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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민한 반응의 소유자라니, 시트콤 감독 김병욱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타고난 관찰자이며 기록자인 그들의 소극적 복수는 ‘이야기’다.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 전 떠올린 스토리 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1998),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 <똑바로 살아라>(2002),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 <거침없이 하이킥>(2006)의 감독 김병욱도 수줍음을 잘 탄다. 전작 <귀엽거나 미치거나>가 최소한 품위를 지킬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조기 종영한 지 1년 반. 그와 동료들은 <거침없이 하이킥>(극본 송재정 외 공동연출 김창동, 김영기)을 내놓았다. 신작이 전파를 탄 지난해 11월 그는 말했다. “허접한 작품이라 인터뷰하실 일 없을 거예요.” 말하자면 김병욱 감독은 다운시프트형 인간이다. 실망시키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는, 차라리 기대를 낮추고 작은 잔에 넘치게 따르기를 원한다. 공중파 유일의 시트콤인 <거침없이 하이킥>은 저녁 8시대라는 ‘짧은 활주로’에서 이륙하기 위해 사건과 갈등을 전면 배치하고 그 속에서 캐릭터를 천천히 다졌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30회를 넘기면서 <굳세어라 금순아> 이후 MBC가 고전해온 저녁 8시대 시청률을 두 자릿수에 안착시켰다. “다소 어색하기까지 한” 수치라고 김병욱 감독은 표현한다.

김병욱 시트콤에는 아녜스 자우이의 매너 코미디, 제인 오스틴의 실내극, 오즈 야스지로의 홈드라마에서 보았던 통찰과 풍자가 있다. 진부한 설정에도 숨을 불어넣는 독자적 감수성이 있다. 김병욱 감독과 송재정 작가는 사람의 왜소함을 급작스럽게 드러내기를 즐기는데 그 결과는 강자의 권위를 비웃는 데에 멈추지 않고 인생의 보편적 어리석음에 가닿는다. 또한 김병욱 시트콤은 가족주의의 이면을 밝힌다. 가족이 한국인에게 중대한 것은, 단지 정이 깊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의존으로 세대가 얽혀 있고 가족 구성원의 인정이 개인의 삶에서 큰 의미를 갖기 때문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리고 물론, 어처구니없는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 있다. SBS <좋은 친구들>(1994)에서 김병욱과 함께 일한 장항준 감독(<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은 “계급도 계급이지만 정신적, 문화적 소수자들에게 애정이 크다”고 김 감독의 취향을 요약한다. 그의 소우주에서 성격은 운명이고 캐릭터는 에피소드다. 김병욱 감독은 어떤 사태를 맞은 인물의 반응 숏을 아무 지시없이 찍은 무표정으로 대체하곤 하는데, 캐릭터를 숙지하는 시청자들은 배우의 빈 얼굴로도 감정을 짐작한다. 쑥스러움을 잘 타는 김병욱 감독이 곶감보다 겁내는 것은 감정의 과잉, 아니 감상(感傷)의 과잉이다. <거침없이 하이킥> 42화에서 백수 준하가 오랜 실직을 끝낸 출근 첫날, 가족들과 파티를 치르다가 다시 해고 소식을 접한다. 준하가 케이크의 촛불을 끄자 컴컴해진 실내에서 가족들은 각자 흐느낀다. 김병욱 감독은 눈물을 클로즈업하기는커녕 주조명까지 끄고 식구들을 어둠 속에서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코미디를 만들기엔 너무 우울한 사람.” 몇해 전 장진 감독은 김병욱을 그렇게 평했다. 여전히 김병욱 감독은 어딘가에 3만명이 운집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그 많은 쓰레기와 배설물을 어떻게 치우나부터 생각하는 남자다. 사람도 세상도 웬만해선 달라지진 않을 거라고 여기는 그가 버티는 법은 무엇일까. “소박하게 살고 소박한 것을 만들면서 풀어요. 어둠 속에서 화살을 쏘는 거죠.”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가슴팍에 과녁을 그리고 TV를 켠다.

-예전에 못 보던 콧수염이네요. 언제부터 기르셨어요? =<거침없이 하이킥>을 공동 연출하는 PD가 어느 날 꽁지머리를 하고 왔더라고요. 저도 뭐든 해야 할 것 같아서…. (웃음) 콧수염을 기르니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점도 있어요. 얼마 전 녹화현장을 방문한 MBC 사장님에게 “아이고, 면도할 시간도 없으신가봐요”라고 치하받았어요.

