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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물주기, 숨통터주기
2001-09-07

시네마테크문화를 만드는 극장들 - 하이퍼텍 나다, 아트선재센터, 씨네큐브

서울에서 수시로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은 한정돼 있다. 하이퍼텍 나다, 아트선재센터, 씨네큐브 등 3군데 극장은 문화사업에 뜻있는 개인이나 기업의 재정적 지원을 통해 척박한 영화문화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동숭아트센터(대표 김옥랑)에서 지난해 8월 개관한 하이퍼텍 나다는 최근 1주년을 맞아 그간 상영했던 영화들 가운데 주요 작품을 뽑아 ‘나다 베스트컬렉션’이라는 제목으로 재상영했다. <키즈 리턴> <하나 그리고 둘> <구멍> <동경의 주먹> <제7의 봉인> <히로시마 내사랑> <차례로 익사시키기> 등을 틀었는데 주최쪽 집계에 따르면 평균 좌석점유율이 70%에 달했다. 특히 8월21일 <하나 그리고 둘> 상영은 매진을 기록하며 걸작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찾는 관객이 끊이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동숭은 1995년 영화사 백두대간(대표 이광모)과 함께 예술영화전용관을 출범시킨 경험이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 수급을 전적으로 백두대간이 맡고 장소만 빌려주는 역할분담은 동숭 입장에서 만족스런 것이 아니어서 프로그램을 직접 짜서 운영할 수 있는 하이퍼텍 나다를 만들게 됐다.

1999년부터 준비작업에 들어가 지난해 개관한 나다는 지난 2월 쓰카모토 신야, 4월 잉마르 베리만, 6월 피터 그리너웨이 등 동숭이 수입한 영화를 중심으로 영화제를 열었다. 이중 잉마르 베리만 영화제는 20일간 관객 7천여명을 불러모으는 성공을 거뒀는데 동숭쪽은 이미 수입한 7편의 베리만 영화 외에 <페르소나> 등 몇편을 더 수입해 내년에 다시 영화제를 열 계획이다. 나다는 오는 10월에 <나의 일기> <아들의 방> 등 난니 모레티 영화 3∼4편을 모아 트는 행사를 준비중이며 12월7일부터는 프랑수아 트뤼포 회고전을 열 계획이다. 동숭아트센터 영상사업팀장 김난숙씨는 “아트센터 안의 영화관은 어떻게 운영해야 되는가?”가 현실적 고민이라고 말한다. 공연장인 동숭아트홀이 있는, 연극의 거리인 대학로의 특성과 호흡을 맞추자면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영화제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관객이 기획안을 내서 만드는 ‘나만의 영화제’ 등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쉽게 이뤄지기는 힘든 단계다. 나다는 장기적인 전망을 레퍼토리 극장으로 삼고 있다. 수입한 영화편수가 어느 정도 축적되면 1편씩 개봉하는 게 아니라 주단위나 월단위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한다는 것. 나다는 1100명 정도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회원 수가 재정적으로 큰 도움을 주진 않지만 신뢰를 뜻하는 상징적 숫자로 의미가 크다는 게 김난숙씨의 설명. 적자가 나도 극장을 계속하는 건 이렇게 적극적 관심을 가진 관객을 의식하고 격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 있는 씨네큐브는 대극장에서 영화사 백두대간이 수입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소극장인 아트큐브에서 매달 열리는 퀴어아카이브 등 작은 영화제를 계속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뒤 ‘아듀! 20세기전’, ‘거장들의 명데뷔작전’ 등 백두대간이 판권을 갖고 있는 영화들 위주로 몇 차례 영화제를 열었던 씨네큐브는 <프린스 앤 프린세스> <타인의 취향> 등 개봉영화들이 예상보다 일찍 상업적 성공을 거둬 시네마테크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개관한 지 9개월된 현재 15만여명 관객을 유치한 씨네큐브는 하반기에 스크린쿼터를 채워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건물 소유주인 흥국생명으로부터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어 운영의 어려움이 가장 적다.

서울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등이 영화제 공간으로 택하고 있는 아트선재센터는 공연장과 결합된 나다와 달리 미술관에 들어서 있는 상영관이다. 1년 내내 영화상영을 하는 극장이 아니며 직접 수입, 배급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트선재센터는 지난 1년간 가장 활발히 영화제가 진행된 곳으로 서울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외에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매달 주최하는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등이 뜻있는 관객을 불러모았다. 아트선재센터가 영화제에 열의를 보인 것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해 12월 각국 대사관, 문화원 인사들에게 협조를 구해 올해 3월 멕시코영화제, 5월 파스빈더 회고전을 열었고 9월 초 영국 해머영화제, 11월 라틴아메리카영화제 등을 열 계획이다. 최근 아트선재센터는 60년대 한국영화들을 재발견하는 ‘한국영화 전성시대’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EBS <한국영화걸작선> 진행을 맡고 있는 김홍준 감독이 프로그램을 짠 이 영화제는 앞으로도 1년에 3∼4차례 계속될 예정. 주최가 다른 다양한 행사를 유치함으로써 아트선재센터는 1년 내내 크고 작은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트선재센터 기획팀 김수정씨는 “지금은 외국 대사관이나 문화원에서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우선 받아들이고 있지만 차츰 아트선재센터가 직접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아트선재센터는 시네마테크 기능에 가장 충실한 극장. 개봉영화를 상영하는 게 아니라 100% 영화제 위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대관료가 수입의 전부이다. 이곳 운영은 대우재단의 재력에 많이 의존했으나 모기업의 사정 때문에 최근엔 재정적 어려움이 적지 않다. 뉴욕 현대미술관처럼 미술관 내 극장의 품위를 유지한다는 아트선재센터의 신조가 지켜지려면 후원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다.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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