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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에 의한, 네티즌을 위한 동화, <전차남>
최하나 2006-09-05

네티즌에 의한, 네티즌을 위한 동화. 인터넷 시대의 감수성에 어울리는 로맨스.

인터넷이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는 시대다. 자질구레한 상식부터 절절한 연애 상담까지, 만물상의 품새를 자랑하는 인터넷은 무한대로 확장하는 소통의 창구가 됐다. <전차남>은 한 소심한 남자가 네티즌의 성원에 힘입어 연애에 성공한 만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2004년 일본 ‘2채널’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전차남’이라는 대화명으로 올라온 소심남의 사연은 이후 TV드라마, 연극, 책으로 각색되며 화제를 모았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제작사 도호를 통해 영화로 탄생했다.

덥수룩한 단발머리에 커다란 안경, 목까지 꼭 채운 셔츠와 배까지 올려입은 바지. 촌티나는 옷차림과 어눌한 말투로 왕따 신세인 전차남(야마다 다카유키)은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오타쿠다.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취객에게 시달리는 여성(나카타니 미키)을 얼결에 구한 그는 그녀에게 답례로 에르메스 찻잔 세트를 선물받는다. 전차남은 즉시 자신의 사연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조언을 구하고, 네티즌은 그녀에게 ‘에르메스’라는 별명을 붙인 뒤 데이트 코치를 시작한다.

가진 것 없는 남자와 미모의 엘리트 여성. <전차남>의 구도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남녀를 뒤집어놓은 듯하다. 극한의 소심함으로 똘똘 뭉친 전차남의 좌충우돌은 폭소를 자아내지만, 에르메스가 시종일관 우아함을 고수하는 탓에 그들의 로맨스는 흥미로운 화학작용을 일으키진 못한다.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네티즌의 시끌벅적한 댓글 달기다. 영화는 익명의 네티즌을 크게 5집단으로 분류해 각각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방 안에 틀어박힌 인터넷 폐인, 실연의 상처에 가슴앓이하는 간호사, 만화방에 죽치는 노총각 3총사 등 네티즌들의 댓글이 각자의 사연과 겹쳐지면서 이야기는 풍부해진다. <워터보이즈> TV시리즈를 연출한 무라카미 마사노리 감독은 발랄한 만화적 감성을 스크린에 옮겨왔다. 전차남에게 훈수를 두는 네티즌의 모습이 시시각각 화면분할을 통해 등장하고, 곳곳에 타이핑하듯 떠오르는 채팅언어들은 깜찍한 웃음을 자아낸다. 사랑을 이루어낸 두 남녀를 중심으로 네온사인과 이모티콘이 함께 점멸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현실과 사이버 스페이스가 한데 존재하는 인터넷 시대의 풍광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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