-음식점에서 뵙게 되면 매번 따로 있는 방을 선호하시는데, 그 편이 마음 놓이시나요? =은둔 지향이라서요. 어디 가도 구석진 자리가 마음이 놓여요. 어려서부터 널찍한 공간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귀퉁이를 찾아서 ㄴ자 모서리에 틀어박혀요. 사방이 트인 공간 가운데에 있으면 눈에 안 보이는 등 뒤가 불안하거든요. 그런데 구석에 몸을 붙이면 등을 찔릴 염려도 없고 전방은 내 시야로 확보가 되잖아요? (좌중 폭소) 어른이 되고도 한참 공중화장실을 이용 못했어요. 밖에서 남이 기다리면 불안해서 소변을 못 봤거든요.

-촬영할 때도 로케이션보다 세트, 야외보다 실내가 편하시겠네요. =세트가 주는 안정감을 좋아해요. 제가 잘 아니까 구석구석 잘 이용할 수 있거든요. 전 익숙한 걸 좋아해요. 도전의식이 거의 없는 사람이랄 수 있죠. (웃음) 광장공포증, 맞아요. 그렇다고 폐쇄공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사방이 완전히 다 막혀 있으면 못 견디고 두 방향 정도 터져 있는 것을 좋아해요.

-한쪽이 터진 실내라면, 딱 세트네요. 시트콤 연출자로 하늘이 내린 운명이네요. (웃음) 그러고 보면 감독님의 고향인 경주도 어딘가 세트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숨바꼭질하다 왕릉에 올라가서 놀기도 하고 담장이 없어서 등하굣길에 천마총 소나무 숲을 질러가곤 했는데 지금은 문화재를 보호하느라 정말 세트 같아졌더군요. 아버지가 경주고 교사로 오래 재직하셔서 경주 시내에서만 살았어요. 아예 시골이면 흙 내음 맡으며 정서라도 풍부해졌을 텐데, 중소도시 도심에 살다보니 도시도 아닌 것이 시골도 아닌 것이 어정쩡하게…. 그것도 시트콤에 어울리네요.

-PC통신만 있었던 <순풍산부인과>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터넷 환경 변화에 따라 시청자의 반응 양식이 달라지는 양상을 체감하시죠? 요즘은 캐릭터들에게 ‘주몽혜미’, ‘비굴민호’, ‘하숙범’ 같은 닉네임이 붙여지기도 하잖아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만들던 당시 인터넷이 생기자마자 저는 시청자 게시판에서 불손한 답글을 써서 필화를 입기 시작했죠. (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큰 행복감을 누리고 있어요.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에 <거침없이 하이킥> 갤러리가 생겼는데 거기 모인 이용자들은 “경쟁 프로그램이 종영하는 모월모일이 호객의 기회인데 그날 에피소드가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등 온갖 전문적 걱정과 의논을 해요. 자기들끼리 에피소드 제목도 붙이고요. 마치 가족끼리 식당 운영하면서 오늘은 간판에 무슨 메뉴를 적나 상의하는 분위기죠.

-포털사이트는 감독님께 바람 부는 광장이고, 갤러리는 아늑한 방인 셈이군요. =시트콤은 시간에 쫓겨 만들다가 종영 때 손때 묻은 세트를 무너뜨리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정말 허무하죠. 그래서 <똑바로 살아라> 마지막 회에서는 노민정(서민정)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심정’을 내레이션으로 쓰기도 했고 <거침없이 하이킥>은 제작일지를 책으로 만들어보자는 구상도 했어요. 그러니 커뮤니티의 존재가 큰 기쁨을 주죠.

-여러 작가의 초고를 받아 송재정 작가가 써낸 대본의 최종고를 직접 퇴고하고, 연출은 두명의 다른 PD님과 분량을 나눠서 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거침없이 하이킥> 연출은 50%가량 직접 하지만 야외 녹화분량을 비롯해 다른 PD가 연출한 부분은 방송을 통해서야 결과를 볼 때도 있어요. 사람들은 제가 모든 걸 계획하고 조직하는 줄 알지만 실제는 안 그래요. 오사마 빈 라덴처럼 얼굴마담 같은 존재일 수도 있죠. (웃음) 함께 연출하는 김영기, 김창동 PD가 생각하는 코미디가 저의 코미디와 다를 수도 있고요. 어쨌든 일일극을 오래 하다보니 한번쯤 혼자만의 생각을 견지해서 편집까지 온전히 마무리하는 작업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제 단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학교에 가면 오직 집에 빨리 가고만 싶었어요.

