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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기발한 상상력, 유명 감독의 단편까지 풍성
장미 2006-11-08

제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씨네큐브에서 11월9일부터 6일간

발칙한 상상력을 반기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2006)가 11월9일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네 번째 막을 올린다. 11월14일까지 6일간 진행되는 이번 AISFF2006은 크게 국제경쟁부문과 비경쟁부문인 특별프로그램으로 구분된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유럽, 미주, 오세아니아, 중동 등지 36개국에서 총 53편을 불러모은 국제경쟁부문은 문화적, 영화적 다양성과 함께 단편만이 건져낼 수 있는 기발함을 동시에 선사할 예정이다. 반면 총 32편을 상영하는 특별프로그램은 감독포커스, 테마단편전, 믹스플래닛으로 구성, 각 섹션이 내세운 특징적인 테마들을 심도있게 다룬다.

아시아나항공이 후원하는 AISFF2006은 ‘국제경쟁단편영화제’에 방점을 찍으며 다소의 변화를 거쳤다. “세계 최초의 기내영화제로 출발해 수상작들을 기내에서도 상영한다는 특색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기내 상영을 위해 작품들이 전체 관람가로 맞춰지면서 표현의 수위에 제한이 생긴다는 의견이 있었다.” 안성기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올해 기내 상영 프로그램이 따로 신설되면서 무제한 경쟁영화제의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이로 인해 풍성해진 부분은 국제경쟁부문의 상차림. 8개 섹션으로 묶여 상영되는 국제경쟁부문에는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이야기인 이수진 감독의 <아들의 것>, 푸른 깃발을 붉은 것으로 바꿔 다는 소년을 그린 프라모츠 상손 감독의 <TSU TSU> 등 잔잔하지만 울림이 큰 작품부터 의욕만 넘치는 영화감독이 장애인 아이들과 벌이는 사투를 담은 <스페셜 피플>과 같이 재기 넘치는 작품까지 속해 있어 눈길을 끈다.

국제경쟁부문에서 눈여겨봐야 할 작품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지옥(두개의 삶)>. 파트 1, 2로 나뉘는 20분가량의 이 작품은 지옥 선고를 받은 평범한 남자 ‘나’와 천국행을 전해들은 20대 중반의 여자 재영의 심리를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인 시선으로 그린다. 이에 반해 폴 코터 감독의 <에스테스 에비뉴>는 ‘신의 날’인 일요일을 다각도로 스케치하는 재치있는 소품이다. 어느 일요일, 에스테스 에비뉴에 사는 다섯명의 사람들은 똑같이 “god”를 내뱉지만 이것은 “oh my god”과 “goddamn” 사이의 좁힐 수 없는 틈처럼 제각기 다른 사건의 결과다. 방관적인 말투의 내레이터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랑, 생계, 일상의 면면을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앞으로 고정된 코너로 운영될 특별프로그램 중 감독포커스는 전세계 유명 감독들의 단편을 소개하는 섹션. <귀향>을 들고 돌아온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1985년작 <금지된 사랑에 관한 트레일러>, 의자를 등에 이고 사막을 건너는 남녀를 뒤쫓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2005년 최신작 <의자> 등 초기작과 근래 작품을 동시에 상영해 ‘시네마 올드&뉴’라는 명칭이 붙었다. 다림질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의 <다리미> 또한 이 섹션에 포함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 가지 테마를 폭넓게 고찰하는 테마단편전 섹션은 올해 ‘괴짜들의 행진: 기이한 사랑의 변주곡’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다채로운 사랑의 얼개를 더듬는다. 특히 나초 비갈론도 감독의 <오전 7시 35분>은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구성이 눈에 띄는 작품. 국가별 대표작을 상영하는 믹스플래닛 섹션은 흑인 드랙퀸을 그린 다큐멘터리 <헤이 지미>를 비롯, 6편을 통해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그려 ‘아시안 퀴어: 레인보우 아이즈’라는 별칭이 달렸다.

11월9일 오후 6시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진행되는 개막식에서는 <금지된 사랑에 관한 트레일러> <다리미> 그리고 AISFF2005 펀드 프로젝트 지원작으로 선정된 허인 감독의 <쁘아송 다브릴>이 관객을 찾는다. ‘만우절의 농담에 속는 사람’ 혹은 ‘사람들의 말에 쉽게 속는 사람’을 뜻하는 제목처럼 이 작품은 만우절을 맞아 표면에 떠오른 남녀 고등학생의 억눌린 욕망을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샌프란시스코 블루스>에서 샌프란시스코행을 꿈꾸는 게이 청년을 담은 허인 감독은 같은 반 친구를 좋아하는 여학생과 여자가 되고 싶은 남학생을 통해 이번 역시 성적 소수자의 세계를 탐험한다. 국내 단편영화의 발전을 위해 2005년 처음 마련된 AISFF 펀드 프로젝트의 두 번째 수혜자는 이번 개막식을 통해 발표될 예정.

영화제 기간 중인 11월13일 오후 8시50분 씨네큐브 2관에서 <다리미>로 2006년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주간 단편부문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한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이 관객과 만나는 자리인 시네마 토크도 마련된다. 티켓은 10월24일부터 11월14일까지 AISFF 홈페이지(www.aisff.org)나 씨네큐브 홈페이지(www.cinecube.com)에 접속한 뒤 예매할 수 있으며 11월9일부터 14일까지 씨네큐브 지하 1층 매표소에서 현장 구입도 가능하다. 성인은 5천원, 대학생, 중·고등학생 등 학생증 소지자는 3천원이다.

