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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 연작, 그 첫 번째 마스터피스 <아버지의 깃발>
김도훈 2007-02-14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 연작, 그 첫 번째 마스터피스.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의 개봉을 촉구하자!

1945년 2월19일 오전 9시. 미 해병대는 2만2천명의 일본군이 주둔한 이오지마섬에 상륙한다. 5일이면 함락이 가능하다는 윗대가리들의 호언은 틀렸다. 3월26일에야 미군은 이오지마를 함락할 수 있었고, 2만여명이 부상당하고 6천여명이 전사했다. <아버지의 깃발>의 상륙 작전이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톰 스턴의 카메라가 ‘유황섬’(硫黃島)의 언덕으로부터 해변을 굽어보는 순간, ILM이 새겨넣은 수백척의 군함과 수만명의 군인은 신이 만든 디오라마처럼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잔혹한 스펙터클의 감흥이 영화를 지배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는 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둘러 스펙터클을 끝낸 뒤 한장의 사진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수리바치산 정상에 6명의 해병이 성조기를 꽂는 순간. 사진작가 조 로젠탈의 플래시가 작렬한다. 미 정부는 사진 속의 군인 중 전사하지 않은 3명을 본국으로 불러들여 전쟁기금 마련을 위한 홍보활동에 참여시킨다. 위생병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 통신병 레니 개그논(제시 브래드포드)과 인디언 아이라 헤이즈(애덤 비치). 살아남은 자들은 전쟁의 영웅으로 숭앙받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모든 것은 잊혀진다.

<아버지의 깃발>을 감상적인 회고담이라 말하는 것은 쉽다. 죽음을 앞둔 젊은 육체들이 수영을 즐기는 마지막 장면에 이어 실제 인물들의 사진이 엔드 크레딧과 함께 올라가는 순간, 눈물을 자아내는 것은 분명 아버지의 감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플래시백의 속성이다.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돌아간 아이라가 관광객의 푼돈을 받으며 성조기를 꺼내어 사진촬영에 임하고, 결국 헛간에서 초라한 시체로 발견되는 모습을 처연히 따라가며 이스트우드는 토로한다. 이오지마의 사진 한장으로부터 현대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으로서의 영웅주의가 시작되었다고. 이오지마의 깃발은 공허한 국가주의에 대한 비천한 상징이다. 그리고 아들들의 깃발은 베트남에서, 손자들의 깃발은 이라크에서 펄럭인다.

이스트우드는 <아버지의 깃발>을 찍자마자 일본군을 주인공으로 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만들었다. 좀더 내밀한 개인들의 이야기로 다가가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비로소 <아버지의 깃발>을 완성시키는 걸작이지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없어도 <아버지의 깃발>의 가치는 크게 손상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 이 같은 예술적 서커스를 정면으로 부딪쳐 해내고야마는 ‘아버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유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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