-사람들의 행태를 골똘히 관찰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인가요? =친구들이 기억하는 나는 항상 땅을 보고 혼자 교정을 걸어다니던 모습밖에 없대요. 수필을 몰래 끼적거려서 친구한테 보여주고 슬프다고 눈물 흘리면 즐거워하며 살았죠.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어쩌다 한권 읽으면 영향을 굉장히 크게 받는 거잖아요. (웃음) 풍부한 독서를 하면 편집해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헤르만 헤세만 읽으면 그게 세상의 전부니까 거침없이 염세주의에 빠져드는 거죠. TV나 영화도 좋아하는 것만 봤어요. 지식은 없고 사변만 있는 인생, 그게 저예요.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학교에 가면 오직 집에 빨리 가고만 싶었어요. 대학 가서도 수업 뒤 친구들과 모여 놀기라도 하면 안정이 안 됐어요. 내게 ‘삶’은 집에 와서 혼자 있는 거니까 그런 자리는 집으로 돌아가 혼자 있기 위해 부득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여겼어요. (웃음) 세상에는 제도권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사회에서 빤하게 파놓은 내가 가야 할 길. 그 길을 가긴 싫은데 또 이걸 이탈하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짓눌렸어요. 어린 시절 어쩌다 늦잠 자고 지각 등교할 때 다른 아이들이 가고 없는 길을 혼자 뛰어가며 보았던 휑한 거리 풍경이 선명한 공포로 남아 있어요.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보면 주인공 한스가 제도권의 길을 가다가 중도에 포기하잖아요. 나중에 그 길을 포기했다는 사실 때문에 연애도 실패하고, 자살까지 내몰리는 모습을 열중해서 읽었어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도, 사회가 용인하는 길을 선택 못한 사람들이 치르는 대가를 슬퍼하며 제 방식대로 감상했죠.

-청소년기에 유난스런 고집이나 집착은 없었나요? =그맘때 제가 거식증이 심해서, 집착 같은 것을 할 기력이 없었어요. (일동 폭소) 아버지 키를 보면 더 커야 했는데 고2, 3학년 때 너무 못 먹어서 성장이 멈췄어요. 2교시 마치고 도시락 꺼내먹다가 혼나는 친구들을 보면 저는 “허,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그랬죠. 난 4교시 마쳐도 밥 먹기 싫어 미치겠는데 뭐가 모자라 미리 먹고 걸려서 선생님한테 두들겨 맞고 울고불고 복도에 서 있는 걸 보면 뭐 저런 애들이 있나 신기했어요. 대학입시에서 1차에 실패했지만 거식증 때문에 재수는 생각도 못했죠. 학업을 조금이라도 지속하면 거의 임종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좌중 폭소) 마지막 ‘발병’은 92년경이었어요. 신혼 시절 아내와 둘이 일본에 놀러갔는데 사흘째인가 갑자기 식욕이 1%도 없는 거예요. 이러다 확 죽는 거 아닌가 하는 걷잡을 수 없는 생각에 빨리 그냥 서울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아내는 막 울고, 성수기라 비행기 표는 없고. 그런데 이틀 뒤 또 감쪽같이 낫더라고요.

-<씨네21>이 ‘내 인생의 영화’ 원고를 청탁했을 때 <월하의 공동묘지>의 추억을 써주셨죠. 인생의 지침을 준 영화라기보다 받은 충격의 크기 순서로 고르신 것 같습니다. =어려서 상상을 통제하지 못해서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런 공포가 <월하의 공동묘지>로 증폭돼서 무척 괴로웠죠. 집의 구조가 좀 무서웠어요. 마당에 우물도 있고 뒤란도 있고. 불만 끄고 누우면 마음은 겁에 질려 있는데 몸이 자꾸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곳으로 가고 마는 거예요. 유년 시절 그 공포감 때문에 많은 일을 못하고 거의 4, 5년을 허송했죠. (좌중 폭소) 그 시간을 다른 데 썼으면 좀더 나은 사람이 됐을 텐데.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어린 마음에도 내가 이렇게 자라서 정상적 인간이 되겠나 걱정됐어요. 그러다 중학교 진학 뒤 헤세에 빠져 공포에서 급(急)염세로 전환했죠. 일단 공포는 없어지니 그런대로 좋더라고요.

