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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록키! 마지막엔 쫌 주책이었소

투덜양, <록키 발보아>를 보면서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하다

어른들과 만날 일 많은 설 연휴 끝에 <록키 발보아>를 보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늙는다는 것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정서적으로 순결한 나의 단 한 가지 단점인 나이차별주의를 반성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영화 때문에 세대간의 갈등과 증오가 더 커진다는 결론과 함께 ‘나이 들면 삐이이익(0000)’이라는 망언을 마음속에 다시 한번 새기게 됐다.

인생을 탕진하던 철없는 소녀에서 뼛속까지 고달픈 싱글맘이 된 리틀 마리는 말한다. “사람에게서 가장 늦게 나이가 드는 건 마음”이라고. 나도 느낀다. 아직도 금요일 밤이면 홍대 앞 클럽에서 밤새워 놀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고 빌보드보다 먼저 날스 바클리에 열광했다는 것에 므흣해하며 20대 캐주얼복 매장을 기웃거리는 내가 서른여섯살이라니, 깜짝깜짝 놀란다. 그러나 어쩌겠나. 내 체력은 더이상 바이킹 타는 것도 받쳐주지 않고, 딱 붙는 티를 입으면 사정없이 밀려나오는 살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니 주제파악하고 참하게 사는 수밖에.

물론 나이 들었다고 꼭 아랫목 깔고 앉아 등이나 긁으면서 살 필요는 없다. 환갑에 근육질의 몸매를 만드는 록키는 추하지 않다. 60대에도 예쁜 다리를 드러내는 스커트를 입는 여성이 보기 좋은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을 갈고 다듬는 노력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늙어죽을 때까지 해도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노력이 애들과 한판 떠볼 수 있다는 욕망으로 치닫는 순간 추해진다. 자신의 존재 입증을 한창 잘나가는 젊은 사람과 견줘 그에 못하지 않다고 애써 주장하는 순간 ‘노추’로 변하는 것이다.

식당 주인이 된 퇴물 복서 록키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과 전설적인 시합에 대한 회고로 소일한다. 지루했지만 여기까지는 애교로 봐줄 만했다. 그러나 젊은 날의 영광(<록키>)을 노골적으로 복제하는 복장과 훈련코스로 ‘나 죽지 않았어’를 온몸으로 웅변하면서 영화는 그로테스크한 자기 희열로 달려간다. 하여 결전의 순간 현역 챔피언를 휘청하게 하는 주먹을 날릴 때 케네스 튜란의 말마따나 완전히 찐따되는 딕슨(챔피언)- 또는 딕슨을 연기하는 진짜 복서 안토니오 타버- 이 측은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마지막 록키가 아깝게 판정패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환갑 챔피언이 돼버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된다.

아이는 항상 해맑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어른들의 환상이지만 그렇다고 열살짜리가 서른살에게 “새꺄 한판 붙자”고 달려드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닌 것처럼 노인의 욕망은 인정해야 하지만 환갑 노인이 이십대 챔피언을 때려눕힌다고 나이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개고생한 록키에게 심심한 위로와 함께 이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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