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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버 가족의 파란만장 여행기 <미스 리틀 선샤인>

후버 가족의 야단법석 1박2일 여행기. 유쾌한 코미디 속에 삶의 애환이 버무려졌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가족영화이고 로드무비이며 코미디다. 후버 가족은 막내딸 올리브의 미인대회 참가를 위해 갑작스레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뉴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 라돈도 비치까지 가는 1박2일의 여정에서 이들은 온갖 사건과 사고를 겪게 된다. 고물 미니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하는 후버 가족은 총 6명으로 후버 부부와 두 자녀, 할아버지, 외삼촌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들 가족은 처음부터 한 버스를 타고 함께 여행을 떠날 작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좋으나 싫으나 꼼짝없이 고물버스에 동승한 이들은 비좁은 버스 안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서로를 느끼고 알게 된다.

이 여행의 계기를 제공한 7살짜리 올리브(아비게일 브레슬린)는 배가 좀 나오고 안경을 낀 귀엽고 명랑한 집안의 막내이다. 올리브는 미인대회에 썩 어울리는 외모는 아니지만 미인대회 비디오를 보면서 열심히 동작을 흉내내고 무대에 설 꿈에 부풀어 있다. 성공학 강사인 올리브의 아빠는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의 삶이 성공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런 남편을 지겨워하면서도 집안의 구심점 역할을 해내는 엄마는 매일 저녁 치킨과 샐러드를 사다가 인스턴트 식탁을 차린다. 니체를 탐독하는 진지한 소년인 올리브의 오빠 드웨인은 가족과는 최소한의 소통만 하며 자신의 방에서 거의 칩거생활을 한다. 그는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9개월째 지필대화만 하고 있다. 올리브의 할아버지와 외삼촌은 피치 못할 사연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 집안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마약을 하다가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많이 해라”라고 충고하고 사돈에게 포르노 잡지를 사달라고 부탁하는 괴짜 노인이다. 자칭 미국 최고의 프루스트 학자인 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는 대학원생 제자였던 게이 연인에게 실연당하고 자살을 시도했다 실패한 자의식에 가득 찬 지식인이다. 올리브의 엄마는 프랭크가 혼자 있으면 다시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그를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후버 가족의 파란만장 여행기에 등장하는 온갖 악재와 불운의 시초는 미니버스 클러치가 고장나는 사건이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겨우 여정을 재촉하지만 아빠와 삼촌, 드웨인은 예상하지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거나 절망적인 소식을 듣는다. 자신이 고안한 ‘성공을 위한 9단계’ 이론을 책과 DVD 등으로 만들어 돈을 벌려는 아빠는 이동하면서도 애타게 연락을 기다렸으나 계획이 취소되었다는 최종 통보를 받게 된다. 프랭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할아버지가 부탁한 포르노 잡지를 사려는 찰나 자신을 버린 연인과 민망한 조우를 한다. 드웨인은 올리브와 놀아주다가 우연찮게 색맹임이 드러나서 목표로 삼았던 공군사관학교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몹시 괴로워한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연 드웨인이 절규한다. “이혼 전력에 빈털터리에 자살 시도까지… 이런 가족이 어디 있어?” 그의 말처럼 후버 가족은 인생 최악의 상태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버 가족은 캘리포니아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이 이 여행을 기필코 마쳐야 하는 이유는 없어 보이지만, 달리 보면 지금 여행을 그만두고 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기는 매한가지다. 다소 비약해 말하자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여행은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버 가족이 괴팍하고 이상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든 가족은 후버 가족과 다를 바 없다. 제각각 개성이 다른 인물이 모여서 가족을 이루고 때론 힘을 합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살아간다는 것이 뜻밖의 상황에 부딪히고 절망하고 그러다 극복하고 웃고 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들이 여행 중 부딪히는 사건과 사고도 어쩌면 일상적인 일일 뿐이다. 그렇게 보면 후버 가족의 이 야단법석 여행기는 이 시대 가족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다. 미니버스 클러치가 고장나서 온 가족이 버스를 손으로 밀고 한 사람씩 올라타는 장면은 가족이라는 이름이 아직 의미있는 이유를 느끼게 한다.

CF와 뮤직비디오로 명성을 얻었던 부부 감독은 자신들의 첫 영화 배역 선정에 무엇보다 고심했다고 한다. 그들은 막내 올리브 역에는 <싸인>에 출연했던 아비게일 브레슬린, 아빠 역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그렉 키니어, 엄마 역에는 <뮤리엘의 웨딩>에 나왔던 호주 출신 토니 콜레트를 낙점했다. 우울한 프랭크 삼촌으로 분한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의 스티브 카렐이나 자폐증 성격을 갖고 있는 드웨인 역으로 나온 신예 폴 다노는 외모부터 인물과 딱 떨어지게 어울리는 캐스팅이다. 독특한 가족구성원의 여행기를 그린 것이니만큼 캐스팅이 관건인데 결과적으로 성공적이다.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올리브가 우여곡절 끝에 미인대회 무대에 오른 다음 벌어지는 일들이다. 고생 끝에 무대에 서고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식의 결말을 상상한다면 그건 너무 상투적이다. 후버 가족은 참신한 감각을 살린 인디영화다운 유쾌한 반란을 보여준다. 2006년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미스 리틀 선샤인>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도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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