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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된 책 [4] 스크린으로 간 만화들
씨네21 취재팀 2007-02-19

마음을 갉아먹는 벌레에 대하여

<충사>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 펴냄

<충사>(蟲師)의 벌레(蟲)는 보통의 벌레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생과 죽음의 사이에 존재하는 <충사>의 벌레들은 귀신과 유령을 포함하는 미스터리한 존재들이며,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퇴마사 장르의 새로운 진화라고 할까. 벌레들을 알아보고 부리고 퇴치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충사다. <충사>는 고단샤에서 발간하는 잡지 <애프터눈>에 연재 중인 우루시바라 유키의 작품으로, 스스로 벌레를 끌어들이는 운명 때문에 한 장소에 머무르지 못하는 충사 깅코의 여정을 따른다. 이야기의 결로만 머무르지 않고 헐겁고도 자유롭게 그어진 선에 의해 각각의 칸 속에 자리잡은 작가의 생태주의적 세계관이 섬세하기 그지없다. <충사>는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후지TV>를 통해 방영됐고, 원작의 팬들에게 원작자의 세계관을 제대로 살려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이미 완성되어 개봉을 기다리는 실사영화의 감독은 <아키라>와 <스팀보이>의 오토모 가즈히로. 원작 팬들은 우루시바라 유키의 세계를 재현한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며 불평을 흘리겠지만, 하얗게 탈색한 머리로 한쪽 눈을 덮은 오다기리 조의 깅코 역시 ‘간지’만은 제대로 훌륭하다.

김도훈

봉준호 감독의 선택

<설국열차> 자크 로브, 장 마르크 로셰트 지음/ 김예숙 옮김/ 현실문화연구 펴냄

오랜 냉전의 끝에 지구가 얼어붙는다. 어리석은 인류가 기후 무기를 이용해 지구를 영하 85도의 얼음 행성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영원히 지구 위를 돌 수 있도록 만들어진 1001량의 초호화판 설국 열차에 탑승하는 것이다. 황금칸으로부터 꼬리칸까지 모든 객차는 계급에 따라 나누어져 있으며, 채소와 육류를 기를 수 있는 자급자족 차량까지 구비되어 있다. 설국열차는 지구의 축소판이다. 모든 것은 권력층의 독재에 의해 관리되며, 꼬리칸의 일반인들은 더러운 환경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가고, 황금칸은 자포자기의 퇴폐와 향락에 휩싸여 타락해간다. 장 마르크 로셰트의 유려한 그림체를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설국열차>는 모두 세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판 1권은 <설국열차>, 한국판 2권은 <설국열차: 측량사>와 <설국열차: 횡단>을 모두 담고 있다. 하드커버로 출간된 유럽산 예술만화(다른 말로는 ‘커피 테이블용 서적’)라는 사실 때문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흥미진진한 종말론적 SF이자 절묘한 정치적 풍자이기도 한 <설국열차>를 읽다보면, 봉준호 감독이 서둘러 판권을 구입한 이유는 분명해진다. 정치적 발언을 담은 발군의 오락영화 <괴물>을 떠올려보라.

김도훈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

<두 사람이다> 강경옥 지음/ 시공코믹스 펴냄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생인 지나의 집안에는 저주가 내렸다. 조선시대 우의정을 지낸 지나의 선조가 어느 승려의 조언에 따라 뒷산의 이무기를 죽여 피를 마신 탓이다. 승천을 하루 앞둔 이무기는 피를 토하며 지나의 집안에 ‘꽤 구체적인’ 저주를 내린다. 자손 대대로 한 세대에 한명이 희생당할 것이며, 가해자는 희생자의 주변 사람 중 ‘두 사람’이라는 것이다. 희생자로 지목받은 지나의 세계는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엄마와 여자친구가 자신을 죽이려 들고, 믿었던 사람들의 눈빛은 별안간 흐려진다. <두 사람이다>는 <별빛속에> <라비햄 폴리스>와 함께 강경옥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스릴러 만화. 강경옥은 발전이 더딘 그림쟁이지만, 질질 끌지 않는 4권의 분량 속에서 명쾌하게 끝나는 <두 사람이다>는 강경옥의 가장 완성도있는 장편으로 거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실 ‘영화화하면 좋을 만한 한국 만화’로 항상 지목받아온 <두 사람이다>의 시나리오는 제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오래전부터 충무로를 떠돌았다. 정지우 감독 등 여러 사람들을 거친 시나리오가 안착한 곳은 <선물>과 <작업의 정석>을 만든 오기환 감독의 손. <타짜>에서 조승우의 연인을 연기한 이수경이 지나로 분할 예정이다.

김도훈

꼬마 영매사의 천진난만 모험담

<하나다 소년사> 마코토 잇시키 지음/ 삼양출판사 펴냄

하나다 이치로는 세상에 둘째가면 서러울 말썽꾸러기. 어느 날 이치로는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만 사고 이후 귀신을 보는 능력을 얻게 된다. 연애편지를 처리하지 못하고 세상 하직한 바람둥이 할아버지, 공부만 하느라 여자 가슴 한번 못 만져보고 죽은 총각 귀신, 아들을 잃고 황폐하게 살아가는 엄마를 걱정하느라 성불 못한 아기 귀신 등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은 온갖 사연을 가지고 이치로를 찾는다. <식스 센스>의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죽은 사람이 보인다”며 이불 속으로 숨었지만, 대책없이 긍정적이고 순수한 이치로는 뜬금없는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피아노의 숲>으로 유명한 마코토 잇시키의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1994년 초판이 나온 뒤 단행본만 9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애니메이션 <하나다 소년사>(국내 방송명 <기동아, 부탁해!>)도 많은 인기를 모았는데 2003 도쿄애니메이션 페어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2006년 8월 <하나다 소년사: 비밀과 유령의 터널>이 극장에서 개봉했다. TV드라마 PD 출신의 미즈타 노부오가 감독하고, 이치로 역에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의 스가 겐타가 출연했다.

권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