-그런 어려움을 공감하고 이해해준 식구는 누구신가요? =제가 3남1녀 중 셋째인데 동생 병철이가 저한테 무서운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 비슷한 증세를 보였죠. 남한테 전가를 시키니 제가 좀 낫더라고요. (좌중 폭소) 동생과는 어려서 한심한 추억이 참 많아요. 권투 글러브가 생겨서 권투 게임을 했는데 일곱살 차이나는 동생이 이길 리가 없잖아요? 그럼 저는 마구 때리다가 일부러 KO를 피해서 판정까지 가요. 그리고 제가 “자, 판정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가상의 심판 세명의 채점을 발표해요. “1번 심판 오카다씨, 김병철 136 김병욱 133 ” 그러면 동생이 씩씩거리면서 기다려요. “2번 미국 심판, 김병철 143 김병욱 147” 하면 그때부터 애가 호흡이 가빠지고, “마지막 아르헨티나 심판, 김병철 145 김병욱 146!” 그러면 울면서 저만치 달려가요. (좌중 폭소) 심판을 자기가 하면 될걸, 꼭 나한테 맡기고는 만날 울고불고 해요.

-말씀 듣고 보니 동생을 상대로 일찍이 연출의 기초를 닦았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동생이 내가 의도하는 그대로, 드라마로 치면 내가 만든 배역처럼 움직일 때가 많았어요.

-감독님 시트콤에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범이를 비롯해 친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고 숙식도 해결하는 인물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그런 단짝은 없었습니까?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서로 집은 찾아가지 않는 깍듯한 관계였죠. 대학교에 가서도 동아리 한번 든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살기는 40여년을 살았어도 거의 경험이 없는, 이 땅에 뿌리를 못 박는 삶을 살았다고 보면 돼요. 늘 늦게 와서 뒷자리에만 앉고 어떤 활동에서든 중하위 그룹에 속해 가능한 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 대학을 다녔어요. 졸업 무렵 MBC에 입사할 때 수석했다고 사은회에서 앞으로 불려나갔는데 오죽했으면 과 사람들이 웅성거렸어요. “저 사람 누구야? 우리 과 맞아?” (좌중 웃음) 그런데 시트콤이 어떻게 보면 바깥세상의 경험이라기보다는 내적인 정신세계와 관련이 깊어요. 제가 여행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길어야 하루 정도 낯선 도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여행을 좋아해요. 어떤 집을 찾아가면 집 밖에서 그들의 삶을 구경할 뿐 그 집에 들어가 하루 묵을 정도로 좋아하는 건 아닌 거죠.

-내가 아닌 사람, 사물에 깊이 들어가는 일이 성가신 건가요? 두려운 건가요? =본능적 회피죠. <순풍산부인과>를 할 때 병원 취재를 하다가 제왕절개수술을 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사양했어요. 그렇게까지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정신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연애를 할 때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느라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깊이 들어가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보는 게 아마도 진정한 삶이겠지만요. 그래서 아내가 고맙죠. 인생에 처음으로 이만큼 가까운 사람이 생긴 거니까요. 저는 가족이 일터에 찾아오거나 가족 동반 직장 모임도 무척 불편해하거든요. 그런 ‘섞임’이 싫어요. 뷔페에 가면 여러 음식 섞인 접시에서 초고추장이 불고기에 묻은 걸 보기가 싫고, 구내식당엘 가면 먹고 난 음식 찌꺼기가 한통에 버려지는 것이 싫어요.

-작품에서 플래시백을 많이 쓰는 편인데, 본인도 자주 회상에 젖는 편이신가요? =회고 취향은 제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고 할 수 있어요. 심할 때는 한참 연애하는 중에도 미래를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지금 이 순간이 어떤 추억으로 남으려나” 하고요. 즐겁게 놀아도 나중에 돌아보면 슬프겠구나 생각하고요. 그처럼 삶에 잘 젖어들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도 있고요.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성취가 <거침없이 하이킥>의 형식을 만든 거죠.

-MBC PD로 입사할 때 라디오를 지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PD는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TV는 어쩐지 눈에 띌 것 같고 라디오라면 숨어서 PD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문세씨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팀에 있었죠. SBS가 개국할 때 옮겨서 AM 라디오프로 연출을 한동안 했는데 0.8%, 1.2%를 오가는 청취율의 프로그램이었어요. 오는 편지가 하도 재미없어서 제가 가짜 주소로 편지를 직접 쓰기도 했는데 온갖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대로 쓰니 행복했죠. 그러다가 TV로 옮긴 이유는 라디오가 TV보다 자기 시간이 없다는 점이 컸어요. 스튜디오 아니면 사무실만 오가니까 공무원처럼 자기 자리를 지켜야 했거든요. 드라마나 교양 부서에 가면 장기출장이 많을까봐 예능국을 지망했어요. 입도 짧고 언제 거식증이 재발할지도 모르니 집 근처에 머물러야 하잖아요. (좌중 웃음)

