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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워킹 타이틀의 공산품 < Mr.로빈 꼬시기 >
김도훈 2006-12-06

10대 여고생들을 위한 30대 전문직 여성 판타지. 시크하려다 시큼해진다.

“나는 도시를 사랑한다”는 그녀는, 그러나 도시의 사랑에는 숙맥이다. 외국계 M&A회사의 애널리스트 민준(엄정화)은 여행간 홍콩에서 그녀의 “아낌없이 다 주리라”식 연애에 지친 남자친구에게 바람을 맞는다. 다음날 출근길, 경황없는 그녀는 근사한 슈트를 빼입은 완벽남 로빈 헤이든(대니얼 헤니)의 차를 들이받고 마는데, 알고 보니 로빈은 민준의 회사에 새로 부임한 CEO. 둘은 일본 기업 합병건을 함께 진행하게 되며 슬금슬금 서로에게 끌리지만, 민준은 자신의 사랑법을 무시하며 ‘연애는 파워 게임’이라 주장하는 이 남자가 너무나도 밥맛없다.

<Mr. 로빈 꼬시기>가 벤치마킹한 대상은 한국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 할리우드와 워킹 타이틀의 공산품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정감있는 조연들에서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브리짓 존스’식으로 세공되어 있으며, 심지어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모습조차 실제보다 매끈하다. 이토록 잘빠진 스타일의 극점은 두명의 주연배우다. 제작진이 디자이너 숍에서 최고급 슈트와 세트로 주문한 듯한 대니얼 헤니는 뜬구름잡는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조각상처럼 빛이 나고, 엄정화는 관음증의 대상을 헤니에게 온전히 물려주고는 30대 전문직 여성 연기라는 자신의 장기에 열중한다. 근사한 두개의 피조물이 말도 하고 연애도 하는 걸 보고 싶은 관객에게 <Mr. 로빈 꼬시기>는 안성맞춤 데이트 영화다. 문제는 근사한 새 부대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묵은 술맛이다. 30대 M&A회사의 애널리스트 민준은 양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은 실수쟁이 브리짓 존스만큼도 자립적이지 못한데, 아무리 엄정화가 애를 써도 CEO에게 “사랑을 얻는 게임의 법칙을 알려달라” 애교와 투정을 부려대는 캐릭터는 잘난 교생 앞의 여고생을 연상시킨다. 한국영화 속 남자들이 찌질해지는 동안 여자들은 점점 유아적이 되어간다.

한 가지 조언. <Mr. 로빈 꼬시기>의 인공적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법칙을 익혀야 한다. 로빈은 한국어를 알아듣지만 영어로 말하고, 영어에 능통한 캐릭터들도 로빈에게는 한국말로 답한다. 초반에 설명되는 이 괴이한 법칙은 오히려 편안한 관람을 도울 때가 있다. 일단은 자막을 통한 대사 전달이 명확해서 좋고,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닭살 돋는 대사도 문어체의 한국말이 아니라 자막으로 보는게 좀더 참을 만하기 때문이다. 버터언어로 버터기를 줄이는 셈인데, 이런 걸 언어적 사대주의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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