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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부부싸움 <황후花>
김현정 2007-01-24

전대미문의 부부싸움.

장이모는 <황후花>를 설명하며 오래된 중국 속담을 인용했다. 그는 “겉에는 황금과 보옥, 안에는 부패와 타락. 이 속담이 뜻하는 바는 아름다운 껍데기 아래에는 어둡고 섬뜩한 진실이 놓여 있다는 것”이라면서 <황후花>가 지금까지도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봉건주의를 폭로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여인들이 바르는 분가루에서부터 하늘처럼 거대한 황궁 지붕에 이르기까지 황금을 녹여 퍼부은 듯 번쩍거리는 <황후花>는 장이모가 인용한 속담을 엄청난 규모로 재현한 영화다. 여섯겹 옷자락마다 금실을 수놓고 10만 병사가 황금 갑옷을 입고 여인의 입술과 눈두덩 위에서 금가루가 빛을 뿌리는 황궁. 그러나 그 바깥에는 빛이라고는 없어 황금색 궁궐은 어둠 아래 웅크린 석상처럼 음산하다. 암흑과 구분할 수 없도록 어두운 증오와 악의가 황금색 벽을 뚫고 새어나온다. 황궁 바깥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는 <황후花>는 감정과 규모와 폐쇄의 기괴한 스펙터클을 지닌 영화다.

<황후花>는 중양절을 앞두고 있는 황궁의 아침으로부터 시작된다. 황금빛 국화가 피어나는 가을이면 중국인들은 양(陽)의 숫자 9가 두번 겹치는 중양절을 맞이한다. 국화꽃잎으로 화전을 만들고 술을 담그는 음력 9월9일은 아득한 천지 사이에 높고 맑은 기운이 충만하여 만물이 절정에 이르는 절기다. 그러나 1천년 전, 황제와 황후가 하룻밤에 명운을 걸었던 <황후花>의 중양절은 수만 송이 국화가 핏빛으로 물드는 밤이 될 것이다.

황금빛으로 단장한 황후(공리)는 공기처럼 얇고 투명한 비단수건에 금실로 국화꽃을 수놓고 있다. 황제(주윤발)와 함께 변경으로 출정했다가 3년 만에 돌아온 둘째왕자 원걸(주걸륜)은 발작을 일으켜 경련하는 어머니를 말리지만, 그녀는 고집스럽게 수틀을 놓지 않는다. 황후가 증오하는 황제는 냉혹하고 무자비하고 굳건한 권위를 지닌 인물이다. 황궁 무관이었던 그는 아내를 버리고 선대 황제의 딸과 결혼하여 황위에 올랐지만,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원상(리우예)을 태자로 삼았다. 그리고 황후는 황제가 궁을 비웠던 3년 동안 심약하고 선량한 태자와 관계를 맺어왔다. 황후의 눈을 피해 어의의 딸이자 의녀인 선과 사랑을 나누었던 태자는 그녀를 데리고 변경으로 떠나고자 하지만, 집착이 강한 황후는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모든 욕망과 음모에서 소외된 막내왕자 원성은 입술을 깨물며 자신만의 운명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마침내 황제와 황후와 왕자 셋이 한자리에 모인 중양절 밤, 황후는 오랫동안 꿈꾸었던 반란을 도모한다. 황후가 수놓았던 비단수건은 중양절 밤을 위한 것이었다.

