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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영화제가 부리는 마법

부천영화제에서 전설 속의 배우 왕우를 만나다

영화제에 참여하면서 생기는 드물지만 소중한 즐거움은 단순히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것이나 오래된 영화를 재발견하는 데서만 오는 것은 아니라, 때때로 역사가 마법과도 같이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35년 전쯤 서구에서 홍콩영화에 대한 최초의 폭발적 열광이 있던 시기, <전광석화 같은 발차기 솜씨를 가진 여자>라는 영화가 영국에서 개봉됐다. 당시에 서구에서 개봉되었던 많은 다른 홍콩영화처럼 미국 영어로 엉망으로 더빙되었고 원래 상영시간에서 잘린 채 질 낮은 컬러로 상영됐다. 그러나 외국 개봉판의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빛을 발하는 허장성세와 집념이 보였다. 알아본 결과- 인터넷과 영화백과사전이 나오기 이전의 시대엔 쉽지 않았는데- 필자는 그 영화의 원래 영어 제목이 ‘황금제비’(금연자)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미 5년 전에 제작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1968년 쇼브러더스 제작에 왕우와 정패패가 출연하고 장철이 감독한 이 영화는, 역시 정패패가 금연자라는 이름의 검객으로 출연하고 호금전이 감독한 쇼브러더스의 대히트작 <대취협>의 속편 격으로 만들어졌었다. 사실 이 영화의 스타는 금연자가 아니라 거만하고 냉혹하며 흰 장삼을 걸친 은붕인데, 당시 가장 잘나가는 액션 스타 중 하나였던 왕우가 은붕 역을 맡았었다. 챔피언 수영 선수였다가 배우가 된 왕우는 장철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로 명성을 얻었고, 서구에는 ‘쿵후’ 바람이 휘몰아치던 1970년대 초·중반에 만들어진 여러 영어 액션영화 중 하나인 <직도황룡>의 스타로, 당시 그는 지미 왕유라는 이름으로 서구에 알려졌다.

왕우는 결코 위대한 배우도 아니고 스크린을 휘어잡는 풍채도 아니었다. 호리호리하고 무표정한 그에겐 집착적인 영화 캐릭터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이소룡의 자기비하적인 유머도 없었다. 그러나 왕우는 그가 주로 연기했던 마조히스트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캐릭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차갑고, 강철 같은 카리스마를 발산했으며, 적어도 한번 무협장르 걸작에 주연을 맡고 감독하기도 했다. 1973년 골든하베스트 제작의 <전신탄>이다. 왕우는 1980년대 영화 출연에서 거의 사라졌고, 필자는 그를 결코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제 덕에 역사가 완전히 한 바퀴 되돌아오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2006년 7월, 부천. 왕우는 자기 영화 여섯편(안타깝게도 <전신탄>은 포함되지 않았지만)을 회고전으로 상영하는 부천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이 도시에 와 있다. 원기왕성하고, 농담 잘하는, 여유로운 63살의 왕우는 바로 여기서 <금연자>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섰다. 우리 앞에 선 그는 오늘날 보면 영화의 액션장면이 너무 과장되어 보이는 것에 대해 사과하고, 적어도 당시 배우들은 대역없이 직접 스턴트 장면을 찍었다고 덧붙인다. 여전히 공중에 던져올린 세개의 동전을 따로따로 하나씩 잡아채는 묘기를 선보인다. 영화 속 그와 정패패가 오랜 세월 서로를 찾아 헤매던 연인을 연기했음에도 감독이 “컷!”을 외치고 나면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 사이였다고 귀뜸한다.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고 나서 필자에게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의 속편을 기획하고 있으며 자신은 주인공의 나이 든 스승을 연기할 것이라고 말해주기까지 한다.

35년 만에 전설적인 영화를- 디지털로 복원된 멋지고 온전한 프린트로- 다시 보고, 마침내 그 배후의 전설을 만나는 것. 영화제가 벌일 수 있는 일 중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번역 조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