과 같이 반납하기로 했는데, 박 감독이 베를린영화제에 가는 바람에 저 혼자 반납한 거죠. 나중에 박 감독이 저보고 왜 혼자만 반납했느냐고 하기에, 그냥 내가 대표로 했으면 됐지, 하고 웃고 말았죠. 잘 아시겠지만 1960, 70년대 영화인들에 대한 정권의 인식이 홍보를 위한 나팔수이거나 홍보전단이었잖아요. 얼마 되지 않았으나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좀 바뀌었나 싶었는데, 정부 처사를 보면 민주화되고 탈권위됐다고 해도 영화인들이 문화적 자산이라는 인식에까지는 미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정부 관료 몇몇이 주도하는 정책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쉽게 모욕을 주는 거 보면 울분이 치밀어오르고 허탈하죠.

안성기/ 그런 울분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1인 시위를 할 수 있었을 거야.

최민식/ 전 즉석에서 시민들과 토론회라도 하고 싶었어요. 스크린쿼터라는 낯선 외래어가 도대체 뭐기에 저 배우들이 거리에 나왔는지 궁금해할 것 아니에요. 그걸 설명해줘야 할 의무 같은 게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잠깐 휴대폰 사진 찍는 거 멈추고 이야길 좀 들어달라고 했던 거죠.

안성기/ 후배들 중에는 굉장히 힘들어한 이들도 많았지. 하긴 해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질문도 많이 들어오지, 길거리 사람들도 지나가다 많이들 묻지, 인터넷 매체들 와서 꾹꾹 찔러대지. 대응할 논리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하루이틀 공부해서 안 되는 거니까.

최민식/ 시험공부를 하는 것처럼 해선 잘 안 되죠.

안성기/ 나는 그래도 몇년 쌓여 있는 게 있어서 버티는데. (웃음) 후배들은 더 하고 싶은데 뜻대로 잘 안 되니까 부담이 많았던 것 같아. 그래도 막상 시위 때는 용기 갖고 자기가 아는 수준에서들 다 잘하더라고. 그것 보면서 저런 방법도 괜찮다 싶었어. 누구 혼자서 모든 걸 다 채울 수는 없는 거잖아. 좀더 적극적인 사람은 좀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다만 다들 스크린쿼터가 지켜져야 하고, 또 축소 반대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은 분명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해.

최민식/ (전)도연이랑 (김)혜수랑은 정말 무서워요. “아니, 오빠. 우리가 이렇게 참고만 있어야 해.” 언젠가 한번 집회 끝나고 이현승 감독님이랑 같이 뒤풀이를 했었는데 너무들 흥분해서.

안성기/ 1인 시위 진행하다보니 언제부턴가 피켓 들고 나오는 시민들이 있더라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나와 지지해준 학생들도 있고. 또 스크린쿼터 없애야 한다는 피켓 들고 나온 친구들도 있고. 지지하든 반대하든 우리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 것이 고맙더라고. 관심이 힘이 된 거지. 무관심이야말로 괴로운 것이니까. 1인 시위도 그렇고 천막 시위도 그렇고 문화제도 그렇고. 배우들이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과 직접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들이 긍정적인 상황을 조금씩 만들어낸 것 아닌가 싶어. 나도 언제나 그런 마음이었고.

최민식/ 시민들 만나는 자리에도 가끔 준비된 저격수가 있기는 해요. 월드컵 때문에 요즘은 좀 뜸하지만 지금까지 20군데 정도의 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했는데….

안성기/ 벌써 20군데나 돈 거야?