-당시 SBS에서 함께 일한 장항준 감독님의 추억을 들어보니, 권위적이지 않고 남의 말을 경청하고 코미디 감각이 좋아서 무대감독과 작가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은 AD였다고요. 입봉할 때 모두 같이 일하고 싶어했다는데요. =글쎄요. ENG 카메라 들고 혼자 나가서 한 꼭지를 만들어오는 건 잘하는 편이었어요. 가요프로 출연을 사양하는 015B의 그림을 만드느라 콘서트에서 누군가 찍어온 영상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당사자들이 흡족해하기도 했어요. 반면 공개방송에서 바람을 잡거나 하는 일은 아주 괴로웠어요.

-송재정 작가는 <순풍산부인과>부터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김병욱 감독님의 모든 작품을 함께 쓴 공동창작자입니다. 어떻게 만났고 장기적 파트너십에 대한 확신을 굳힌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순풍산부인과> 아이디어 작가로 처음 만났어요. 방송 시작 1년 뒤 김의찬, 정진영 작가가 그만두자 빈자리가 컸는데 가장 잘 메워준 사람이 송재정 작가였어요. 글도 잘 쓰지만 구성 재주가 탁월해요. 이야기를 뒤엎어서 시간을 역순으로 묶는다거나 미스터리로 푸는 구성은 거의 송 작가가 한 거예요. 성향을 보면 제가 여성적이고 송 작가가 남성적이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에피소드는 제가 쓴 것이 많고 몹시 웃었다고 하면 송 작가가 쓴 예가 많아요. 그래서 코미디 감각이 비슷하면서도 보완이 돼요. 예를 들어 <귀엽거나 미치거나>에서 재벌집 가정부로 일하는 소유진이 우연히 만난 친구 앞에서 그 집 조카인 척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중에 소유진이 식구인 척 행동하는 부분은 송 작가가, 마지막에 친구에게 들켜서 눈물 짓는 장면은 제가 썼죠. 제 연출력이 부족해 송재정 작가의 대본을 제대로 못 살리는 미안한 경우도 많아요.

-<거침없이 하이킥>은 파격적으로 일일드라마 시간대인 오후 8시20분에 편성됐습니다. 예를 들어 밤 11시대 시트콤이라면 컬트적인 색깔이 있겠고 저녁 종합뉴스 직후라면 ‘디저트’다운 맛을 고려할 것 같아요. 방송 현장에서 ‘저녁 8시대의 서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녁 8시는 방송의 메인 요리에 해당되니까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서사를 요구받죠. 30∼50대 주부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필요해요. 문희와 해미의 고부간의 갈등도 그래서 만든 설정 중 하나죠. 만약 <거침없이 하이킥>이 조기 종영할 경우 시트콤이 공중파에서 전혀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라 부담이 있었어요. 시트콤적 방법이든 일일드라마적 방법이든 시청률 12%선까지는 안착을 시켜야 했어요.

-조기 종영된 <귀엽거나 미치거나>까지 네편의 시트콤을 방송한 SBS를 떠나 MBC로 채널을 옮겼습니다. MBC적인 요소라고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저렴한 제작비에 시청률 웬만큼 내는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취급하다가 그렇지 못하면 용도 폐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MBC는 평가 기준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책임자들이 프로그램을 직접 보고 이 사람이 만드는 콘텐츠가 시청률과 관계없이 가능성이 있다면 인정해주는 분위기예요. 스타 시스템에 의존만 하지 않고 스타가 없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채널의 실험정신도 좋고요. 세트 때깔도 좋죠.

