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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희망을 못버려요, 병신같이” (1)
2001-09-14

평소 팬임을 숨기지 않던 장선우 감독을 만나다

부산 감천동 화력발전소의 철탑 8층. 차관을 상환하는 대신 러시아가 보냈다는 ‘현물’ 헬리콥터 속 제1 카메라가 성소를 훑고 지나는 동안 나머지 스탭과 출연진은 은신처를 찾아 몸을 숨겼다. “어어!” 모니터와 함께 구석자리를 잡고 있던 장선우 감독은, 등 뒤를 돌아보더니 그렇게 싱겁게 틈입자를 반겼다. 헬기의 굉음 속에서, 내년이면 철거된다는 미래파 설치물 같은 박정희시대 유물의 그림자 속에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아니, 시작된 건 20년 전쯤인가. 88년 장선우 감독은 첫 단독 장편 <성공시대>를 만들었고, 틈입자는 영화기자의 첫해를 운행중이었다. 한국영화의 새물결이 이렇게 거대한 바다에 와닿을 줄 그때,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건 흐름인가, 단절인가, 인터뷰는 촬영이 끝난 뒤 자리를 옮기고 옮겨가며 해뜨기 전까지 계속됐다.

시작- 착한 영화

<거짓말> 만들고 나서 아주 착한 영화 만든다고, 인터뷰할 때 그러셨잖아요.

네, 앞으론 그러려고 해요.

그럼 <성냥팔이 소녀>(이하 <성소>)는 착한 영화가 아닌가요.

<성소>는 크게 보면 폭력이 좀 난무해서, 보기에 따라서는 참…. 착하게 안 보여질지도 모르는…, 굉장히 도발적인 데가 더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것도 전복적인 데가 있고. 잘 나가는 동화를 뒤집겠다는 것 자체가 전복적이잖아요. 그래서 뭐, 착한 영화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봐줄지도 모르겠어요. 그 대신 청소년들도 함께 볼 수 있게 자극적으로 가지는 않으려고 하는데 모르겠어요. 사실 주인공이 정서적으로 잘 맞거든요. 게임에 빠져 사는 세대는 10대들이 주류잖아요. 물론 보기에는 게임을 몰라도 볼 수 있게 만들고 있지만, 그 정서를 즉각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게 10대들 같아요. 지금까지 한번도, 불우하게도 10대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한번도 못 만들었는데 이번 영화의 목표는 10대예요. 아, 목표만 달성되면 난 그만 하려 그러는데. (웃음) 그런 게 착해지는 과정 아닌가요. 그렇게 연령을 낮춰서 보는…. 말이 안 되나. (웃음)

아뇨. 굉장히 착해지시는 것 같은데요. 굳이 착해지려는 이유는.

아니, 하도 나쁜 아저씨라고 돌팔매를 많이 맞아서. 나도 살아야잖아요.(일동 웃음)

성냥팔이 소녀와 금강경

그런데 참, 영화 속에서는 게임 이름이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꾀한 이유는 뭐예요?

소재를 찾을 때 단순하게 느낌이 찾아오는데, 느낌이 오는 대로 생각하는 편인데, <키노>에 언젠가 김정구씨의 그런 시가 실렸어요. 재밌다, 그랬는데 이 시의 이미지가 이상하게 들어와 박혀서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다 생각했었죠. 이 시가 이렇게 풀릴 줄 나도 미처 몰랐지. 그게 일면 패러독스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라이터 팔면서 우울하게 서울의 한구석에서 죽어가는 느낌이 굉장히 시각적으로 자극한 건데,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우울한 이것에서 벗어나서 행복한 엔딩으로 바꾸면 안 될까, 뭐 그런 생각이 생겼달까. 나는 우리 사회의 코드를 따라간다고 했잖아요.

그때 게임의 열풍, 또는 가상현실에 대한 문제, 이런 것과 결합해서 이것이 가상현실이라는 우리 시대의 화두와 만나면 재미있겠다 싶어 해보기 시작한 건데 여기까지 끌려왔죠. 망했죠, 그래서. (웃음) 아, 고달파 죽겠어, 괜히 그 작품을 봐가지고. 딴 걸 했어도 몇 작품을 했을 텐데. 그래서 김정구가 웬수야, 웬수. 그런데 인터넷의 열풍이나 특히 우리나라에서 게임이 갖고 있는 독특한 취향들. 이런 게 나에겐 만만치 않게 이 당대의 숙제처럼 다가온 것이고 그게 그 시와 만난 거죠.