최민식/ 예. 전문 강사가 아니니까 강연할 때 질문 시간을 따로 두진 않고 진행하는 편인데요. 의문점이 있거나 반론이 있으면 제가 말하는 도중에도 꼭 손 들고 제기해주세요, 해요. 난상토론도 좋다, 형식을 깨고 한번 해보자, 뭐 그런 거죠. 아까 선배가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중요한 건 관심이라고 하면서. 학생들의 경우에는 “저, OO과 OO학번 누굽니다”라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입을 떼거든요. 근데 이런 분들이 있어요. “최민식씨, 거 질문 하나 합시다” 하는 분들. 저격수죠. 학생이라고 하기에 약간 늙수그레한 분들이죠. (웃음) 그럼 한 30분 정도 논쟁이 붙어요. 제 입장에선 그게 더 좋더라고요. 처음엔 긴장이 확 됐는데 할수록 많은 학생들이 중간 입장에서 서로 다른 격론을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저격수들이 많이 와줬으면 하고 바라요. 학생들이 저보고 다들 형이나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라고 부르는 건 좀 맘에 안 들지만 우리 싸움이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는 걸 알아줄 때면 고맙죠.

2.4/ “문화는 교류의 대상이지 교역의 대상이 아닙니다.” 배우 안성기를 시작으로 영화인 대책위 146일 동안의 릴레이 1인 시위 시작. 2.8/ “스크린쿼터 사수! 문화침략 저지.” 2천여명의 영화인들 광화문에서 대규모 옥외집회 개최. 2.13/ 정부 발표 때와 달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스크린쿼터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리서치 앤 리서치). 2.14/ 베를린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 1인 시위 열어 “새끼양을 늑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쳤는데, 새끼양이 어른양이 되었다고 울타리를 없애자는 격이다. 어른양은 늑대를 무서워하지 않는단 말인가”라고 정부의 쿼터 축소 비판. 2.16/ 노무현 대통령, “어린아이는 보호하되, 어른이 되면 다 독립하는 것 아니냐”며 “한국영화가 어느 수준인지 스스로 한번 판단해볼 때가 되었다”고 발언.

농민, 시민단체 등 모두 같이 가야

안성기/ ‘쌀과 영화’ 문화제 할 때 네가 농민에게 절한 것 갖고도 뭐라고들 말이 많았는데. 난 절한 게 옳았다고 봐.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같이 가야 하는 거거든.

최민식/ 농민 시위할 때 코빼기라도 내밀어봤냐. 절하는 것도 가식이다. 뭐 이런 비난이 있었죠. 전 그런 반응을 접하면서 좀 섭섭했어요. 왜냐하면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무관심했던 건 아니거든요. 작품을 통해서 말했을 따름이지. 선배도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꼬방동네 사람들> <어둠의 자식들> 같은 사회성 짙은 영화에 출연했고, 뭐 저도 그랬고. 우리가 작품하면서 늘 흥행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술자리에서도 우리 세태에 대해서 이야길 나누고, 또 그런 토론들이 반영돼서 작품으로 나오는 것이고.

안성기/ 환경연합과는 스크린쿼터 싸움하면서 많이 친해졌고. 박찬욱 감독이나 문소리씨는 민노당 당원으로서 운동에 적극적이고. 조금씩 목소리를 내왔는데, 그게 매번 두드러지진 않으니까 그런 오해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해왔지만 잘 안 보이는 운동 같은 것도 많다고. 청소년들 위해서 독서운동본부도 돕고 그랬는데.

최민식/ 대한민국에서 시위하는 데 자격증 필요한 것도 아닌데. 민주노총 산하에서 사회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자신들이 속해 있는 조직이나 구성원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때 거리로 나오는 거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고, 다들 필요성 때문에 나오는 거잖아요. FTA 싸움이 진행되면서 그분들과 자연스럽게 손을 잡게 되는 것이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싸웠던 이들만이 권익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영애씨랑 선배랑 홍콩 가서 싸운 농민 시위를 지지하면서 청원서를 보내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같이 싸우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무관심한 건 아니었잖아요. 전경 방패에 찍히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의 투쟁과 목소리가 훼손당하거나 당위성을 인정받지 못해선 안 된다고 봐요.

안성기/ 어떤 어른들은 그래. 쿼터 이야기만 하지, 왜 계속 정치적으로 가느냐고. 순수하지 못하다고. 근데 그건 FTA를 잘못 이해하시는 거지. 정치적인 것에 굉장히 개입하길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도 쿼터 이야기만 하면 좋지. 근데 따라가다보면 쓱 하고 어느새 모든 부문이 연결되어 있는 거야. 미국의 압력도 드러나고. 쿼터만 이야기해야 한다면 결국은 조용히 가만있어야 한다는 결론밖에 안 나와.