-<순풍산부인과>부터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만든 시트콤 다섯편을 하나의 흐름으로 놓고 볼 때 각 작품이 차지하는 단계나 발전을 짚어주실 수 있을까요? =<거침없이 하이킥>이 <똑바로 살아라> <순풍산부인과>의 포스를 못 따른다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거예요. 전 음악에 관심이 없어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중에 <난 알아요>가 제일 좋고 뒤에 나온 노래는 좀 어렵거든요. 제 입장에선 <난 알아요> 같은 노래만 해줬으면 싶지만, 서태지로서는 <난 알아요>가 부끄러울 수도 있어요. 저는 <순풍산부인과>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많이 부끄러워요. 두 작품은 전개가 단순해서 처음을 보면 뒤를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 <똑바로 살아라>에 오면 후반을 예상하지 못해요. 나아가 <똑바로 살아라>까지는 에피소드의 횟수를 바꿔도 무관했는데 <거침없이 하이킥>에 오면 추리적 요소가 들어가고 감정선이 세밀해져서 순서 바꾸기가 불가능해요. 긴 호흡의 서사에서 구성 밀도가 높아진 거죠. 그런 면에서는 진일보, 아니 진이보했어요. 연출의 기술적 측면을 보면 <똑바로 살아라>까지와 달리 <거침없이 하이킥> 첫주 방영분은 원하는 만큼 ENG로 찍었어요. 시청자가 보는 그림은 비슷하지만, ENG를 쓰지 않고 스튜디오 조정실에 제가 올라가 1, 2, 3번 카메라를 놓고 그냥 찍으면 연기자의 표정이나 앵글 하나하나를 제어하지 못해요. 제 필모그래피를 만든다면 <똑바로 살아라>부터 포함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언급 안 하셨는데 저는 <귀엽거나 미치거나>가 상당히 야심적인 기획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지금까지와 다른 것을 해보자는 의욕이 노골적이었던 것은 물론이고, 장기 서사와 주간 시트콤의 주기를 같이 살려가는 구성이 흥미로웠어요. 이번 회에 던진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서도 각 에피소드를 끌고 가는. 물론 그런 성취가 지금 <거침없이 하이킥>의 형식을 만든 거죠. 예를 들어 민용이 신지가 결혼반지를 팔아버린 줄 알고 자기 반지를 버리는데, 정작 신지는 반지를 간직하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 때 반지는 한 에피소드의 마무리지만 더 긴 멜로의 복선이기도 해요. 이렇게 두 가지를 취하는 작법을 <귀엽거나 미치거나>를 통해 배웠어요. <똑바로 살아라>가 구성에서 진일보했다면 <귀엽거나 미치거나>는 콘티뉴이티를 살린 거죠. 그런데 <거침없이 하이킥>은 일일시트콤이지만 개성댁 미스터리 등을 도입해 연속성을 강화했어요. 그게 꼭 시청자에게도 더 재미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치열한 고민이 있는 거죠.

-<매거진t>의 강명석 편집위원이 UCC 시대에 맞는 성공작이라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평했더군요. 그동안 <개그콘서트> 같은 스탠딩 코미디들이 큰 인기를 얻었는데, 시트콤 작가로서 웃음의 코드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십니까? =‘마빡이’를 보면 이마를 때리다가 힘든 나머지 그들의 속내나 방송 뒷이야기가 나와요. 지금은 만든 콩트보다 그런 사적인 진실과 사람의 본질이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는 시대 같아요. 우리 시트콤은 언제나 사람간의 갈등에서 벌어지는 코미디라 유행과는 거리가 있죠. 우리의 수용자층은 <개그야>나 <개그콘서트> 팬보다 멤버들의 갈등이 드러나는 <무한도전>의 시청자와 겹친다고 봐요.

-<거침없이 하이킥> 초반 마루 밑에 개성댁의 시체가 몇회에 걸쳐 누워 있었습니다. 잘린 귀까지 등장했죠. <블루 벨벳>도 생각나고, 배경인 흑석동이 ‘트윈 픽스’로 보이더군요. =데이비드 린치라니, 이 실력과 제작비로 어림도 없죠. 이번 작품에서 우리의 모토는 무엇보다 ‘변신’이었어요. <위기의 주부들> 벤치마킹도 좋지만, 그보다 우리의 기존 스타일에 대한 지겨움을 털고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시청자가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좀 어색하더라도 초반에 “어딘가 다르다”라고 보이는 효과가 중요했죠. 개성댁 미스터리는 일상의 표면 밑을 말하는 이야기죠. 우리 사회도 점점 한 개인의 삶의 실체를 알기 힘든 시대가 되고 있잖아요. 유영철 같은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굉장히 특이하고 기괴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선가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원래 기획은 거창했어요. 모든 주변 인물에게 비밀을 주려고 했죠. 이를테면 풍파고 학생 중에 흑인 혼혈학생이 한명 있는데 알고 보니 이집트 왕자였다든가. (좌중 폭소)

제일 사랑하는 캐릭터 듀엣은 <똑바로 살아라>의 노민정-노형욱 조예요.