자꾸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장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자꾸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들이 생겨나데요.

아, 나쁜 사람들이에요. (웃음)

그 사람들은 하필이면 왜 성냥팔이일까, 그리고 그게 왜 그렇게 와닿았을까,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죠. 전 안 그래요. (웃음) 난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시중에 만연해 있는, 그 바이러스 같은 나쁜 궁금증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거죠.

정치적인 메타포도 있긴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얘가 싸우는 시스템, 작게는 게임회사일 수도 있고, 크게는 우리의 삶을 제도화한, 그리고 삶의 형태를 만든 총체적인 것, 이데올로기부터 제도의 모든 내용을 상징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것에 맞싸우니까, 그것을 공격하고 부수고, 뚫고 나가고, 결국 깨고 이러니까 정치적인 함의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이것은 정치를 넘어서는 거라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건 정치나 이런 차원이 아니라 꿈과 현실에 대한 얘기고, 또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의 구분에 대한 얘기고. 영화 속의 엔딩부분에도 <금강경> 구절이 한번 떠오를지 몰라요. 그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부분으로 밀고갈지 몰라요. 그러니까 모든 상이 허상인 것을 같이 볼 수 있을 때 사람들의 본성을 볼 수 있다는 <금강경>의 얘기를 영화 끝까지 밀고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도 정치적으로 볼 수 없어요. 우리 삶의 모든 내용이 정치니까 정치적인 틀을 갖고 가긴 하되 그 밑이건 그 위건 다른 어떤 것을 향해 가는 거지.

가상현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카오스

그런데 가상현실이라는 게, 우리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차원의 사건들이 돼버렸잖아요. 그래서 가상현실을 얘기하는 영화가 요즘에 참 많아진 것 같아요.

많아요. <매트릭스> 같은 게 가장 좋은 예 중 하나예요.

<매트릭스>같이 아주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도 있고, 최근엔 <아바론>같이….

<아바론> 봤어요.

어떻게 보셨어요. 제작하는 중이셨을 텐데.

여기 부산에서 CG팀이 갑자기 우리가 CG 하려는 개념을 <아바론>이 먼저 하고 있다며 놀라서 한번 보라고 해서.

실사 만들어서 CG처럼 보이게 하는 그런 거요?

우리도 나중에 그런 개념을 쓰게 되거든요. 그런데 CG팀이 당황해서, 자신들이 생각했던 개념을 여기서 다 쓰고 있다고 해서 봤죠. 그런데 보고 나서 당시는 거만하게, 아 뭐가 똑같아, 똑같으면 또 어때, 아무 상관없어, 베껴오면 또 어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트릭스> 처음 보고 이런 퀄리티와 기술을 우리 현실에서 하지 못할 텐데, 굳이 내가 이 영화를 계속해야 하나, 이런 생각은 했어요. 특히 거기서 동양적인 개념들을 나름대로 차용해서 쓰는 거예요. 숟가락 부러뜨리고 마음으로 어쩌고저쩌고, 근데 그것도 보니까 이원론이더라고요. 가상현실과 현실을 딱 나눴더라고요. 내가 가고자 하는 의도와 근본적으로 배치되고, 결국 <매트릭스>도 장애는 아니더라고. 그것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이 시대가 갖고 있는 버추얼 리얼리티, 또는 사이버에 대한 문제, 뭐 여러 가지를 내 나름대로 나비에 기대서 새로 한번 해봐야겠다,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다시 들더라고요.

이 영화에서는 버추얼 리얼리티를 다뤘는데, 할리우드처럼 기술과의 대결이라든가 사고까지 조작하게 된 그런 문제들을 짚는 식보다는,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차용은 했으되 일반적으로 장 감독이 이전의 영화들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아직은 뭔가 잘 모르지만, 화엄의 세계라던가 그런 쪽으로 끌고가려는 것 같아요.

그렇죠. 서구의 사고는 동양이 갖고 있는 사고의 맥을 그렇게 천착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나도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나는 거기에 기대고 싶어한단 말이에요. 그것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명료함에 대해서 깊이 감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각도에서 보는 거예요.

명료하다니요.