작품 소개

<금지된 사랑에 관한 트레일러> Trailer for the Lovers of the Forbidden Things 페드로 알모도바르/스페인/1985년/18분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단편으로 뮤지컬적인 성격이 짙게 묻어난다. 순종적이었던 아내가 애인에게 버림받고 되돌아온 남편에게 총을 쏘는 과격한 변화가 인상적이다. 남편이 “더러운 사업에 종사하는 여자”와 함께 집을 떠나자 여자는 남편의 애인이 남긴 권총을 묵묵히 손에 쥔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어느새 집에는 와인과 가짜 보석밖에 남지 않는다.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도둑질에 나선 여자는 간판 그리는 남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난다. 아내가 새로운 남자와 사랑을 속삭이는 사이, 남편은 바람기 다분한 애인에게 버림받은 채 분노한다. 해당 신의 정서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에 맞춰 노래하고 춤을 추는 인물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의자> The Chair 모흐센 마흐말바프/인도/2006년/8분

<고요> <칸다하르> <개미의 통곡> 등을 만든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단편. 사막의 능선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남녀의 대화를 옮겼다. 의자를 둘러멘 두 사람이 사막을 걷고 있다. 신심이 돈독한 여자에 비해 불경하기 그지없는 남자는 끊임없이 신의 존재를 회의한다. 이 세상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남자는 “세상을 창조한 신보다 이 의자를 만든 목수가 더 선견지명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신에게 질문을 퍼붓는 남자의 뻔뻔함에 두려움마저 느껴질 찰나 이상한 소리와 함께 모래 바람이 닥쳐온다. 고개를 숙이고 발 아래 모래를 파내는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외로워요> Lonely Together 트롬드 파우사 오으르보그/노르웨이/2006년/14분23초

남자는 끊임없이 눈물을 쏟는다. 양고기 스튜를 팔면서 울고, 편지를 읽으면서 울고, 사진을 박박 찢으면서도 운다. 서러운 이 남자의 이름은 토마스. 연인에게 버림받은 토마스의 상처는 도통 치유될 기미가 안 보인다. 끊임없는 울음에 지친 의사가 그에게 권유한 것은 집단상담. 헤어진 연인이 “내 햇살이었다”고 외치는 솔직담백한 사람들 옆에서 토마스는 서서히 마음을 연다. ‘함께 외롭다’(Lonely Together)는 아이로니컬한 제목처럼 슬픔을 치유하는 것은 사람들의 온기임을 증명하는 훈훈한 단편. 남자의 심장 부분에 작은 스크린처럼 영상이 떠오르도록 한 설정이 귀엽고도 기발하다.

<오전 7시 35분> 7:35 in the Morning 나초 비갈론도/스페인/2003년/10분

뮤지컬의 얼개를 가져온 기묘한 흑백영화. 평범한 어느 날 아침, 한 여자가 식당으로 들어섰는데 그곳의 분위기가 왠지 이상하다. 사람들은 숨죽인 채 멈춰 있고 식당 한편에는 악단이 얼어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여자가 자리에 앉자 마치 공연의 일부처럼 한 남자가 튀어나와 노래를 부르고 악단은 악기를 연주한다. 그 남자의 가사가 끝나는 중간중간 식당 안 사람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춘다. 억눌린 분위기에서 진행되던 괴상한 쇼는 두려움으로 가사를 잊은 한 남자로 인해 더욱 험악한 분위기로 바뀐다. 이 상황을 견디다 못한 여자는 경찰에 신고전화를 걸고 노래를 주도하던 남자는 마침내 자신의 몸에 감고 있던 폭탄을 터뜨린다.

<TSU TSU> TSU TSU 프라모츠 상손/타이/2005년/24분

다리를 다친 소년이 절룩거리며 갯벌을 걷는다. 묵묵히 전진하던 소년은 이윽고 초록색 깃발 앞에 도달한다. 칼을 꺼내 깃발을 잘라낸 그는 깃봉에 붉은색 깃발을 동여매고 깃봉조차 붉은색으로 칠해버린다. 극단적인 원경과 극단적인 근경을 번갈아 사용하는 이 작품은 뚜렷한 줄거리가 없는 대신 묵상적인 분위기를 환기한다. 지독한 바람소리만이 너울대다 갑작스레 밝은 톤의 음악이 흐를 때 스크린 위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금가고 깨진 백조배. 소년이 백조배의 머리를 바다쪽으로 돌리는 장면에서 어렴풋이 희망이 엿보인다. 극중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쓰나미를 경험한 소년의 모습을 소재로 삼은 영화.

<마지막 칩> The Last Chip 탕 헹/호주/2005년/22분

마담 팽, 아란, 응우웬은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이혼녀 마담 팽이 든든한 위자료를 밑천으로 손쉽게 살아간다면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응우웬은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든 형편. 목소리 큰 웨이트리스 아란의 전화를 받고 모여든 세명의 중년 여자들은 카지노로 밤 나들이를 떠난다. 마담 팽과 아란이 정신없이 게임에 몰두하는 동안 도박이 두려운 응우웬은 홀로 파친코 기계 앞에 선다. 호기심에 동전을 넣고 게임 한판을 벌이는데 기적처럼 동전이 쏟아진다. 행운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환영을 보던 응우웬은 휠체어에 실려 카지노를 빠져나온다. 도박의 마력과 하룻밤 일탈을 설득력있게 그려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