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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을 보는 시선② 냉혹한 현실과 비교하기

자기방어적 판타지의 극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대한 두 가지 오해. 첫째, 패션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며, 둘째, 사회초년생이 겪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의 자본주의 체험기가 아니다. 첫째, 영화에서 그려지는 직장의 살풍경은 패션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인 직장의 모습이며, 영화에 특징적으로 다뤄진 직업의 세계는 ‘비서직’의 업무특성뿐이다. 비서직은 모시는 분이 사장이냐 국회의원이냐 학장이냐가 아니라, ‘그분의 성격’에 따라 업무의 강도와 범위가 결정되는데, 미란다 정도면 ‘양반’이지 ‘진상’은 아니다. 영화가 패션계에 대해 발언하는 방식은 오직 ‘화려한 명품의 눈요기’뿐이다.

둘째, 영화 속 그녀는 처절한 고민이나 결단없이 직장생활에 성공하며, 빠져나오는 순간에도 진지한 현실인식이나 자기반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성공시대>처럼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그리면서 ‘영혼을 판 젊은이의 추락’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처럼 자본주의 속으로 기꺼이 걸어들어가며 성장하는 커리어우먼을 그리지도 않는다. 억세게 운좋은 아가씨가 직장생활에서 선전하다가 맹한 결말로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 영화와 닮은 텍스트는 TV드라마 <신입사원>과 <연애>(전미선 주연)이다.

영화는 <신입사원>과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세계적인 청년실업 사태에서 주인공은 순전히 운으로 취업에 성공하며, 업무의 과정도 거의가 요행이다. 둘째, 예쁘기만 한 여주인공에게 촌스럽게 입혀놓고 못생겼다고 우겨대다 한순간에 변신시키는 ‘눈가리고 아웅’을 자행한다. <연애>와도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주인공은 그 세계를 경멸하면서도 전임자들보다 잘나가는데, 매 순간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둘째, 마지막까지 ‘물들지 않은(?)’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몽롱한 여지를 남긴다. ‘연애는 생각만으로도 좋은 것’이라며 자위하거나, 저널리즘의 세계는 지적인 곳이라 뭔가 다를 것이라 믿는(척하는) ‘쌩까는’ 결말 등.

영화는 한마디로 어정쩡한 대졸실업자의 판타지이다. 첫째, 그녀의 취업은 천운(天運)이다. 명문대 출신이라고 하지만, 비서직 면접에 유리하게 작용할 리 없다. 4년제를 졸업하고도 실무를 알기 위해 전문대에 재입학하거나 직업전문학교, 학원, 아카데미를 전전하고, 인턴사원, 아르바이트, 자원봉사까지 마다않는 현실에서, 그녀는 미란다의 ‘내키는 기분’ 혹은 ‘제1비서 엿 먹이기성 인사’로 취직된다. 둘째, 업무수행도 대운(大運)의 연속이다. 그녀 곁에는 이유없이 돕는 아트디렉터와 연정을 품고 돕는 작가가 계시다. 그녀는 아트디렉터 덕에 촌티를 벗고 공짜로 명품을 휘감는다. 대개의 ‘직녀’들이 첫 월급을 받기 전에 카드로 정장과 구두를 사고 첫 월급을 받아도 마이너스를 못 메우는 현실에 비하면 과연 운이 ‘대낄’이다. 작가는 결정적인 순간 그녀를 구원해준다. 작가와의 친분이 그녀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꿈에 일부 기인한다쳐도, 그의 도움은 여성들간의 경쟁구도에서 홀연히 나타난 ‘남성구원자의 손길’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대운에 결정적인 인물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호구 같은’ 제1비서이다. 실무 ‘짬밥’ 수년이면 아무리 멍청해도 신참에게 ‘까이지’ 않건만, 그녀는 순순히 ‘까여주시고’ 주인공의 죄의식을 줄여주기 위해, 사고까지 나준신다. 이쯤 되면 주인공의 ‘판타지 공장의 출시품’임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성공의 판타지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자기 욕망을 직시하지도 긍정하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제스처를 취하며 비겁하고 자기방어적인 판타지를 엮어댄다는 데 있다. 셋째, 퇴직과 재취업의 과정은 판타지의 극치이다. 그녀는 성공 직전 자기 발로 떠난다. 대개 퇴직은 더이상 쥐어짜일 것이 없어 팽(烹)당하거나, 과로사 직전에서 살고봐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어나오는 것이다. 오롯한 자의식으로 ‘거리두기’를 통해 제 발로 직장을 나오는 것도 판타지이지만, 무책임하게 ‘도바리 친’ 그녀가 추천을 받아 원하던 직장에 재취업한다는 것이야말로 판타지의 백미이다. 물론 그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저널리즘의 세계도 더럽고 힘들긴 마찬가지인데, 명품옷은커녕 떨어지는 콩고물 하나 없음을. 영혼을 팔려고 해도 사겠다는 데가 없는 현실에서 ‘초심’이니 ‘적성’이니 운운하며 염장 지르는 그녀에게 묻고 싶다. “배부른 소리하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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