내겐 명료한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애매함, 흔히 좋은 말로 이중성, 다의성, 또는 혼란으로 올지도 몰라요. 이 영화의 후반에 가면 혼란, 내 진짜 순수한 의도는 카오스를 전하고 싶은 건데, 카오스를 표현하는 게 진짜 어렵더라고. 그래서 일련의 질서가 나타날 것 같아서 걱정스럽기도 하고, 또 그래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잘 몰라요, 아직, 엔딩이 어떻게 될지.

장 감독이 말하는 카오스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

그러니까 우리의 나쁜 습관, 뭔가를 정돈하고 싶어하고 자기의 계획과 의도에 의해서 세계를 정의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개척하고 규정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그게,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불순한 생각이 늘 있는 거죠. 그런 견지에서 카오스라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질서 못지않게. 속도 못지않게 느림도 굉장히 중요하고. 둘로 나누는 방식으로부터 우리가 훨씬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뭐 그런 얘기죠.

액션감독 장선우

좋아하는 액션영화는 없었어요?

아름다운 액션영화는 몇개 기억해요. 여기서 <트루 로맨스>의 엔딩을 패러디한 것처럼. 그 영화 굉장히 재밌었어요. 싸움을 통해서 자기들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거잖아요. <팀 버튼의 화성침공> 같은 것도 완전히 때려부수고 하는 건데, 미국이 다 망가지는데 그냥 음악소리 하나로 화성의 침략자들을 다 물리치고, 그런 거 되게 재밌었고. <동사서독>도 이미지가 시야, 전체 액션이. 그래서 좋아하고. 뭐 그런 것들. 어릴 때 본 <촉산> 같은 것은 판타지가 뭔진 몰랐어도 되게 멋있었거든요.

액션이 보여주는 이미지로서의 아름다움?

그렇지도 않아요. 잡다하죠. 아름다움…. 아까 말한 대로 개념 자체는 진짜 살벌한 동물의 세계, 곤충의 세계, 리얼한 약육강식의 자연다큐 같은 이미지부터, 개들이 먹이를 다투며 싸우는 사실적인 이미지부터, 시적 이미지까지 다양하게 그때그때 구색 맞게 차용해보려고 하는데, 사실 액션의 표현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더구나 액션감독마다 취향들이 있어서 내가 아무리 끌어내리고 조절해도 자기들의 욕심의 양이, 만나는 접점이 조금씩 달라요. 때로는 그들의 의욕을 위해서 양보해야 할 때도 있고, 관습을 인정해야 할 때도 있고. 액션 재밌는 거 많아요. 애크러뱃 보듯이 찌릿찌릿할 때도 있고, 다칠까봐 걱정하기도 하고

성소가 처음에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알게 된 안데르센 동화처럼 성냥도 못 팔고, 아니 라이턴가, 결국은 죽어가잖아요. 가준오에 대한 환상 속에서. 동화 속에선 따뜻한 가족이나 음식, 아니면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환상이었지만 말이죠. 1단계에서는 그렇게 죽어가던 아이가 2단계, 3단계를 거치면서 에너지를 얻고 결국엔 액션, 즉 에너지를 본인이 발휘함으로써 나오는 거잖아요. 외형적으로는 게임의 형태를 수용하지만, 결국 우리한테 필요한 건 시스템을 뚫고나갈 그런 힘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건 아닌가요? 시나리오 앞 부분에도, 액션이 반드시 그렇게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라고 적어놓으셨던데.

그건 아까 얘기한 것처럼 전 똑같이 본 거예요. 액션이 무어냐고 스스로 질문했을 때 똑같이 본 거거든요. 아예 정말 고요한 단계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조용한 단계에서 자기가 어떤 본체를 보는 것하고, 액션이라는 독을 통해서 그 독의 실체를 넘어가는 것하고는 똑같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 힘이 필요하다, 없다의 문제는 아니에요. 경계가 없다고 보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서는 액션을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해도 된다고 그렇게 설정이 된 거니까. 액션이라는 게 독이라는 것을 알면, 독을 외면하기만 해서도 안 되는 거고 그것을 타고 넘어가는 방법도, 폭포를 은어가 거슬러올라가듯이 이것도 굉장히 아름다운 것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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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관해 알고 싶은 5가지 궁금증 (1)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관해 알고 싶은 5가지 궁금증 (2)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대한 궁금증 - 출연진과 스탭은?

▶ 장선우 감독을 만나다 (1)

▶ 장선우 감독을 만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