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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비즈니스의 계명을 따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할리우드 전쟁영화 방식으로 그려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

<JFK>만큼 역사적인 소재와 뚜렷한 제목을 가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개봉했다. 안드레아 버로프의 시나리오에 근거한 이 영화가 지닌 놀라운 점은 그 사실성이 아니라 절제에 있다. 파괴 전문가 스톤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수백만달러를 사용해 9·11 직후의 파괴 장소를 재현했다.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효과는 섬세한 편집에 있다. 역사를 바꾼 재난은 빠르게 진행된다. 비행기의 그림자가 보이고 꽝 하는 충격음, 그리고 텔레비전 중계 이미지들. 내내 스톤은 분별력있게 장면들을 전환시키고 어두운 화면을 의미있게 사용한다. 올리버 스톤은 베테랑 군인이다.

그의 주인공도 그렇다. 20년 경력의 항만 경찰 존 맥라글린(니콜라스 케이지)은 새벽 3시29분에 일어나 자는 아내 도나(마리아 벨로)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직장으로 향하고 자동차 라디오에선 신기하게 ‘뉴욕시에 떠오르는 해’를 노래하고 있다. 항만청 터미널에 도착하자 젊은 경관 윌 히메노(마이클 페나)가 혼란스러운 무리를 뚫고 다가오는데, 둘은 곧 우여곡절을 함께 겪게 된다. 이들의 아침 모임은 군대적 성격을 가졌다. 비행기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부딪혔다는 뉴스를 듣자 맥라글린과 부하들은 전쟁터로 향한다. 이것은 그들의 의무인 것이다. “우리는 다운타운으로 간다.”

무시무시한 파괴의 이미지는 CGI를 통해 다소 부드러워졌다. 90층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한명만 보여준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사무실 직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지원한 맥라글린과 히메노가 두 번째 타워 건물이 무너지며 재와 먼지가 큰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을 첫 번째 타워의 로비에서 목격하는 장면이다. 새로운 스타일의 재앙영화에 걸맞게 재앙의 스펙터클은 이 영화의 경우 산 채로 묻혀버리는 주관적인 경험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6m 깊이의 건물 잔해 더미에 빠져버린 두 경찰은 땅속 깊이 갇힌 광부와 같다(케이지의 배역은 물리적으로 속박되어 있는데 감독처럼 이 배우도 효과적으로 제어돼버린다).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스톤의 전쟁 경험과 할리우드 전쟁영화 방식으로 그려진다. 인물들은 <지.아이.제인>을 인용한다. “고통은 너의 친구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뿐 아니라 전투지와 가정이 파괴되었다. 이 사상자들은 집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의 사자들을 기다리는 아내들과 함께 이 비극을 겪게 되는 헌신적인 가장들이다. 마리아 벨로는 절망을 조절하며 버티고 있지만 매기 질렌홀이 연기하는 앨리슨 히메노는 뉴저지 집을 들락날락하며 초조해한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스톤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의무적으로 스튜디오가 주문했을 말을 반복했다(그것이 가능이나 한가. 사용된 음악도 레이건이 재선을 위해 선거 켐페인에서 사용했던 구질구질한 피아노곡을 연상시키고 있는데…). 하지만 일단 스톤이 카메라를 들어올려 파괴 현장에서 통신 인공위성으로 전세계를 보여주니 필연적으로 정황이 보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 반응자는 영웅적인 조지 부시고 그 뒤로 셰보이건 경찰관이 “후레자식”이라는 말을 뱉고 또 다른 남자는 “조국이 전쟁에 직면했다”라고 외친다. 코네티컷 어딘가에선 자신을 중사라고 부르는 전역 해병대원이 하늘의 소명을 받고 참사 현장으로 인명 구조를 위해 달려간다. 그는 현장에 접근하며 “신은 연기로 장막을 드리워 우리가 볼 준비가 되지 않은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라고 말한다.

스톤이 세공한 것은 무엇인가? 우익한테 스톤은 제인 폰다 이후 마이클 무어 이전 가장 미움받는 할리우드 자유주의자다.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스톤의 갱생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용기라는 특성만이 아니라 신의 의지다. 단지 사람들만 구조를 받은 것이 아니라 가족이 구출되는 것이고 가족이 지닌 가치 또한 구하는 것이다. 생존을 확인한 맥라글린은 도나에게 궁극적인 공을 돌린다. “당신이 날 살아 있게 했어.”

재앙을 오락으로 바꾸는 열쇠는 정신을 고무하는 것이다. 당신이 신의 간섭을 믿지 않는다 해도, 물론 스톤도 안 믿는 듯 보여왔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더 중요한 쇼 비즈니스의 계명을 준수한다. 2700여명이 죽은 잿더미에서 살아남은 20명 중 2명에게 초점을 돌림으로써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전략을 사용한다. 관객이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사람들 대신 기적적으로 재앙에서 살아남은 선택된 몇몇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닌 선함을 보여주었다”라고 해설은 결론내린다. 맥라글린과 히메노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향했다는 점은 감동적이다. 중사가 그들을 찾았다는 점은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다음 임무를 내다본다. “이제 누군가가 복수를 해야 해.” 9·11은 조지 부시의 설명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스톤의 자막은 중사가 그 뒤 이라크에 두번 파병됐다고 알려준다. 이라크의 재앙에선 도대체 누가 우리의 용감한 군인들을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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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