-지금까지 전작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들의 듀엣을 고르다면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똑바로 살아라>의 노민정-노형욱 조예요. 민정이는 생글거리며 괴상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인물이고 형욱이는 비록 꼴찌지만 아주 평범한 가치관을 가진 아이거든요. 둘이 벌이는 해프닝은 그런 차이의 충돌인데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해미가 강하죠. 누구와 붙여도 재미있어요.

-서민정씨에게 여쭤보니 처음 <똑바로 살아라>에 캐스팅했을 때 “내가 연기 가르쳐줄 테니 연기학원 다니지 말라. 네 안에 좋은 게 많으니 그대로 그려주겠다”고 하셨다면서요? =연기학원 연기가 어떤지 아시잖아요? 흔히 젊은 연기자들의 발성을 많이 지적하는데 전 대사가 틀려도 감정이 진실하면 좋아요. <인간극장>을 보면 사람들의 싸우는 모습이 드라마처럼 딱 맞지 않아요.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서 어린 동생이 갑자기 사고로 죽는 장면은 아무 복선없이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어설퍼 보이게 찍었더라고요. 갈수록 그런 것들에 마음이 끌려요.

-감독님 작품의 캐릭터 가운데 배우가 갖고 있는 요소를 200% 활용한 성공적 케이스로 박영규, 이응경, 홍리나, 천정명씨 등이 생각나는데요. =시트콤의 환경에 맞춘 불가피한 방식이기도 해요. 배우들에게 시트콤은 부업이라 미니시리즈처럼 승마를 가르친다든가 체중조절 같은 변신을 요구할 수는 없거든요. 이미 있는 걸 이용해야 배우가 수월하니까 수동적으로 관찰해서 뽑아내야죠.

-서민정씨는 <똑바로 살아라>에서 노민정,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서민정 선생을 연기하는데 둘 다 엉뚱하지만 타인에게 반응하는 방식은 반대라 재미있습니다. 여러 인터뷰에서 가장 자랑스런 캐릭터로 노민정을 꼽으셨는데요. 서민정씨 본인은, 연기경험도 훈련도 전무한 자신을 데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님이 창조한 캐릭터라 그럴 거라고 추측하더군요. 혹시 노민정은 감독님이 꿈꾸는 100%의 여자아이 캐릭터인가요? (웃음) =우리 인물들이 대개 어디선가 본 듯한 현실적 캐릭터인데 노민정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준하는 영규, 이순재는 오지명식으로 유형에 대입할 수 있는데 노민정은 유형이 없죠. 노민정과 <거침없이 하이킥>의 서민정은 정반대의 인물이라고 해도 좋아요. 예컨대 <똑바로 살아라>의 민정은 속엣말- 보이스 오버 대사- 이 거의 없었어요. 반면 <거침없이 하이킥>의 민정은 계속 혼잣말을 하며 노심초사하고 짜증날 정도로 남을 신경쓰죠. 서민정은 똑같은 표정으로 웃지만 성격은 딴판인 거예요. 실제 서민정과 닮은 건 서민정 선생쪽이에요. “정말요?” 반문하는 버릇도 본인 말투예요.

-촬영현장에서 연기자를 한 사람씩 불러서 앞으로 다가올 에피소드에 대해 조언하고 방송이 나오면 일일이 모니터링을 해주신다고 들었어요. 그처럼 신경쓴 캐릭터들이 웬만큼 자리를 잡으면 한데 모아놓기만 해도 저절로 이야기가 생기는 흐뭇한 단계가 올 텐데요. =그걸 가리켜 “가을걷이가 다가온다”고 표현해요. 그래서 네티즌이 ‘괴물준하’, ‘야동순재’라고 캐릭터의 별명을 부르는 것이 기뻐요. 그게 다 하나하나 벼이삭이 여물어가는 거니까.

전복에 대한 상상이 시트콤을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돼요.

-지난 몇년간 시트콤을 만들며 가정과 직장, 현관부터 베란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작가들과 함께 고민하며 살아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공중파 매체라서 다루지 못한 내용도 있나요? =없어요. 우리는 케이블에 어울리지 않아요. 케이블은 비주류적 감성을 살리는 장점이 있지만 우리는 이를테면 <안녕, 프란체스카>의 노도철 PD나 신정구 작가와 비교할 만큼 마이너한 감수성도 아니거든요. 또 <가족연애사>처럼 본격적인 섹스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욕구도 없고요.