최민식/ 수동적인 연대는 안 된다고 봐요. 끈을 놓치지 말아야죠. 서로가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가야죠. 싸움에 참여하면서 현실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구나 뼈저리게 느꼈어요. 전농의 문경식 의장님 같은 분들 보면서 굉장히 감동받았는데 대단한 메시지나 깨달음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분 모습에서 그런 게 느껴져요. 정말 저분 영락없는 농부다. 왜 우리가 군인, 교사 하면 떠오르는 어떤 전형적인 캐리커처 이미지 같은 거 있잖아요.

안성기/ 직업병이 발동했네. 관상보는 거. 관찰하고 캐치하고.

최민식/ 사석에서 보면 완전히 옆집 아저씨예요. 말투나 습성이나. 그런 어눌한 말투의 농부가 어떻게 살벌한 집회현장을 다니게 됐나.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거잖아요. 저 사람은 농부고 난 배우구나. 저 사람도 잃었고, 나도 잃었구나. 잃은 사람들끼리 모였구나. 선배에게 미리 의논드렸어야 했는데, 전 앞으로 배우들의 공식 단체가 꾸려지면 몇몇이라도 함께 가서 우리 대학 때 농활 갔던 것처럼 모내기도 하고,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비빔국수 먹고 막걸리도 마시고, 그런 끈을 계속 가져갔으면 해요. 짱구 굴려서 계산한다면 이런 거 못하죠. 전화위복이라고 봐요. 우리도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안성기/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른 사회단체들이 영화계를 부러워하고 고마워해. 이쪽은 다들 작품 만들려는 마인드가 워낙 강해선지 사람들이 모이면 이상하게 판을 잘 짜는 편이야. 기획부터 미술까지 분업이 돼서 그런가 짜임새도 있고 효과적이지. 짧은 시간에 모여서 확 불 지르는 스타일이니까. 이기적일 것 같은데 의외로 희생도 잘하고.

최민식/ 경제 관료들이 우리 내부에 “조직적인 집단이기주의”가 있다고 하잖아요. ‘조직적’인 건 사실이죠. (웃음) 한덕수 부총리 같은 사람들은 BIT 때 주무부처에 있으면서 한줌도 안 되는 영화인들한테 세게 덴 적이 있으니 잘 아시겠죠. 애로사항이 많았을 거예요.

안성기/ 그때야 제대로 붙었지. 이번 싸움 같은 경우는 초반에 갑자기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회복하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 그때만은 못하지만 그때처럼 만들어야지.

2.17/ 영화인 대책위,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광장에서 농민, 노동자 등과 함께 한-미 FTA 협상 반대 및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촛불문화제 ‘쌀과 영화’ 개최. 2.27/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스크린쿼터와 관련한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며 취재 거부 등을 결의한 데 이어 젊은 영화감독들의 모임인 디렉터스 컷도 ‘<조선일보>에 보내는 감독들의 경고문’이라는 성명서 발표. 3.2/ 열린우리당 및 문화관광부 관계자들, 극장 관계자들과 만남. 이 자리에서 극장업계, “스크린쿼터가 줄어들더라도 자율적으로 의무상영일수 지키겠다”는 신빙성없는 발언 내놓음. 3.6/ 영화계, 전국영화산업노조를 시작으로 스크린쿼터 사수 위한 장기 천막농성 돌입. 3.7/ 정부, 스크린쿼터 축소를 골자로 한 영화진흥법 개정안 시행령 국무회의에서 의결. 3.22/ 전국 30개 대학 영화영상 관련학과 학생들 수업 거부하고 거리시위. 3.28/ 영화인 대책위 포함, 사회·노동 분야 280개 단체가 가입한 한-미 FTA 저지 범국민 대책위원회 발족. 4.15/ 한-미 FTA 저지 1차 범국민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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