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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6] - 작가영화
씨네21 취재팀 2006-09-29

발견의 기쁨주는 작가영화 7편

노련한 연출력 선보이는 반가운 감독들과의 만남

<레퀴엠> Requiem 한스 크리스찬 슈미트/ 2006년/ 독일/ 93분/ 월드 시네마

1976년 독일의 한 시골마을. 21살의 미카엘라 클링거가 죽었다. 사인은 며칠간에 걸쳐 거행된 엑소시즘으로 인한 탈진이었다. <엑소시스트>를 연상케 하는 미카엘라 클링거 사건은 극적인 드라마로 인해 오랫동안 서구사회의 종교적 텍스트로 회자되어왔고, 2006년에는 두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나는 할리우드의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고, 다른 하나는 한스 크리스찬 슈미트의 비범한 장송곡 <레퀴엠>이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가 악마들림 현상을 모호하게 해석하는 할리우드 장사치들의 한철 상품이라면, <레퀴엠>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종교적 광신에 휩싸이는 순간 재림하는 마음속의 악마를 무시무시하게 그려낸 드라마다. 오랜 간질 병력을 가진 21살의 미카엘라 클링거(샌드라 휠러)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입학 허가를 받아낸다. 대학에서 록음악과 자유연애의 세례를 받으며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는 미카엘. 그러나 가톨릭적 금욕주의에 빠진 촌부 어머니에게 억압당해온 미카엘의 무의식은 갑작스러운 자유에 저항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던 미카엘은 또다시 환청과 환각을 동반한 간질 발작을 겪게 된다.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모든 것이 악마의 소행이라 믿는 광신자 신부와 엄마의 엑소시즘에 스스로를 내맡기고 만다. 한스 크리스찬 슈미트는 실제 사건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내리는 대신 미카엘라의 고행을 차갑고 세심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종교적 신념이 광증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무시무시하게 그려낸다. 특히 관객의 심장에 끊임없이 생채기를 내는 샌드라 휠러의 압도적인 연기는 오랫동안 회자될 만하다. 2006년 베를린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 수상작.

<4:30> 4:30 로이스톤 탄/ 2005년/ 싱가포르/ 93분/ 아시아영화의 창

새벽 4시30분. 11살 소년 샤오우에게 그것은 하루의 절정이자 희열의 순간을 의미한다. 혼자 살아가며 사람과의 접촉에 목말라하는 그는 매일 4시30분에 일어나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국인 아저씨 정을 찾아간다. 그의 소지품을 훔치기도 하고, 옆에 누워 휴대폰 사진을 찍는 등 몰래 정과의 인연을 소망하던 소년은 어느 날 정의 자살 시도를 목격하게 된다. 묘한 연대감을 형성한 두 사람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샤오우는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은 듯 정의 관심에 행복해한다. <4:30>은 부재와 고독을 곱씹어 차가운 심연 속에 던져놓는 이야기다. 로이스톤 탄 감독은 소년과 남자의 만남을 통해 소통의 순간을 탄생시키는 대신, 두 사람이 결국 각자의 삶 속으로 갈라지는 결말을 택한다. 시계 바늘처럼 낮과 밤의 시간을 주기적으로 오가는 영화는 절제된 목소리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이야기한다. 남자의 눈물이 묻은 옷을 잘라내 간직하고, 끊임없이 시계를 4시30분에 맞추는 소년의 몸부림은 보는 이의 가슴속에 먹먹한 슬픔을 남긴다.

<반달> Half Moon 바흐만 고바디/ 2006년/ 이란/ 90분/ 아시아영화의 창

바흐만 고바디의 2002년작 <고향의 노래>로부터 이어지는 듯한 영화. 이란의 저명한 쿠르드족 음악가 마모는 버스에 열네명의 아들들을 태우고 사담 후세인의 몰락을 축하하는 콘서트를 열기 위해 이라크로 향한다. 그러나 길은 순탄하지 않아 곳곳이 검문소고, 이 아들 저 아들이 제각기 말썽을 피운다. 마모는 노래를 금지당한 여가수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들러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던 헤쇼를 찾지만, 그녀는 이란 경찰에 끌려가고 만다. 전작 <거북이도 난다>에서 예지력을 가진 소년을 등장시켰던 바흐만 고바디는 이번에도 섬광처럼 찾아오는 마모의 환상으로 미래를 혹은 소망을 표현했다. 그가 이라크로 향하는 길은 죽음과 겹치는 길이기도 하고, 추방당한 여가수들의 노래가 흐르는 길이기도 하다. 마모가 폐허 위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구슬픈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들 사이를 통과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 쿠르드족 특유의 소란스러운 말투와 유머와 노래도 언제나처럼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악몽탐정> Nightmare Detective 쓰카모토 신야/ 2006년/ 일본/ 106분/ 아시아영화의 창

<철남> <쌍생아>를 만든 쓰카모토 신야의 신작. 게이코는 현장 경험을 쌓고 싶어서 엘리트로 인정받아온 보직을 포기하고 일선 형사가 되었다. 그녀는 잔혹한 방법으로 자살한 두 사건을 수사하다가, 두 사람이 모두 죽기 직전에 같은 사람과 통화했음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의 무의식을 조종하는 ‘제로’라는 인물은 비밀에 싸여 있다. 게이코는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카게누마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수사를 위해 ‘제로’에게 전화를 걸었던 동료가 자살하는 일을 겪은 게이코는 직접 ‘제로’에게 전화를 건다. <악몽탐정>에서 쓰카모토 신야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영상미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이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남자가 겪게 되는 악몽보다 더한 공포는 긴장감있는 연출에 힘입어 노련하게 표현되었다. <악몽탐정>은 부산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도취> Euphoria 이반 비리파에프/ 2006년/ 러시아/ 74분/ 크리틱스 초이스

