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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의 ‘신곡’, <아워뮤직>
김도훈 2006-09-05

전쟁과 인간과 윤리와 종교와 영화에 대한 장 뤽 고다르의 ‘신곡’.

단테의 <신곡>은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장대한 기행문이었다. 장 뤽 고다르의 2004년작 <아워뮤직>은 단테의 여행기를 지상으로 끌어오려는 거장의 시도다. 영화는 <신곡>처럼 지옥, 연옥, 천국의 세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옥편에서는 고다르가 수집한 수많은 전쟁의 이미지-콜라주들이 관객의 망막에 점멸하며 스쳐지나간다. 연옥편은 속죄와 화해의 장이다. 고다르는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유럽문학과의 조우’에 참석하러 길을 떠나고, 중간중간 실재 혹은 허구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기억을 환기시키며 모든 갈등이 화해로 돌아서는 순간을 꿈꾼다. 마지막 챕터인 천국은 스산한 행복감으로 충만한 고다르의 에필로그다. 카메라는 그저 평화로운 해변에서 한가롭게 경계를 서고 있는 미국 해병대의 모습을 비춘다. <아워뮤직>을 영화라고 일컫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까. 이것은 오히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뒤섞은 이미지의 실험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선형적인 구조 속에서 고다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하다. 각각의 장은 인간의 역사가 거쳐온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의 형상을 그려낸다. 그 속에서 고다르는 단테인 동시에 베르길리우스다. 그는 전쟁과 학살의 역사를 지켜보며 인류의 윤리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장 뤽 고다르는 <아워뮤직>을 완성한 직후 “더이상 내러티브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다르는 이미 <네 멋대로 해라>에서부터 전통적인 내러티브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72년 <만사형통>을 끝으로 비디오 실험에 몰두하면서는 ‘영화’라고 불리는 매체에 대한 해체와 재조립 작업에 열중해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80살의 노감독이 여전히 진보적인 영상의 실험 속에서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눈앞에서 반복되는 이미지 나열을 암호처럼 대할 필요는 없다. “영화 <아워뮤직>은 결국, 수많은 반복 속에서 가장 큰 가치를 가진다”는 <뉴욕타임스>의 말처럼, 반복되는 이미지 속에서 고다르는 명확한 말투로 영화의 원리를 선언한다. “영화의 원리는/ 우리의 밤과/ 우리의 음악을/ 빛으로 밝히는 것.” 그래서 <아워뮤직>은 결국,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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