<황후花>는 복잡다단한 인생사를 다루거나 천하를 논하였던 장이모의 전작 <붉은 수수밭> <인생> <영웅> 등과 다르게 매우 간결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모든 장식을 헤치고 보면 <황후花>는 부부싸움이다. 다만 만인지상의 자리에 앉은 부부의 싸움이기에 음(陰)과 양(陽)이 격돌하는 듯한 진동을 느낄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황후花>는 드라마보다 캐릭터, 그리고 캐릭터 사이의 관계가 좀더 묵직한 영화다. 인륜을 저버리고 황금의 권좌를 움켜쥐었으나 모래 알갱이가 빠져나가듯 모든 것을 잃고 만 황제, 모정과 욕정에 애달파하며 단지 그대로 주저앉지는 않고자 반역을 꿈꾸는 황후, 부모의 업보가 운명을 속박하여 가엾고 어리석고 무모한 왕자들. 여기에 근친상간과 권력의 신화가 얽혀들어, <황후花>는 인류가 간직한 거대한 비극과 원형의 기억을 불러낸다. 아무리 중국의 황궁이 드넓다 해도 그 안에 천하를 품은 듯, 그 밖의 세계란 존재하지도 않는 듯한 유아독존의 느낌은, 무언가 이상하다. 중국 이 세계의 중심이어서 진정한 의미를 지닌 유일한 장소라 믿었던 중화(中華)사상이란 이런 것이었나 싶어진다.

<황후花>는 또한 엄청난 규모를 지니고 있음에도 텅 빈 듯하여 이상한 영화이기도 하다. 원걸이 이끄는 반란군과 암묵적인 황제의 지시를 따르는 수비군의 격돌은 오직 인간이 움직이는데도 눈을 믿기 힘든 스펙터클을 창조한다. 태산 같은 성벽이 움직이고 황금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황금창을 한데 모으고 돌바닥을 메운 국화꽃 위로 핏물이 밤비처럼 쏟아진다. 그러나 이 싸움과 죽음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황후花>는 바다를 들이마시겠다 망상하였던 거인의 사투처럼 거대하고도 허무하다. 무모하게도 황후와 원걸을 따랐던 황금군대의 죽음이나 태자를 사랑했던 선의 광기나 권좌를 향해 기어올랐던 황제의 싸움은 아무런 보상도 얻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흩어지고 만다. 황금사슬과 고리가 찰랑거리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세월처럼 기나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황제는 황궁에 가득한 금빛을 단번에 걷어내며 무색 허무를 퍼뜨리는 괴이한 이미지 그 자체다. 이러한 공허함을 드라마의 허술함으로 볼 것인지, 의도적인 방치로 볼 것인지는, 무엇을 눈여겨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도 같다.

그럼에도 <황후花>는 개봉 첫주 9600만위안(약 150억원)을 벌어 제작비의 1/3에 달하는 금액을 단번에 회수했다. <영웅> <연인>을 작업했던 무술감독 정소동이 액션을 맡기는 했지만, 역동적인 무협보다는 차라리 건축에 가까운 <황후花>가 거둔 성적으로는 놀라운 것이다. 어쩌면 모든 중국인들의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대지에서 하늘까지 닿도록 태산이 솟아오르는 신화가 잠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자금성을 지었고 만리장성을 쌓았으며 이화원을 만들었다. 평지를 손으로 파서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수를 만들고 다시 그 흙을 쌓아올려 꼭대기가 까마득한 산을 만든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한때 세상의 중심이었던 민족이 남긴 흔적만을 보며 살아왔다. 그런데 <황후花>는 그 신화를 다시 현재로 불러들여 황궁 돌바닥에 지구의 축을 내리꽂은 것이다.

서구 언론의 반응은 엇갈리는 편이다. <와호장룡>에 필적하지는 못한다는 경고를 일제히 던지면서도 서구 언론은 <황후花>가 어느 정도 무국적 영화임을 지적한다. 권력을 지닌 이들이 폐쇄적인 공간에 모이면 그곳이 천하나 다름없어지며, 세상 온갖 감정과 욕망이 그곳에 모여든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한가지다. <LA타임스>는 <황후花>를 세실 B. 드밀의 <인톨러런스>와 <십계>, 프리츠 랑의 <니벨룽겐>, 구로사와 아키라의 <>에 비유하며 이해 가능한 영토로 끌어들였다. 그러므로 한번도 실재하지 않았던 동양에의 향수에 의존한다고 비난받아온 장이모는 그 묘한 향수를 더욱 묘한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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