베라는 폭력적인 남편 발레리와 딸과 함께 외딴 전원에 살고 있다. 그녀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 파벨을 떠나왔다. 파벨과 베라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함께 있어서 더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로 합의하에 헤어진 연인이다. 그런데 파벨을 떠나온 다른 삶에서, 베라는 어떤 삶의 힘도 얻지 못한다. 베라와 파벨은 재회하고, 발레리는 그들을 평온하게 놓아주지 않는다. <도취>는 상처와 폭력과 감정의 진물로 엉망진창이 된 사랑이 그 자체로 절대적일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 영화는 남부러시아 돈강 주변 스텝지대에서 촬영됐다. 광대하게 뻗은 대지와 하늘, 푸른 강줄기. 넓은 대륙을 가진 나라가 아니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광활한 자연이 아찔하게 다가오면서 세 남녀의 사랑도 마치 그 자연의 일부인 듯 풍경 속으로 흡수된다. <도취>가 말하는 사랑은 야성적이며 근원적인 어떤 에너지로서의 사랑이다. 거기에 러시아영화 특유의 시적인 화면이 더해져서, 이 영화의 연애학은 철학으로 승화된다.

<시간과 바람> Times and Winds 레하 에르뎀/ 2006년/ 터키/ 111분/ 월드 시네마

시적 영상미가 돋보이는 터키영화. 작고 가난한 산간마을에 사는 두 소년과 한 소녀의 사춘기를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마을의 모든 주민이 가족같이 살아가는 곳에서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은 부모가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것을 강요받는다. 오메르는 어린 동생의 영특함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에게 무용한 존재고, 야쿱은 할아버지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고 살아가느라 버거운 아버지 때문에 덩달아 소외된 삶을 산다. 일디즈는 책을 좋아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살림 외의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을 마땅찮아한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라야 말들이 교배하는 광경을 쳐다보거나, 집에서 견딜 수 없게 되면 바람이 느껴지는 언덕 위에 올라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것이 다다.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마치 시체처럼 몸을 숨기고 가족에게서 도피한다. 바람, 물, 나뭇가지가 내는 소리가 광활한 자연풍경과 어우러진다.

<해로운 우정> Poison Friends 에마뉘엘 부르디외/ 2006년/ 프랑스/ 107분/ 크리틱스 초이스, 특별전 - 프랑스 동시대 작가들

칸트는 우정은 동등의 관계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정이라는 단어가 허세와 거짓을 윤색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해로운 우정>은 4명의 대학생이 빚어내는 역학관계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위선을 고발한다. 같은 문학 수업을 수강하는 알렉상드르, 엘루아, 에두아르는 엄청난 독서량과 유려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앙드레에게 압도당하고, 그를 중심으로 친구가 된다. 하지만 모종의 위계 관계 속에서 그들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앙드레. 경력을 조작하고, 편지함에 불을 지르는 등 그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그들은 차차 앙드레의 모든 것이 거짓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4명의 캐릭터를 오가며 각자의 위선과 허위를 찬찬히 훑어나간다. 촘촘히 그려넣은 내면의 지도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결말의 날카로운 반전. 학교의 문턱을 벗어나 사회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그들은 무너진 우정에 차갑고 잔인한 마침표를 찍는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들이기도 한 에마뉘엘 부르디외 감독은 자신의 두 번째 장편인 이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했다.

심야상영 프로그램 ‘미드나잇 패션’

긴긴 밤을 버틸 수 있는 새롭고 신기한 영화들

‘미드나잇 패션’은 2004년 실험적으로 심야상영을 해보았던 부산영화제가 올해 새로 만든 심야상영 프로그램이다. 다른 영화제와 달리 특정한 주제나 감독을 선정하지 않은 ‘미드나잇 패션’은 긴긴 밤을 잠들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재미있고 무섭고 웃기는 영화들로 채워졌다. 12개국 13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이 프로그램의 키워드는 새로운 영화 혹은 신기한 영화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칸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모았던 영화 중 하나인 <택시더미아>는 섹스에 목이 말라 온갖 자위방법을 개발한 할아버지와 먹기 대회 챔피언으로 고래처럼 뚱뚱해진 아버지, 박제사인 아들 삼대의 기괴한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구성한 코미디다. <서유기 월광보합>의 유진위는 삼장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총천연색 CG를 덧입힌 서유기 이야기 <삼장법사의 모험>으로 관객을 만나고, <딜버트> <사인펠드>의 작가 래리 찰스는 파멜라 앤더슨을 아내로 삼기 위해 LA로 떠나는 카자흐스탄 방송국 리포터의 여정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로 찾아온다. 이 프로그램의 유일한 애니메이션인 노르웨이 작품 <지미를 찾아서>는 마약 중독자 코끼리가 주인공이다.

한밤이라 하면, 역시 공포다. 대만영화 <가족상속괴담>은 가족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높이에 목을 매어 죽은 사건이 일어났던 대저택의 저주를 다루고, 포르투갈영화인 <배드 블러드> 또한 섬뜩한 비밀이 깃들어 있는 시골집의 괴담을 담고 있다. <샘스 레이크>는 황야로 사라진 살인마의 전설이 깃든 ‘샘스 레이크’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이야기다. 이 밖에도 <헤드윅>의 존 카메론 미첼이 만든 <숏버스>는 누드와 섹스의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한밤의 은밀한 체험을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