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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아이들이 빛을 맞을때
2001-09-14

<타인들>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인터뷰

1945년, 2차대전은 끝났지만 전쟁에 나갔던 그레이스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레이스(니콜 키드먼)는 영국 저지섬 숲 속의 빅토리아풍 대저택에서 두 자녀와, 사회와 격리된 외딴 섬에서와 같은 삶을 산다. 어린 남매는 빛에 노출되면 바로 탈을 일으키는 특이한 병에 걸려, 집안은 온통 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촛불로 조명을 한다. 엄격한 그레이스는 행여 빛이 들어올까봐 방마다 자물쇠를 잠그고, 아이들에게는 독실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르친다. 수도원을 연상케 하는 이 집에 밀즈 부인(피오눌라 플래니건)이 가정부로 들어오고,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잠궈놓았던 문이 열려 있는 일이 잦아진다. 딸아이는 집안에 다른 꼬마 아이가 살고 있으며, 수시로 그 아이를 본다고 말한다.

급기야 이 고택에서 죽은 사람들의 사진첩이 발견되고 남편이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돌아가더니 어느날 아침 집안의 커튼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린다. 그뒤의 섬뜩한 반전은 이 가정이 전에 겪었던 비극의 끔직함을, 화면으로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러면서 그 슬픔을 위로하는 뜻밖의 온기를 내뿜는다. 시대극과 스릴러, 호러의 장치를 뒤섞어 얘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끌고가다가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영화를 정갈하게 마무리짓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29)의 연출력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해 보였다. 전작 <떼시스>나 <오픈 유어 아이즈>에 비해 거친 맛이 줄어든 대신 한층 세련되고 정치해진 <타인들>은, 칠레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이 소장감독에게서 작가보다 장인의 자질이 더 돋보이도록 하는 영화였다.

아쉬운 건, 반전을 접하고 놀란 다음 순간 바로 <식스 센스>가 떠오른다는 점이다. 지난 9월1일(현지시각) 베니스에서 이 영화의 수입사 미로비전의 주선으로 아메나바르와 한국기자들과의 인터뷰가 마련됐다.

반전이 <식스 센스>와 유사하다.

이 영화는 3년 전에 제작을 시작한 영화다. 그 막바지 단계에서 <식스 센스>가 개봉했다. <식스 센스>와 전혀 무관하게 만들어졌고, 나는 두 영화가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생각한다. <타인들>은 시대극처럼 만들었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이노센스>가 원작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렸을 때 겁이 많았다. 어둠 속에 뭔가 숨어 있는 것 같았고, 그런 원초적 공포를 다룬 40∼60년대 소설을 많이 봤다. <이노센스>도 그중 하나지만 원작이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스토리가 좋았지만 그보다는 침묵을 이용해 서스펜스를 만든다는 데 흥미를 느꼈다. 나는 스릴러와 호러를, 그중에서도 호러를 좋아하지만 아이템을 먼저 생각하고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적합한 형식을 고른다. 그게 코미디라도 좋다. 이 영화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간의 시점의 변화에 주목했다.

이 영화를 당신의 할리우드 입성작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아니다. 할리우드영화라고 생각한 적 없다. 영화 전체를 스페인에서 독립영화 만든다는 마음으로 찍었고 스탭도 스페인사람이 주류다. 할리우드 스타가 있지만 이건 할리우드 인사들이 참가한 유럽영화다.

니콜 키드먼의 연기는.

그는 내가 만난 가장 직업적인 여자 중 한명이었다. 완벽주의자이며 캐릭터를 진짜 자신으로 만들어 기대보다 훨씬 좋은 연기를 보였다. 그는 한 테이크 안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편집할 때 선택의 폭이 커져 무척 좋았다.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할 생각은(함께 자리한 이 영화 프로듀서 중 한명인 재미동포 박선민씨는 이 영화 개봉 이후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자는 제안이 70건 가까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은 할리우드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나는 영화를 만들면서 내 뜻대로 모든 걸 컨트롤하는 게 중요한데 그곳에서는 그게 힘들 것 같다.임범 기자/한계레 문화부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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