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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입장이 결여된 9·11 재연의 문제, <플라이트 93>
ibuti 2007-02-09

<플라이트 93>의 제작에 동의한 9·11 희생자 유가족 중 한명은 ‘왜 그렇게 빨리 영화를?’이라는 반응을 접할 때마다 화가 난다고 말한다. 9·11을 다룬 영화의 제작 시기는 유가족들의 의사에 따른다고 결정한 폴 그린그래스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러니까 ‘언제’가 아니라 ‘왜’였다. 질문에 답하기 위한 그의 선택은 2001년 9월11일에 UA93 여객기와 항공 관제국과 방공사령부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재연 혹은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플라이트 93>은 결론과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보다 사건을 바라보는 데 주력한다. 결과는? 우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의식을 환기해냈다. 포스트 9·11 세계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첫 번째 사람들인 UA93의 탑승자들을 익숙한 주변인과 나 자신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경악과 이해력 부재로 인해 쉽게 공황에 빠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영화의 재연이 진실에 대한 무지와 의혹 그리고 죽은 자들의 신화를 그럴싸하게 검증했는지는 몰라도, 그린그래스의 바람대로 사건을 뚫어져라 바라본 결과 역사를 잉태한 시대의 본질을 꿰뚫게 됐다고 자신하기는 힘들다. DVD 음성해설에서 계속되는 질문인 ‘무엇을 할 것인가?’가 ‘테러에 대한 응징’을 부르는 주문으로 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는 ‘왜’에 대해 어느 정도 답했어야 했다. <플라이트 93>은 정치적 입장없이 단순히 답을 찾고자 노력하라고 요구하는 게 무책임한 짓임을 스스로 증명하고야 만다. <플라이트 93>에 출연한 이라크 출신 배우는 뉴욕 시사에 참석하고자 했으나 미국 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라는 응답을 들어야 했다. 시사회의 열렬한 반응에 고무됐을 그린그래스가 그날 밤, 그 배우의 처지를 기억이나 했는지는 의문이다. 영상과 소리가 수준급인 <플라이트 93> DVD는 부록으로 영화 안팎을 상세하게 훑는 감독의 음성해설, UA93의 40명 희생자에게 바치는 다큐멘터리 <플라이트 93: 유가족과 영화>(60분)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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