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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상하이 CGV 개막식 현장을 가다
이종도 2006-11-01

국내 멀티플렉스 중국 대륙 상륙

황포강 남쪽으로는 100년 전 영국이 지은 육중한 건물이 불빛을 밝혔다. 강북 연안으로는 거대한 TV타워인 동방명주가 빛을 발했고, 강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모더니즘풍의 초고층 건물들이 거세게 발돋움하는 중국의 발전을 시위라도 하는 듯 보였다. 영화 황제 김염이 전성기를 보낸 곳, 베이징과 함께 가장 방대한 13만평 규모의 오픈 스튜디오인 상하이제편창이 있는 곳, 가장 급성장한 중국의 현대도시이자 거부들이 모여사는 곳. 극빈차와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

상하이에 한국의 브랜드 영화관 CJ CGV가 10월22일 상륙했다. VIP 상영관을 포함한 총 6개 상영관, 1천여석 규모로 5성급 영화관 인증을 받은 상하이에서는 최고 수준의 영화관이다. 이날 베이징과 이틀 간격으로 <살인의 추억>, 중국 내 개봉 불가 판정을 받은 <왕의 남자> 등 한국영화 11편도 함께 도착해 ‘2006년 한국영화전’이 8일간 함께 열렸다. 행사를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이현승, <중천>의 김성수 감독과 배우 정우성, 김태희가 상하이를 찾았다.

상하이 CGV가 들어서게 된 데는 중국에 먼저 진출해 자리를 잡은 CJ홈쇼핑이 일군 인맥이 큰 도움이 됐다. 해적판 소프트웨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한국영화 확산의 인프라 구축과 한류의 플랫폼을 꿈꿔온 CJ CGV는 지난 2월 국영영화기업 상하이영화그룹회사와 50 대 50, 각 10억원씩 투자해 해외 첫 한국 브랜드 영화관을 진출시켰다. 대규모 쇼핑몰이 들어서는 갑북구의 핵심지역이다. 상하이의 청담동이라 할 신천지에 자리한 UME 영화관과 견주어도 서비스나 극장 내 쾌적한 분위기 등이 한수 위로 보인다. 가격은 평균 50위안대로, 한화로 치면 6500원 정도다. 중국영화는 영화별로 가격 차가 나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더빙을 입힌 작품이 가장 비싸다. 골드클래스 가격은 80원. 한국의 60~80%인 물가를 생각하면 적정한 편이다.

CJ CGV 박동호 대표는 “상하이는 중국의 어느 도시보다 개방되어 있고 문화수준이 높다. 무엇보다 중국의 성장 잠재력이 무한하다. 합작을 동등하게 하면서도 우리가 직접 영화관을 매니징한다는 게 중요하다. 상하이 1호점을 시작으로 향후 베이징, 미국 LA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함께 자리한 중국 광전총국(방송과 영화를 총괄 관리하는 기관) 루안궈치 국제교류처장은 “중국과 한국이 극장업을 함께 발전시키는 것을 장려한다. 미국과 홍콩 업체들과 합작 추세가 있었는데 이제 한국 업체들의 참여도 활성화되는 걸로 안다. 세금 절감 등 우대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상하이전영집단 슈펑러 부총재는 “상하이에 사는 한국 교민만 7만명인데 이들이 다섯번만 와도 35만 관객 아니냐”라며 “시설과 서비스 좋은 CGV가 여러 영화제를 소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한국 극장 개관이 바로 한국영화 진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엄격한 외화쿼터 덕에 좁은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영화는 고작해야 1년에 24편이고, 단매로 예술영화 등을 26편 정도 통과시킨다고 해도 다 합해서 50편의 외국영화가 중국 관객을 만날 수 있다. 이현승 영진위 부위원장은 “중국과 합작하면 중국영화로 인정받기 때문에 이번에 양국이 함께 만들고 동시에 개봉하는 <중천>을 계기로 앞으로 합작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더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높은 쿼터 장벽도 장벽이지만, 1시간 간격으로 한국에서 방영하는 드라마가 자막까지 완성돼 인터넷에 떠도는 곳이 상하이인 만큼 해적판 소프트웨어도 당분간 CGV와 경쟁할 것이다. 복단대 국제정치학과 3학년 장주희씨는 “<괴물> 해적판 DVD를 7위안(약 900원)에 주고 샀다. 화질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며 현지엔 버젓이 상점과 노점에서 한국 최신 영화들이 팔린다고 설명했다. 상하이의 대표적 격주간 무가지 <시티위크엔드>엔 할리우드, 중국 박스오피스와 더불어 길거리 DVD 차트가 실린다. 현재 ‘길보드’ 차트에선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과 <다빈치 코드>가 선두를 다투고 있다.

중국이 13억 인구지만 500개 극장, 3천개 스크린에 머물고 있으니 앞으로 중국의 극장 사업은 전망이 밝다고 할 것이다. 한해에 300개씩 스크린이 늘어난다고 하니 CJ CGV의 발빠른 행보도 늘어나는 중국 관객 수를 잡기엔 버거울지도 모른다. 중국은 엄격하게 외화쿼터를 적용해 자국 내 영화시장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하면서 내적으로는 자국의 영화 질을 향상시킬 장기적 계획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광전총국은 중국의 양대 오픈 스튜디오인 베이징제편창과 상하이제편창을 각 1억달러 규모로 늘릴 예정이다. 날로 팽창하는 중국영화의 잠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영화제 개막식과 상하이 CGV 개관식이 끝난 일요일 저녁, 황포강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마오쩌둥의 상하이 개발 지시 이후 1980년대부터 상하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나간 듯이 보인다. 한때 동아시아의 파리로 불리며 일찌감치 만개했던 이 도시엔 과거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짙은 매연과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키는 초현대식 건물만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는 밑으로는 범선을 흉내낸 유람선이 조명을 가득 밝히고 황포강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눈이 계속 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