-공중파는 족쇄가 아닌 거군요. 반대로 시트콤이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가 소재로 건드리지 않는 부분을 표현할 수 있다고 느낀 적은 있나요? =우리가 해온 이야기들이 거의 다 그렇지 않을까요? 드라마가 다룰 수 있는 감성은 아주 제한적이잖아요. 의학드라마는 병원에서 사랑하는 얘기, 법정드라마는 법정에서 사랑하는 이야기가 빠지면 안 된다거나. 시트콤은 드라마가 다룰 수 없는 작은 이야기죠. 30분이라는 시간도 적당해요. 60분을 이야기하면 인생을 천착해야 하는데 30분은 겉핥기지만 적당히 짚어줄 것만 짚어주고 끝낼 수 있어요.

-모자이크 처리된 화장실 장면은 김병욱 시트콤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어요. 급기야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똥의 1인칭 내레이션까지 나왔는데요. =저희가 다듬는 걸 싫어해요. 사회의 편견도 그대로 까발리는 걸 좋아하고, 언어도 욕설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나치게 방송용으로 순화하는 것이 싫어서 “지랄”이라는 말도 막 쓰죠. 좋은 소재를 두고 차선을 쓰기 싫은 거죠. 이를테면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시어머니 문희가 평소에 깔끔하고 깐깐한 며느리의 똥으로 변기가 막힌 걸 보고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그걸 똥이 아닌 무엇으로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맛이 덜 산다고 봐요. 문희가 아들의 방귀냄새가 혼탁해진 것을 염려해 개선에 힘쓰는 ‘방구보감’편은, 정말 강조하려던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가위손>의 눈발을 방귀에 날리는 밀가루로 패러디한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더러운 걸로 시청률 올린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조용하고 점잖은 인상이시지만 얼핏 마음속의 분노가 비칠 때가 있어요. =분노 많아요. 어떤 것은 아주 쪼잔한 상처라 말씀드리기도 뭣해요. 복수할 때도 있어요. 사람을 만나면 상처를 잘 입는데 그걸 내색은 못하니까 분노가 되는 거죠. 시트콤이라는 대접받지 못하는 장르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진 원한 같은 것일 수도 있죠. 연기자들이 시트콤한다고 무시당한 이야기를 들으면 같이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요.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도 알 것 같아요. 전복하고픈 욕구는 있는데 쉽지 않고 그만큼 영리하지 못하니까. 그 분은 같은 말도 평범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마이너의 위치에서는 매력적인 인물인데 그 화법이 대통령 자리에는 안 어울리는 거죠. 방송계 경력도 쌓였지만 저는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소수자처럼 느껴요. 전복에 대한 상상이 시트콤을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돼요. 다른 눈으로 현실을 보니까. 하지만 정말 메이저가 됐을 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B급 영화감독이 큰 예산을 주면 이상한 영화를 만들 듯.

-영화 연출의 의욕을 밝히신 지는 오래됐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일일시트콤으로서는 일단 마지막 작품이라는 말씀도 들었는데요. 시트콤, 드라마, 영화가 무슨 봉건시대 사농공상 같은 서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트콤이라서 빛나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는 터라 아쉽기도 합니다. =일일극은 이제 체력이 달려서 못해요. 그런데 말씀하신 일종의 ‘사농공상’ 이 현실적으로 있어요. 제가 영화를 한편 하고 나면 드라마를 맡을 수 있어도 그전에는 어려울 거예요. 억울하지만 시트콤이라 만듦새에서 용서받는 부분도 있으니 괜찮아요. 영화도 좋겠고, 케이블에서 16부작이나 8부작 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작품을 보면 권력이나 부를 가진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삶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는 시각이 보입니다.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도 큰 기대가 없고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결론에 이를 텐데요. =세상을 바꾸려는 욕심은 없는데 작은 항변의 욕구는 있어요. PD나 작가나 그것마저 없으면 문제가 있는 거죠. 송재정 작가와 함께 준비해온 영화가 있는데 <그때 그사람들>과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통하는 데가 있죠. 황우석 박사 사태에서 단적으로 보듯, 사회적으로 무거운 지위와 책임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놀랄 만큼 황폐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때가 많잖아요? 사람들이 모두 속고 있는 거죠. 그들은 설마 나처럼 무책임하거나 미숙하지 않겠지 믿는 사람들의 피라미드인 거예요. (웃음) 어떤 사람에게 사회적 책무와 권력을 줄 때는 그만한 성숙한 정신을 기대한 것인데, 우리 사회가 실은 굉장히 위험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방증이죠. 코미디를 만들 때에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냉소주의가 우리 작업의 토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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