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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연한 아름다움의 도취경, 배우 알랭 들롱
유지나(평론가) 2006-12-13
여성관객을 자극하는 에로틱 판타지

“이상한 일이오. 오늘 저녁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소. (…) 자 당신에게 말하는 것, 이게 내 운명이오.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당신에게 말하는 것, 다시 또 그 말들, 늘 같은 말들(…) 당신이 적어도 단 한번만이라도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거짓처럼 들리는 황홀한 말들, 전략적 말들을. 당신은 나의 금지된 꿈, 그게 거짓이어도 내 유일한 내 고통, 내 유일한 희망이오.” -<Paroles, paroles>(달리다와 알랭 들롱이 함께 부르는 샹송) 중에서

<태양은 가득히>

차가운 달콤함, 내면의 절절한 고독이 스며나오는 크리스털 블루 시선, 어느 각도로 카메라를 들이대건 깔끔하게 선이 떨어지는 수려한 윤곽… 그래서 살아 있는 조각상처럼 보이는 알랭 들롱은 신화적 미모의 스타로 기억된다. 그는 당연히 압도적인 미모 덕에 배우로 발탁되었지만, 초기작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아웃사이더의 깊은 우울과 분열을 차가운 미소와 악마적 퇴폐미로 재현하면서 고유한 캐릭터를 일거에 창조해낸다. 이런 그의 이미지는 타고난 외모적 조건에 쓰디쓴 삶- 깨어진 가정과 중등학교 졸업, 베트남 지원 등- 을 경험하며 방랑자로 떠돈 사적인 삶의 흔적이 각인된 결과물이다.

연극배우와 달리 외모 의존적인 영화배우의 아우라적 존재감은 연기와 이미지의 경계를 허무는 시뮬라크르 마법을 관객에게 건다. 바로 그 경우가 알랭 들롱과 <태양은 가득히>의 관계이다. 이후 그의 캐릭터는 50, 60년대 프랑스 장르영화의 대표인 경찰극을 범죄자 알랭 들롱의 범죄극으로 변형해낸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연륜의 중후함으로 그의 가여운 처지를 보살피거나 위협하는 장 가뱅, 리노 벤추라 같은 저력있는 배우들이 공존한다. 실제로 알랭 들롱은 <암흑가의 두 사람>에서처럼 장 가뱅과 절친한 사이여서 장 가뱅의 유언대로 화장한 뼛가루를 센강에 뿌렸다. 장 가뱅의 묵직한 음성이 깔린 가운데 알랭 들롱이 홀로 배를 타고 장 가뱅의 마지막 흔적을 강물에 띄우는 모습의 TV중계는 영화와 현실을 통과하면서 고독한 실존의 극치를 보여준 전설적인 이미지이다.

안토니오니의 <태양은 외로워>(1962)나 비스콘티의 <레오파드>(1963), 슐뢴도르프의 <스완의 사랑>(1984), 고다르의 <누벨바그>(1990) 등으로 구성된 그의 필리모그래피는 잠시 빛을 발하다 사라지는 일반 스타들과 달리 대감독들이 선호하는 명배우로서의 진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알랭 들롱의 고유한 매혹은 여전히 경찰극, 범죄극에 등장하는 반영웅적 캐릭터 속에 깃들어 있다. <지하실의 멜로디>(1963), <사무라이>(1967), <아듀 라미>(1968), <시실리안>(1969), <암흑가의 세 사람>(1970), <암흑가의 두 사람>(1973), <르지탕>(1975)처럼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범죄극이 그의 스타 이미지를 관통하는 핵심 계보이다.

미남스타를 통칭하는 보통명사기호로서의 알랭 들롱

대도시 뒷골목의 어둠과 결합하는 우수어린 표정을 영혼의 허무감이 묻어나오는 시선으로 소화하는 그의 수려한 이미지는 삐딱하고 거친 제임스 딘이나 객기를 부리는 장 폴 벨몽도의 반영웅적 이미지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여성 관객의 에로틱 판타지를 자극한다. 에드거 모랭의 지적대로 배드-굿 (bad-good)보이로서의 스타 캐릭터를 구사하는 중심에 놓인 그의 존재증명은 강렬한 지중해 태양빛 때문에 총을 쏜 뫼르소의 부조리한 존재증명의 정당방위로 보이기에 관객(특히 여성 관객)의 연민과 결합된 모성적 욕구를 촉발하기조차 한다. 어떻게 잊겠는가? <암흑가의 두 사람>의 마지막 장면에서 기요틴 처형을 앞두고 도려내는 파란빛을 발하는 흰 와이셔츠 깃, 드러나는 가녀린 목, 공포와 허무에 잠겨 푸르게 빛나는 깨질 것 같은 시선, 그것은 에로틱한 장발장의 재현을 성취하며, 아버지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법을 거부하고픈 충동을 일으키게 만든다. 그의 영혼의 상처를 엿본 우리는 그를 수호하고 지지해야 하니까.

<레오파드>

젊음 여자만을 구가하는 남성 욕망에 쓸려가는 여자 스타보다 남자 스타는 생명력이 길지만, 세월의 흐름은 그를 스타성의 내리막길로 내몬다. 제작, 각본, 주연까지 1인3역을 하며 재도약을 시도한 <분노는 오렌지같이 파랗다>(1988)는 스타성의 기원 장르로의 귀환이지만, 그의 스타성은 불사조가 되지 못한다. 상처받은 길 잃은 새 같은 그의 처연한 아름다움이 촉발하는 모성애적인 에로티시즘이 이젠 중후한 아버지뻘 되는 남자가 돼버린 그에게 작동하는 건 무리다. 대신 알랭 들롱은 미남 스타를 통칭하는 보통명사기호로 작동하면서 여러 명의 들롱족 리스트가 작성되었다 폐기되곤 한다. ‘한국의 알랭 들롱은 이병헌, 강동원, 할리우드에선 브래드 피트와 주드 로’ 같은 식으로. 그러나 주드 로가 공교롭게도 아니 어쩌면 자연스럽게 과거 알랭 들롱이 했던 배드-굿보이 리플리 역을 해내자 사람들은 알랭 들롱의 도취적 매혹을 다시 기억해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제작자로 변신한 그가 할리우드식 독점적 배급판이 돼버린 영화세상을 한탄하며 1998년 은퇴 선언을 했지만, 또한 자연인으로 외로운 부자가 되어 살아 있지만, 가난하고 고독한 영혼의 노마드 스타로 우리의 기억 속을 떠돈다.

팁: 이상하고 안타까운 것은 자본주의 장사판 영화세상을 비판했던 그가 프랑스 극우파 정치세력인 르 펜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불완전함이 스타의 덕목이라고 넘겨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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