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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진주군> 한순간 마음을 건드리는 영화
김현정 2007-01-31

재즈에 기대어 삶과 전쟁을 견뎠던 다섯 젊은이들의 초상화

필리핀 밀림에서 종전을 맞은 겐타로(하기와라 마사토)는 군악대 선배였던 조(마쓰오카 &#49804;스케) 등과 함께 밴드 럭키 스트라이커를 만들어 미군 클럽에서 재즈를 연주한다. 그와 동료들에게 재즈는 전쟁을 잊고 삶을 견디도록 해주는 동력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에 동생을 잃은 미군 러셀은 미국 음악을 연주하는 겐타로를 경멸하며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온다. 러셀은 겐타로가 분노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뛰어난 색소폰 주자이기도 하다.

재즈영화로 착각하기 쉬운 <클럽 진주군>은 황폐하면서도 떠들썩했던 전후 도쿄의 스케치에 가까운 영화다. 발붙일 데가 없는 참전용사와 지하도를 누비는 부랑아, 미군한테 몸을 팔며 언젠가 바를 열겠다는 꿈을 꾸는 호스티스, 밤을 새우며 등사기를 미는 사회주의자 그룹, 엉성한 영어 간판. <클럽 진주군>은 그처럼 1947년 즈음 도쿄에서 보았을 법한 인물과 사건들을 느슨하게 지나쳐가곤 한다. 그 때문에 <클럽 진주군>은 일관성을 지닌 드라마로 다가오기보다 어느 한순간이 마음을 건드리는 영화다. 이를테면 전시체제하에서도 재즈가 듣고 싶어 축음기를 들고 옷장 속에 처박혔던 조의 기억이 재즈를 둘러싼 그 어떤 장광설보다도 진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음악을 사이에 두고 느긋하게 사이를 좁혀가는 러셀과 겐타로의 우정은 다소 억지스럽고 어색하다.

그럼에도 <클럽 진주군>은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밴드 럭키 스트라이커를 언제나 중심에 세우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러셀이 작곡한 노래 <Out of This World>다. 좋아하는 음악도 마음대로 듣지 못하고, 빛나야만 했던 젊음을 필리핀 밀림이나 만주 벌판에서 죽음과 함께 보내도록 만들었던 전쟁 혹은 그런 전쟁을 만들어낸 세상. <클럽 진주군>은 서로에게 총을 들이댔고 상처를 입혔던 일본과 미국 청년의 교감을 통해 누구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전쟁 자체를 비난한다. 또한 전쟁에 휩쓸려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어버린 숱한 삶들을 서글퍼한다.

그러므로 <클럽 진주군>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조금만 견디면 본국으로 돌아가 진짜 재즈를 들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젊은 미군 병사들은 느닷없이 한국전쟁에 파병되고 몇년 전에 그랬듯이 허무하게 죽어갈 것이다. 그들을 위해 <클럽 진주군>은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의 노래 <대니 보이>를 들려준다. 음악만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것이므로. 필리핀에서 종전을 알리는 ‘삐라’를 주웠던 겐타로는 그 소식을 믿지 못하다가 비행기에서 울려퍼지는 재즈를 듣고서야 진실을 깨닫는다. 그처럼 <클럽 진주군>은 산산이 흩어지는 야만의 시대에서 재즈 선율만을 안타깝게 부여잡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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